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금융권이 외면한 '레드 피플' 대책은
성인 5명중 1명 저신용자로 분류 제도금융권 이용 못해
이호영
eesoar@dreamwiz.com | 2007-03-02 00:00:00
최근 금감원이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20% 가량이 제도금융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성인 5명중 1명은 사채시장 이외에는 돈 빌릴 데가 없다는 것이다.
작년 한 해만 성인(18세~90세) 52만명이 신용불량자(신용등급 8~10등급)로서 제도권 금융권에서 퇴출됐다.
현재 신용등급 8~10등급에 해당하는 이들은 총 564만명으로 전체 분류 대상자 3468만명중 16.3%에 해당한다. 현실적으로 7등급인 157만명도 제도 금융권 이용에 제약을 두고 있는 것을 포함하면 제도 금융권에 퇴출된 '레드 피플'은 총 20.8%에 달한다.
2004년도 3239만명중 528만명(7등급 163만명), 2005년도 3338만명중 512만명(7등급 172만명)으로 지난해의 경우 저신용등급자가 가장 많다.
심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성인들은 3~5등급에 집중돼 있으며, 1~2등급, 6~7등급에 분포된 이들은 각각 400만명 가량으로 비슷하다.
특히 최저등급인 10등급에 216만명 가량이 몰려 있는 게 눈에 띈다. 이들 저신용자(8~10등급) 564만명중에서도 10등급이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저신용자 길음동 김 모씨는 "더 이상 손 벌릴 곳도 없고, 밀려오는 카드이자를 막지 못하고 대출회사를 찾기도 한다"며 "현재 금융제도 상황에서는 저신용자가 대출회사 이외 돈을 빌릴 데가 없다"고 말했다.
저신용자들의 불만은 사이버상에 잘 드러나고 있다.
다음(daum) 아고라 토론장에서 아이디 '소울메이트'는 "요즘 대출을 받아봤느냐. 일반 서민들의 경우 은행권 대출은 하늘의 별따기"라며 "그나마 담보없이 빌릴 수 있는 데가 사금융이다. 신용이 안 좋으면 사채를 써야 한다"고 토로했다.
현실적으로 사채 이용자들은 개인사업자금이나 생활비 등으로 인해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대부업체 관계자는 "몇 백만원 구하지 못해 주변 친구들이나 친척 형제들도 많을텐데 비싼 이자인 거 알면서도 대출회사 찾아오는 이들을 보면 대부분이 아주 영세한 서민들"이라며 "대부분은 대출받은 목돈으로 급한 불 끄고 회사 숨통 좀 트이게 한 후 비싼 이자라 몇달 안에 금방 갚는다"고 급전이 필요한 사채 이용자들의 현실을 전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부업이나 사금융업체에서 대출을 위해 한번이라도 신용조회를 하는 것만으로도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라며 "신용이 낮은 사람들의 경우 급한 마음에 이곳저곳 무분별하게 알아보는 과정에서 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 이용에서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채를 이용하게 되는 경우 고금리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에 대해 한 사채 이용자는 "합법적인 대출회사가 악덕고리사채업자와 동일하지 않다는 말은 맞지만 이자가 비싼 건 비싼 것"이라며 "현재도 그렇고 예전에도 그렇고 민간 사채는 전월세 전환율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아주 약간 높은 수준"이라고 전했다.
다른 이용자도 "합법적인 경우 마치 66% 이자가 별거 아닌 것처럼 말들하는데, 1000만원 1년간 빌리면 이자가 660만원"이라며 "은행 예금만 봐도 세금 등등 떼고 하면 이자 3~4.5% 정도 준다. 이자를 30만원에서 45만원 준다는 얘기"라며 대부업의 고리(高利)를 지적했다.
심상정 의원은 "새마을금고, 신용협동조합 등 서민금융기관 이용자 중에서도 30%가 대부업체 대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2006년도 기준으로 7등급 157만명도 사실상 제도금융 배제자에 가깝고 결국 우리나라 성인 5명 가운데 한 명은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배제돼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심 의원은 이어 "금융배제 문제에 대해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정부는 금융양극화 해소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심 의원은 이같은 현실과 관련 "기존 금융기관들에게 서민·지역대출 의무를 부과하기 위한 한국판 '지역재투자법'을 제정할 것, 영세 생계형 창업을 도와주는 사회연대기금(마이크로 크레딧)을 설립할 것, 학자금·의료비 등 긴급한 생계자금 때문에 고리대에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한 국책 서민은행을 설립할 것 등을 중심으로 법안을 마련 중이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많은 우려 속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서민층의 사채 이용 고리(高利)로 인한 개인 파산 등 피해를 막기 위해 이자율 한도를 40%로 제한하는 이자제한법이 조만간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던 재경부도 "불법 사채 이용자의 평균 대부금리가 연 192%에 달하고, 사채 이용자 중 35%가 부도상태거나 3분의1이 1년 이상 장기간 이용자였다"면서 이자제한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개인간 거래나 금전대차 및 음성적인 미등록 대부업에 한해 이자제한법을 도입하는 것과 동시에 등록·미등록 대부업체 및 할부금융사에 적용되는 현행 대부업법의 70%(시행령상 66%) 최고 이자율 한도도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낮추는 개정안도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재경위에는 이혜훈 의원안(30%), 심상정 의원안(40%), 수정안(50%) 등이 제출돼 있다. 한편 재경부는 급격한 인하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어서 이 경우 대략 50% 이상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대부업법 시행으로 66%로 최고 이자율이 제한된 이후 신용이 낮은 이들은 무등록업체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이들 업체의 부실채권 비율이 증가해 더욱 고리로 내몰리게 된 것을 지적하면서 이자제한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사금융 피해상담센터 자료에 따르면 등록업체의 이자율은 113%, 무등록업체의 이자율은 193%다. 등록대부업체나 무등록대부업체 모두 법정 이자율을 초과하고 있다. 이자제한법으로 더 까다로워진 조건 때문에 이들을 이용하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나면 음성적인 고리(高利)에 시달리는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이와 관련 재경부는 지난 2일 "이자제한법 도입으로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서민층에 대해서는 사회안전망과 대안금융 등을 통해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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