‘모난 돌’ KB 임영록, 금융당국 철퇴 그리고 해임
징계 수위 ‘올리고, 올리고’, 검찰 수사 압박에 이사회 해임 의결
박진호
ck17@sateconomy.co.kr | 2014-09-18 22:02:02
금융당국의 강력한 제재 방침에도 ‘사퇴불가’를 천명하며 법적 소송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겠다고 맞서던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이 결국 불명예 퇴진의 길에 내몰렸다.
지난 17일 KB금융이사회는 임 회장에 대한 해임을 결의했다.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며 ‘명예전쟁’을 선포했던 임 회장은 금융당국의 제제는 물론 사법 당국의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강제로 회장 자리에서 끌어내려지며 역대 금융지주 회장 중 가장 비참한 행보를 이어가게 됐다.
주전산기 교체로 촉발된 대장들의 전쟁
발단은 익히 알려진 대로 국민은행의 주전산시스템 교체와 관련한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과의 갈등이었다. 임 회장은 국민은행이 현재 사용 중인 IBM 메인프레임 전산시스템을 유닉스 기반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주전산기 교체계획을 추진했지만 국민은행 경영진과 금융지주 이사진의 의견이 충돌하는 사태가 발생하며 외부적으로도 문제가 확대됐다.
KB금융이사회는 지난 4월 24일, 약 2000억 원의 비용을 투입하여 시스템 교체를 의결했지만 이 전 행장과 정명기 상임감사위원 등은 시스템 교체 결정 과정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나섰다. 특히 정 상임감사위원은 이사회가 유닉스 시스템으로 교체하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검토했던 일부 자료가 왜곡됐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국민은행 경영진은 이사회에 감사보고서 제출을 요구했고, 이사회가 이를 거부하자 금융감독원에 특별검사를 요청하며 금융지주와 은행 간의 내분이 외부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금감원,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전산시스템 교체와 관련한 KB사태가 임 회장과 이 전 행장간의 알력다툼 분위기로 전개되자 금융당국은 이들에 대한 징계를 예고하며 사태 해결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당초, 금융당국은 전산시스템과는 별개의 사항을 이유로 이들에 대한 징계를 심의했다. 임 회장은 이전에 발생했던 KB국민카드의 대규모 정보유출 사건과 관련하여 징계가 논의됐다. 임 회장은 해당 사건이 발생했던 지난 해 6월 당시 KB금융지주사장으로 있었으며, 이는 금융그룹 고객정보관리인에 해당하는 직위다. 또한 임 회장은 당시 국민카드의 분사 문제도 총괄하고 있었다.
반면 이 전 행장은 국민은행 도쿄지점 부당 대출 문제와 관련하여 징계 논의가 오갔다. 이 전 행장은 해당 사건 당시 리스크 담당 부행장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징계 결정은 단호하지 못했다. 당초 임 회장과 이 전 행장에 대해 중징계 방침을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던 금감원은 지난달 21일, 제재심의원회에서 ‘주의적 경고’를 내리기로 결정하면서 징계 수위를 경징계로 한 단계 낮췄다. 중징계를 받을 경우 관례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부담을 덜어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류는 보름만에 다시 바뀌고 말았다. 금감원은 지난 4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감원 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임 회장과 이 행장에게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 의견을 금융위원회에 건의했다고 밝혔다. 중징계를 결정했던 사안을 제재심의에서 경징계로 낮췄다가 이를 재차 번복하는 이례적인 결정이 내려졌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임 회장에 대해 직무상 감독 의무 태만으로 금융기관의 건전한 운영을 저해했으며, 주전산기 전환 사업 강행을 위해 자회사 임원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지적했으며, 이 전 행장에 대해서도 주전산기 전환 추진 과정에서 내부통제 부실로 위법 부당행위가 발생하고 사회적 물의를 야기했다고 징계 사유를 밝혔다. 그 동안 이들의 징계와 관련해 주전산기 교체는 관련이 없다고 말해왔던 금감원이 본격적으로 주전산기 교체 및 이로 인한 갈등을 핵심적인 문제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떠난 이건호, 임영록은 “싸우자!”
이 전 행장은 금융당국의 중징계 방침이 전해지자 바로 전격사임의 길을 선택했다. 이 전 행장은 “내 행동에 대한 판단은 감독당국에서 적절하게 판단하신 것으로 안다”고 짧게 입장을 정리했지만 “은행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하며 여운을 남겼다. 반면 임 회장은 결사항전의 자세로 나섰다.
금감원의 중징계 의견에 대해 ‘오해’라고 반박하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던 임 회장은 이후 금융위원회의 최종결정이 있기 전까지 두 차례나 기자회견을 통해 금융당국의 징계 결정이 잘못된 결정임을 강조했다.
