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 사회보험사업 담당 직원, 전원 ‘비정규직’

현장 투입 비정규직, ‘타인 명함’으로 업무 처리

유상석

listen_well@sateconomy.co.kr | 2012-05-18 14:57:45

정부와 여당은 최근 근로자의 복지향상과 관련해 많은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그 복지사업의 종류와 수혜대상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에 따라 산재보험 보상 및 징수, 고용보험 징수, 실업대책사업, 신용보증지원사업 등에 관한 사무를 국가로부터 위탁받아, 근로자들의 생존권과 복지업무를 수행하는 ‘근로복지공단’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 근로복지공단 근로자가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인력 충원을 요구하는 내용의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회보험제도 확대를 통한 사회보장 강화’ 라는 시대적 요구와 정부정책에 따라 지난 1월부터 자영업자에게도 고용보험과 실업급여가 적용됐고, 5월부터는 택배 및 퀵서비스 종사자에게도 산재보험이 확대 적용되기 시작했다.


오는 7월에는 10인 미만 영세 사업장에도 고용보험료가 지원되고, 2013년 1월부터는 중간퇴직근로자 산재ㆍ고용보험 개별정산제가 도입된다.


문제는 이 많은 사업을 수행해야 할 근로복지공단에는 신규인력 배정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나마 충원되는 극소수의 인원도 정규직원이 아닌 계약직원인 탓에, 좋은 의도로 시작한 정책을 인력 부족 때문에 망치게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근로자의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하면서, 정작 자기 기관 소속 근로자의 복지는 외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들리고 있다.


◇ 할 일이 넘치는데… 인력 충원 턱없이 부족


석경원 근로복지공단 노동조합 사무처장은 “퀵서비스ㆍ택배기사 산재보험 적용확대, 10인미만 영세사업장 고용보험료 지원 등 이번에 맡게 된 사업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신규인력 491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석 사무처장은 이어 “정부와 공단은 사업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전혀 배정해주지 않은 채, 사업 확대 홍보에만 열을 올렸다. 충분한 준비 없이 시작하는 정책은 취약계층 보호라는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결국 선심성 정책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과 같은 상태로 진행된다면 우리 공단 직원들의 업무가 가중되고, 그로 인해 대국민 서비스가 부실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인력 부족 문제는 예전부터 제기되어온 바 있다. 지난 2008년 산재보험법 전면개정에 따라 926명의 신규 인력이 필요했으나, 실제로 충원된 인원은 71명에 불과했다. 2011년 산재보험 ‘근로자 고용정보관리제’ 등 사업 시행 당시에도 933명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실제 반영된 인원수는 겨우 190명이었다.


그나마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게 충원된 신규 근로자도 전원 정규직이 아닌 임시 계약직이다. 한정된 예산 범위 내에서 최대한 많은 인력을 충원해야하는 탓이다.


석 사무처장은 “퇴직금은 예산에 반영되지 않아 지급할 수 없는 탓에, 1년 미만으로 근무기간을 정한 임시 계약직을 채용할 수밖에 없다. 이들을 재고용할 경우 근로계약의 반복갱신에 해당해, 퇴직금을 지급하거나 계속 고용해야하는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근로계약이 끝난 계약직원과는 재계약이 불가능하다. 신규로 투입된 인력이 업무에 숙련될 수 없는 구조”라며 “결국 기존 직원은 인력이 추가로 투입됐음에도 업무 부담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불안한 신분, 떨어지는 전문성… 신규 사업, 방향 잃고 비틀비틀


근로복지공단 서울북부지사에서는 컴퓨터 등 사무집기도 없는 책상 앞에 10여명의 계약직 근로자들이 앉아 제각각 전화기를 부여잡고 통화를 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책상 사이 칸막이가 설치돼 있지 않아 그들의 전화 목소리는 한데 뒤엉켜 사무실을 울렸다.


서울북부지사의 경우 보험가입을 담당하는 부서의 정규직 직원이 매일 아침 지역 내 지원사업 해당 사업장리스트를 프린트해 계약직 근로자인 가입지원요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표로 된 사업장 정보를 받아든 가입지원요원들은 리스트를 나눠 가진 뒤 전화를 걸어 내용을 확인한다. 고용된 근로자가 몇 명인지ㆍ노동자 임금수준은 얼마인지 등을 세세하게 사업주에게 물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다.


보험가입 대상사업장으로 판단되면 직접 방문해야 한다. 가입지원요원 김모씨는 “우호적인 사장님보다 매몰차게 거절하는 사장님이 더 많다”며 “성과가 잘 나오지는 않는 실정이다”고 귀띔했다.


가입지원요원이 신분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신세라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진다. 이들은 외근을 나갈 때면 대부분 자신의 명함 대신 정규직 직원의 명함을 들고 나간다. 김씨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보험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문의는 명함에 있는 곳으로 전화하세요’라고 말한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대상사업장을 확인ㆍ방문해 보험가입 승낙을 받았다고 업무가 끝난 것은 아니다. 가입지원요원은 보험가입 업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입지원요원이 가입승낙서류를 가진 채 오후 늦게 사무실로 돌아오면 보험가입업무를 담당하는 공단 정규직 직원이 업무를 넘겨받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입지원요원도 업무에 대한 책임성이 부족해지고, 정규직 직원도 사회보험료지원사업을 짐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체계적인 업무 진행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14명의 가입지원요원이 시범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안양지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안양지사에서 계약직 근로자로 근무하는 이모씨는 “비정규직 100명보다 정규직 1명이 낫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화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방문을 통해 보험가입을 유도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외부 출장도 가입지원요원들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하루 4시간 이상 외부 출장 시 1일 2만원의 출장수당이 지급되지만, 이것도 한 달에 15일에 한해서다. 애초부터 가입지원요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할 여건이 아닌 셈이다.


◇ “근로자 위해 일하지만, 자신의 근로자 챙기지 못해” 지적도


근로복지공단 노동조합 측은 우선 공단본부ㆍ정부종합청사ㆍ새누리당사 앞에서 집회 및 1인 시위를 실시하고, 주요일간지 신문광고, 전 조합원 리본달기, 근무시간 중 투쟁복 착용, 중식시간 준수, 정시출퇴근 등의 방법으로 투쟁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석경원 사무처장은 “이번 투쟁이 잘못된 정부정책에 일침을 가해, 인력ㆍ예산 등을 지원하지 않은 채 신규 사업이 시행되는 반복적 악습을 없애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동법학자는 “근로자의 복지를 위해 일하는 기관이 바로 근로복지공단인데, 그 근로복지공단 직원이 이와 같이 불합리한 일을 겪는다는 것은 비극적인 모순”이라며 “파업과 같은 최악의 사태로 번지기 전에 문제가 해결돼, 근로자를 위한 복지 정책에 차질이 생기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쨌든 이 문제의 원인은 예산이나 인력 등의 지원 없이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부 탓”이라며 “좋은 의도로 시작한 정책을 인력 문제 탓에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편 근로복지공단 측은 본지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신규 사업의 확대 규모에 비해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내ㆍ외부적으로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올해 맡게 된 여러 가지 사업은 공단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지시에 따라 진행하는 사업인 탓에, 우리의 공식 입장을 밝히기가 애매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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