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매혹적인 악마가 만든 향기
향수…중독된 사랑을 깨우다
송현섭
21cshs@sateconomy.co.kr | 2006-11-27 00:00:00
향수, 언뜻 제목만 놓고 보면 한없는 아름다움과 연인들의 사랑을 찬미하는 소설인 듯 하지만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독자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특히 지상최고의 향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연쇄살인까지 저지르는 주인공 그르누이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어이없게도 천진난만한 구석이 많다.
저자는 탁월한 상상력으로 최고의 향수와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어내려는 동화 같은 이야기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연쇄살인을 적절하게 섞어 보여준다. 따라서 사랑을 불러오는 매혹적인 향수를 매개로 죽음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네크로필리아를 보여주는 스토리는 독자들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소설은 18세기 프랑스의 뒷골목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상최고의 향수를 위해 엽기적인 스물다섯번의 연쇄살인까지 마다하지 않는 주인공 그르누이의 악마적인 이야기는 중독된 사랑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우선 그르누이는 1738년 한여름 프랑스 파리의 음습하고 악취가 나는 생선 좌판대 밑에서 매독에 걸린 젊은 여인의 사생아로 태어난다.
그리고 곧바로 생선내장이 뒤섞인 쓰레기더미에 버려진다. 버림받은 아이는 악착같은 생명력으로 살아남고 대신 어머니는 영아살인죄로 교수형에 처해진다. 태어나자마자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 냄새에 관한 한 천재적인 본능을 타고났다.
스스로는 아무런 냄새가 없지만 세상의 온갖 냄새에 대해 비상한 반응을 나타내며 심지어 암흑 속에서 냄새만으로 목표를 찾아내기까지 한다. 그는 여러 유모의 손을 거쳤는데 탐욕스럽게 젖을 빠는데다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어야 할 냄새가 전혀 없다는 이유로 유모들에 의해 또다시 버려지는 등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무두장이의 도제로 일하던 어느 날, 그는 미세한 향기에 이끌려 황홀한 향기를 내는 처녀를 발견한다. 그는 그녀를 목졸라 죽이고 매혹적인 향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주인공은 첫번째 살인이후 파리의 향수 제조업자인 발디니의 도제로 들어간다.
바로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최대목표가 세계최고의 향수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끊임없이 매혹적인 향수를 개발해낸다. 그러나 그는 곧 한계를 느끼고 악취로 가득 찬 어둠의 도시 파리를 떠나 산 속에 있는 외진 동굴에 살며 그곳에 자신만의 왕국을 꿈꾸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경악을 금치 못할 사실을 깨닫고 7년만에 인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향수 제조업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도시인 그라스로 간 뒤 인간의 냄새를 만드는 일에 골몰한다. 그는 물론 지상최고의 향수, 즉 사람들의 사랑을 불러일으켜 그들을 지배할 수 있는 그런 향기를 만들어 내려했다.
한편 사람들의 사랑을 얻는 목적에는 연속살인이란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라스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머리칼이 모두 잘린 채 나신의 변사체로 잇따라 발견된 것이다. 스물다섯 번째로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향기가 나는 소녀를 취한 뒤 그는 결국 체포돼 처형된다.
주인공인 살인광의 광기 어린 살인행각은 긴장감을 야기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중독된 사랑의 사례들을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다. 사랑지상주의 안에 내포된 악마적인 모습, 그것이 저자가 우리들에게 알리고자 한 핵심내용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열린책들,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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