임 회장은 주전산기 교체와 관련한 업체 선정과 가격조건 등은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는 상태라고 설명하며, “검토가 중단된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중대한 범죄라며 금감원이 중징계 처분을 내린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한 유닉스 프로그램의 실패율이 BMT결과 4%정도였다며 KB환경에 맞게 재조정할 경우 치유가능하다는 것을 이사회를 통해 사전에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주전산기 교체 방침의 적법성을 항변한 것이다. 유닉스 전환이 무리하게 추진됐다는 금감원의 징계 배경 설명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임 회장은 “리스크가 발생하지도 않은 사안에 대해 중징계를 결정하고 그룹 임직원들을 범죄자로 몰아붙인 것은 수용할 수 없다”며 진실규명으로 맞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 KB금융에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안정화와 경영정상화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금융당국의 조치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금융당국의 중징계 결정은 사실상 금융당국 수장에게 스스로 물러나라는 ‘권고 사퇴’임을 감안할 때 이 전 행장은 이를 수용한 것이고 임 전 회장은 이례적인 반발과 함께 전면적인 맞대응을 선택한 것이다. 임 행장은 금융당국이 어떠한 징계를 결정한다 해도 결코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으며 법적 소송을 불사하고서라도 일을 바로잡겠다고 천명했다.
금융당국, 도전에는 가차없이!
하지만 임 회장의 강경 대응에 금융당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금융위는 지난 12일, 임 회장에 대한 징계를 3개월 직무정지로 확정했다.
금감원이 건의한 ‘문책경고’보다 더욱 강력한 징계를 결정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CEO 리스크를 방치할 경우 KB금융의 경영건전성 뿐 아니라 금융시장의 안전과 고객 재산 보호에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경영정상화를 위해 조직을 흔들지 말라던 임 회장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번 징계로 인해 임 회장은 임기 후에도 4년간 금융권 재취업이 제한됨에 따라 사실상 금융권 퇴출과 다름없는 조치를 받게 된 것이다.
금융위의 이 같은 결정과 함께 금감원은 감독관을 투입해 KB금융지주에 대한 집중 감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임 회장이 직무정지 결정 직후부터 업무 보고는 물론 KB금융지주의 법무팀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인 반면, 금융당국은 임 회장의 집무실을 집중 감사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15일에는 임 회장을 업무방해죄 등의 명목으로 검찰에 고발하며 법적 조치 또한 선제적으로 행했다.
전방위적인 금융당국의 압박에도 임 회장은 사퇴 없이 소명할 것이라고 강경한 자세를 취했지만 이번에는 KB금융의 이사회가 움직였다. KB금융지주 이사회는 지난 17일, 긴급 이사회를 개최하고 임 회장의 해임을 결의했다. 결국 내부적인 갈등에서 출발해 금융당국과도 날선 대립을 보였던 임 회장의 ‘결사항전’은 수포로 돌아갔다.
금융당국은 또 무능했다
임 회장의 이번 징계와 관련해 주전산기 교체의 문제는 추후 정확한 조사가 필요한 문제일 수 있지만, 이와 관련한 금융 당국의 조치도 매끄러웠다고 볼 수는 없다. 금감원은 임 회장과 이 전 행장의 갈등이 표면화 된 시점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사태 진화에 나서지 못했고,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임 회장과 이 전 행장에 대한 중징계 카드를 꺼내들고 압박에 나설 때에도 ‘주전산기 문제가 아니다’라고 사안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이들에게 경징계를 결정하고 ‘법률 검토’라는 합의안 도출을 제안했다가 이것이 통하지 않자 돌연 ‘주전산기 관련 문제’를 징계의 쟁점으로 끌고 나왔다.
임 회장의 소명과 관련하여 거듭 징계 수위가 높아진 것도 금융 당국의 사퇴 권고가 통하지 않자 이에 대한 ‘화풀이 식 징계’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사실 상 ‘관치금융’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제대로 된 통제를 하지 못했으며, 임 회장과 이 전 행장의 갈등 과정에서 조율 능력의 부재까지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올해 초, 카드대란 사태부터 매끄럽지 못한 사태 해결 능력을 보여 왔던 금융당국은 이번 KB사태에도 제대로 된 금융 중추로서의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임영록, 무엇을 위한 투쟁이었나?
반면, 금융당국과 날선 공방을 벌였던 임 회장의 처신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임 회장은 금융당국의 징계 결정의 부당성을 강조하는 한편, 징계를 강행할 경우 KB에 가장 필요한 경영 정상화와 조직 안정화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을 꾸준히 언급했다.
그러나 3개월 직무 정지의 중징계를 받고서도 ‘사퇴는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며, 조직의 경영 문제를 우려하는 모습과는 배치되는 선택을 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결국 임 회장의 ‘결사항전’이 개인의 명예를 위한 싸움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번 사태로 인해 국민은행은 물론 KB금융은 만신창이가 됐다. 또한 KB금융의 LIG생명 인수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이미지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분명한 손실을 피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룹 전체를 생각해야하는 회장이 취해야 할 자세를 먼저 생각한다면 임 회장의 선택이 최선이었냐는 부분에서는 의문과 함께 아쉬움이 남는다는 지적도 이러한 부분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결국 주전산기 교체 문제에서 시작되어 금융당국과 KB의 대립까지 이어졌던 이번 사태는 모두에게 상처만 남긴 채 일단락됐으며 검찰의 수사와 각종 송사가 계속 이어질 예정이어서 앞으로도 많은 잡음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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