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철도公 공황장애 기관사 방치, 시민 안전 ‘나 몰라라’

10개월 간 정신질환 치료받은 기관사가 지하철 운전대 잡아

유상석

listen_well@sateconomy.co.kr | 2012-05-11 14:31:24

서울도시철도공사가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기관사의 전직 신청을 특별한 이유 없이 거부하는 등, 승무원의 정신 건강을 방치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전직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를 비관한 기관사는 지난 3월12일 5호선 왕십리역 선로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료 직원들은 “투신하기 10분 전까지 지하철을 운전해야만 했던 그가 어지러움, 메스꺼움 등을 호소하며 ‘열차를 타고 싶지 않다, 피하고 싶다’고 말해왔다고 증언했다.


도시철도 노조는 지난 3일, 이 기관사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는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공황장애와 같은 직업성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승무원이 운전하는 지하철이 과연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지 짚어본다.


◇ 사망 기관사, 사망 당시까지 10개월 간 정신질환 치료 받아


故 이 기관사는 2011년 5월부터 사망 당시까지 업무상 사유로 발생한 직업성 정신질환 치료를 받아왔다. 고인은 1995년 5월1일 서울도시철도공사에 전자직으로 입사한 후 기관사 면허를 취득해 2006년 6월30일 승무직으로 전직했다.


전직 당시 건강상태가 양호했던 고인은 2011년 4~5월경 열차 운전 중 어지러움, 메스꺼움 등의 증세를 호소했다. 2011년 4월16일 열차 운행 중 출입문에 승객이 끼어 하차하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한 직후에는 그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


고인은 2011년 5월20일 ‘경희대 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를 찾았고 직업성 정신질환의 일종인 ‘공황장애(우발적 발작성 불안)’라는 진단을 받아 사망 당시까지 치료를 받았다. 그는 치료를 받는 동안 줄곧 “열차를 타고 싶지 않다. 피하고 싶다”고 말하며 열차 운전에 따른 극심한 직무스트레스를 호소했다.


2003년 이후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는 공황장애 등 직업성 정신질환으로 3명의 기관사가 자살했다. 이와 관련 도시철도노조가 서울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에 역학조사 및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시와 사측은 공황장애 등 직업성 정신질환이 발병한 기관사들을 전직시키는 임시방편만 취했다.


그나마 희망자 모두를 전직시키지도 못했다. 2011년 12월~2012년 2월 사이 되돌이 운전(운전 부주의 등의 이유로 멈춰야 할 지점을 통과한 후, 되돌아오는 것), 무정차통과 등 지하철 역주행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자 고인의 불안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정신질환 치료를 받고 있던 고인은 자신이 일으킨 사고가 아님에도, 똑같은 실수로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염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공황장애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탈출구로 전직 신청을 했지만, 사측은 별다른 이유 없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인은 전직신청이 거부된 이후에도 계속 열차운전을 했다. 사망사고 4일 전부터는 단 하루도 쉬지 못한 채 연속으로 열차운전을 해야만 했다. 게다가 사망 전날에는 집에도 못가고 고덕기지에서 숙박을 한 후 사망 당일 아침 07시55분까지 운전했다.


그는 지속된 열차운전으로 인해 예측 곤란한 돌발적 정신이상 상태에 놓였고 열차운전을 마친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은 08시05분 경 왕십리역 선로에서 열차에 치여 싸늘한 주검이 되고 말았다. 퇴근시간을 20분 남겨둔 상황이었다.


◇ 자살의 원인이 된 공황장애, 업무상 재해로 인정돼야


도시철도 노조의 한 관계자는 “1인 승무에 따른 과도한 부담, 사고에 대한 부담, 장시간 지하운전에 따른 피로감, 시간에 대한 강박, 위계적인 조직문화 등이 직업성 정신질환의 발병 원인”이라고 분석하며, “2008년 이후 기관사들의 노동조건은 보다 악화됐다. 수동운전 실적 강요, 퇴출프로그램 운용, 복수노조제도를 악용한 경직된 노사관계, 통제적 인사관리 등이 노동자의 직무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킨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기관사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원인을 밝혀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사고가 계속 발생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시민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인의 정신과 치료를 담당한 조성훈 경희대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교수는 고인의 사망과 업무관련성에 대해 “공황장애는 자살률이 높은 정신질환으로, 직무스트레스가 공황장애를 유발하였으며, 이에 자살의 인과관계가 있을 수 있다”며, 업무상 발생한 직업성 정신질환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 기관사의 정신건강과 시민의 안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 및 같은 법 시행령 제36조(자해행위에 따른 업무상 재해의 인정기준)는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고인의 사망은 명백히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 것이다.


고인의 사망은 한 지하철 승무원의 단순한 사망사고가 아니다. 도시철도 노조 관계자는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수많은 기관사들이 고인과 같은 직업성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무런 대책도 마련되지 않은 채 열차운전을 계속하고 있다”며 “이런 문제가 지속되면 열차안전사고로 이어져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인의 사망을 계기로 서울지하철 운영 주체인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서울메트로의 열차 운전업무에 대한 정확한 현장실태 조사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공황장애를 비롯한 직업성 정신질환의 원인을 밝혀내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시철도노동자 건강권 확보와 시민안전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故 이재민 기관사의 산재인정 뿐만 아니라 시민안전 대책을 위해 도시철도 노동자 정신건강 장애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위원회는 “책임있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반드시 서울시 위원회 산하에 ‘소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해당 ‘소위원회’에서 철저한 실태조사와 원인분석을 통해 도시철도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 대책과 시민안전 대책을 수립해 한다. 또한 이후에도 지속적인 평가와 점검을 통해 고인과 같은 사고가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근로자가 스스로 자신의 신체에 해를 입히거나 자살한 등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산재 처리가 되지 않는다”며 "다만 업무상의 사유로 생긴 정신적 이상 상태라는 점이 인정되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산재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산재 인정 여부가 결정되기까지 짧게는 1~6개월, 길게는 1년 가까이 소요된다. 특히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인과 관계를 밝히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결정 기간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 도시철도공사, “직무환경개선연구소 설립 통해 시민 안전 배려할 터”


도시철도공사는 본지와의 통화를 통해 ‘직무환경개선연구소’ 설립을 추진하고, 근무환경을 개선해 기관사 직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 박주리 차장은 “직원의 건강관리와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직무환경개선연구소’를 신설해 최적의 근무환경을 연구하고 개선대책을 마련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정기적인 기관사 심리 상담을 실시하고, 선로 터널 내 조명등을 점등해 기관사들이 더 밝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배려하며, 쾌적한 근무환경을 위해 운전실에 공기청정기 또는 산소발생기를 시범 설치 후, 기관사들의 반응이 좋으면 전면 확대 운영하는 등 기관사의 직무 스트레스를 해소해 시민 안전을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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