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퀴달린 노예인가!"
정부 2008년도 ‘표준운임제’ 약속해놓고...
정수현
su_best@hanmail.net | 2012-06-29 15:44:57
6월 25일 07시. 38만 명의 노동자들이 차를 멈추고 거리에 앉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김달식 본부장은 “화물노동자의 삶은 최악의 상태이다. 2008년보다 기름값은 27%나 올랐는데, 운임은 7%만 인상돼 화물노동자들은 월 320시간 넘게 일하고 시급으로 따져서 2천 몇 백원의 돈을 받고 있다. 전근대적 중간착취제도에 다름 아닌 다단계 하청 구조에서 유류환급금은 재벌 운송사들이 중간에서 가로채 역대 최고의 이익을 올리는데 퍼부어졌다”며 이번 파업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김본부장은 “2008년 6월 19일 정부와 화물연대가 합의한 ‘표준운임제’를 정부는 겉에 포장만 바꾼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참고운임제’로 변질시켰다. 그래 놓고 약속을 지켰다고 생떼를 쓰는 게 대한민국 정부다. 우리는 화물차를 사야만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정부는 우리들을 차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도 못 만들고, 산재 처리도 받을 수 없는 ‘현대판 바퀴달린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며 정부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쏟아냈다.
화물연대는 군산 세아베스틸과 익산 공설운동장, 전주IC 인근에서 거점농성을 시작했다. 연대가 요구하는 내용은 직접강제를 할 수 있는 표준운임제 실시와 일방적 계약해지 규제, 화물차주 계약갱신청구권, 재산권보호조항 등 실효성 있는 표준위수탁계약서를 제도화해 화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또, 도로관리청의 과적단속권 강화, 과적단속규정 현실화, 화주 및 운송업체 책임 강화, 3진 아웃제 실시 등의 과적근절대책과 현대글로비스, CJ대한통운 등의 화물시장 최상위 업체가 화물연대 교섭에 응하고, 운임인상에 적극 동참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표준운임제 반드시 ‘법’ 개정 되야
화물연대의 요구는 단순하다. 적정운임(표준운임)을 보장하고 중간착취를 없앨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라는 것이다. 이번 파업의 원인인 표준운임제에 대한 핵심쟁점은 화물노동자와 재벌운송사의 운임 차이에 있다.
화물연대가 요구한 표준운임제는 운송사가 화물차주에게 지급하는 운임의 적정가격을 정하자는 것으로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있듯이, 사실상 운송사에 고용되어 일하는 노동자인 화물 차주에게도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내놓은 표준운임제는 화주가 운송업체에게 지급하는 운임의 적정치를 정하려는 것으로 이는 표준운임제의 기본취지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재벌운송사가 대부분의 운송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제도는 화물운송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제벌운송사를 위한 제도라는 주장이다. 문제는 더 있다. 운송업체가 화주로부터 받는 운임이 올라가더라도 화물차주가 운송업체로부터 받는 운임은 올라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표준운임제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대측은 표준운임 지급에 대한 법 개정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부는 위반업체 명단 공표 및 동반성장지수 반영, 표준운임 준수 양해각서 체결, 화물차주의 운임계약 열람권 인정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표준운임제를 준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표준운임 지급에 대한 강제조항이 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연대는 특수고용노동자라는 불합리한 법적 지위 때문에 화물차주는 운송업체와 1:1로 교섭 및 계약을 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으로 법적 강제가 없을 경우 운송업체가 표준운임을 어기더라도 화물차주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화물노동자는 운송업체와의 관계에서 약자이며 그로 인해 과도한 지입료 납부, 번호판 강탈, 과적 강요, 계약해지 등 각종 부당한 일을 겪고 있다. 따라서 표준운임 준수에 대한 권고에 그치는 정부 안을 따를 경우 표준운임제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주장이다.
파업 피해 2,000억원...이해찬도 정부 비판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시작된 25일부터 각 지역의 무역업계와 기업으로부터 피해사례가 잇따라 접수됐다. 특히 이번 사태로 일본, 중국 등 인접국으로의 수출 차질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어 경남 본부 관계자는 “1차적으로 이들 기업의 바이어 신용이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글로벌 경기 불황에 이어 화물연대 파업으로 많은 중소수출기업이 이중고를 겪게 됐다”며 “추가적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번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파업 이틀째인 26일은 운송을 거부하는 차량이 3000대에 이르면서 물류대란이 가속화됐다. 충북 제천·단양 시멘트 4개 회사의 시멘트 육로 운송량도 30% 감소하는 등 피해가 컸다. 시멘트 업계에 따르면 화물연대 총파업이 단행된 25일부터 벌크시멘트 트레일러(BCT)를 이용한 시멘트 출하량이 급감했다. 아세아시멘트 관계자는 “하루 평균 150여 대였던 BCT가 파업 이후 120여 대로 감소했다”며, “화물연대의 선전전이 강화되고 비조합원들에게 대한 협조요청이 심해지면 BCT 운송량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3일째와 4일째는 비조합원들의 참여와 집회, 물류대란이 더해져 피해규모만 2,000억원에 이르게 됐다. 화물연대 집계에 따르면 광양항, 평택항, 포항철강공단, 부산항은 80% 이상이 운행을 중단했고 의왕ICD도 정상적 운행은 어려웠다. 이 밖에 주요 산업단지에서 비조합원들까지 파업에 들어가 27일 오전 자체 집계 결과 전체 대형화물차의 90%인 8만대 이상이 파업에 동참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는 27일 화물연대 파업에 관해 정부를 비판했다. 이대표는 “물동량이 줄고 경제가 어렵다보니 화물연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화물 요금은 별로 안 올라갔는데 기름값은 많이 올라 유류값을 감당치 못한다”며, “생존권 차원에서라도 파업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있다”고 파업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정부는 화물연대의 고통을 해결할 자세는 보이지 않고 엄중하게 처벌하겠다는 뜻만 강조하고 있다. 이 정부가 노동자들을 보는 태도가 어떤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며 “당 차원에서 심각하게 접근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운임료 9.9 %인상...수지타산 안 맞아
사태가 심각해지자 컨테이너운송사업자협의회와 화물연대는 ‘끝장 교섭’을 통해 29일 9.9% 운임인상에 합의를 봤다. 5일만에 전국적인 집단운송거부가 철회된 순간이기도 했다. 다만, 일부 업체는 인상분을 물류업체가 모두 부담해야 하고 작은 규모일수록 화주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반면, 연대측 조합원들은 “물류업체가 손해 볼게 무엇이냐, 운송료 인상분만큼 화주들에게 청구할 것 아닌가”라며 “물류업체들은 이번 파업으로 손 안대고 코 풀은 격”이라고 반박했다. 9%인상도 부족하다는 의견을 낸 조합원은 “우선은 9%로 만족하지만 15%이상은 인상돼야 수지타산이 맞지 않겠느냐”며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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