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은 왜 편의점에 왜 무릎 꿇었나

非 약사의 약품 판매, 면허 대여로 인해 국민 신뢰 ‘바닥

유상석

listen_well@sateconomy.co.kr | 2012-05-11 14:28:39

지난 5월2일 가정상비약을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약사법개정안 통과로 20개 이내 품목의 일반 약은 약국뿐만 아니라 편의점ㆍ슈퍼 등에서도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약의 안전성 문제를 염려해 전문 직업인으로서 자존심을 걸고 막으려 했던 약사들의 외로운 싸움은 결국 ‘국민 여론’을 등에 업은 정부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약은 약사에게’라는 오래된 대명제가 국민에게 외면받게 된 이유를 짚어본다.


◇ 복약지도 부재가 신뢰 하락 원인


경희대 의료경영대학 김양균 교수가 지난 2011년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0% 이상이 의약분업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사람 중 절반은 ‘편의성을 위해 선택분업이 도입돼야 한다’고 답했고 나머지는 ‘조제료 절감을 위해 선택분업을 도입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또 "조제료가 동일할 경우 약국과 의료기관 중 어느 곳을 선택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병원을 선택하겠다는 응답(73%)이 약국(27%)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이런 결과는 의약분업 이후 국민들의 약국과 약사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졌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의약분업 전후를 나눠 신뢰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정확히 분석한 연구는 없지만 소비자들이 분업 이전에 비해 약국이 덜 편하다고 느끼는 것만큼은 현실이다.


그렇다면 약사 사회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어디서부터 떨어지기 시작한 것일까. 그 원인은 약국 ‘접근성’ 문제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의약분업 이후 약국들이 처방전 수요를 중심으로 운영되다보니 의원과 약국 간 관계가 수직화 됐다는 지적은 약사 사회에서도 늘 들려왔다.

국민에게 약국은 곧 주변 의원 처방전 수에 울고 웃는 종속관계로 보이기 시작했고, 병원이 문을 닫는 저녁 7시에 같이 셔터를 내리는 곳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결국 접근성 측면에서 약국은 국민들이 기억하던 예전 약국의 이미지를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당번약국 제도가 정착되지 못한 점과 심야응급약국 시범사업의 사실상 실패도 ‘약은 약사에게’ 사야 한다는 소비자 의식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


소홀한 복약지도는 ‘일부 일반 약은 더 이상 약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여론 형성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과거 복약지도 수준에 머무를 뿐, 발전하지 못한 현실은 ‘제대로 된 복약지도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약국과 일반 소매점이 다를 바 없지 않느냐’ 같은 비수를 만들어냈다. 약사 스스로가 ‘약사=약’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까닭에 ‘약사=약=복약지도’를 생각한 소비자의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던 것이다.


오성곤 대한약사회 전문위원은 “의약분업 이후 약국이 의원에 종속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민들은 약사에게 가졌던 신뢰를 접게 됐다”며 “약국은 단순히 병원에서 나온 처방전을 조제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늘면서 약사가 약의 전문가라는 명제 자체가 흐려졌다”고 말했다. 결국 처방과 조제 사이의 공백을 채워줄 전문적이고 치열한 복약지도가 부족했던 셈이다.


◇ 국민에 다가가려는 노력 부족으로 ‘정치적인 이익집단’ 낙인


이번 ‘상비약 편의점 판매’ 도입은 약사 사회가 여론에 철저하게 패배한 결과다. 약사들이 여론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원인은 크게 약사사회 내부의 문제와 사회 환경적 원인으로 나눌 수 있다.


약사 사회는 먼저 약의 안전성에 대한 이슈를 선점하는 데 실패했다. ‘식후 30분’이 복약지도 소홀을 풍자하는 상징으로 전락하고, 약사가 아닌 일반 직원이 약을 판매하는 행위, 약사가 아닌 자가 타인의 면허를 빌려 약국을 운영하는 행위 등이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약은 약국에서만 구입해야 안전하다’는 국민의 믿음을 무너뜨렸다.


국민에게 한발 다가서려는 약국의 치열한 노력의 부재도 여론이 약사에게 등을 돌린 원인 중 하나다. 복약지도 내용을 라벨용지 등 스티커 재질의 종이에 쓰거나 인쇄해 약 상자에 붙여줌으로써 환자들이 쉽고 안전하게 약을 복용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약사회가 추진한 ‘스티커 복약지도’ 캠페인이 일부 약국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약 편의점 판매 저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이나 장외투쟁 등은 애초에 국민 여론을 약사 편으로 돌리는데 역부족인 방법이었다.


약사회를 중심으로 한 국회, 복지부와의 협의 과정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약사사회는 정치권과 한통속인 이권집단’이라는 부정적 인식도 가져왔다. 즉 일반 소매점에서의 약 판매를 저지하려는 약사들의 외침은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이기심으로 비쳐진 것이다.


사회 환경적 측면에서도 약사들의 전문성이 무조건적으로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늘 연구하고 노력하지 않은 채, 약사 면허증만으로 그 전문성을 영구히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해 의약품에 대한 정보 접근이 손쉬워지면서 환자들은 더 이상 약에 대한 정보를 약사에게서만 얻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가 먹는 약에 관한한 의사와 약사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소비자들이 많은 것이 현실인데, 약국의 대응은 ‘늘 하던대로'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약사회의 한 관계자는 “지금 여론이라면 의약품 슈퍼판매를 넘어 약사 사회를 더 크게 위협할 수 있는 변화도 올 수 있다”며 “이번 약 소매점 판매 논란은 약사들이 정부가 아닌 국민 여론에 무릎을 꿇은 결과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소비자가 곧 法인 사회… 약사도 변화해야


21세기는 소비자의 요구가 법안까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시대다. 약의 안전성이라는 근본적 대명제가 편의성이라는 국민의 ‘요구’에 밀려 법안 개정까지 이어진 일련의 상황이 바로 그 증거다. 이런 현실에서 약사, 그리고 약국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약사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국민 인식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는 약 전문가로서의 약사가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다는 이야기다.


한오석 의약품정책연구소장은 “의약품 소매점 판매를 ‘약사를 위협하기 위한 현 정부의 움직임’ 따위로 단순하게 치부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약사 사회는 ‘약사는 약의 전문가’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다시 확산시킬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 소장은 “‘복약지도를 듣지 않으려 한다’처럼 약사들아 소극적으로 변명하는 태도는 결국 또 다른 화를 부를 소지가 크다”며 “어려운 조건을 넘어설 각오가 있어야 약사 사회가 살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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