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행수입 파랑, 수입브랜드 콧대 꺽일까
명품브랜드 대거 상륙…소비자는 반색, 업계는 난색 ‘희비 교차’
김수정
ksj891212@naver.com | 2014-01-17 11:22:22
[토요경제=김세헌 김수정 기자] 정부가 오는 3월 병행수입 활성화 추가 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새로운 병행수입제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빗발치고 있다. 정부는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비싼 수입품 가격에 대한 소비자 반발이 빗발침에 따라 새 병행수입제를 통해 ‘가격 거품’을 뺀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러나 이른바 ‘짝퉁’을 가려내는 유통관리의 문제점과 사후수리 방안이 미흡할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이번 병행수입 활성화 카드가 수입품의 거품 가격을 잠재울 수 있을지에 대해 소비자의 관심도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 수입업체·병행수입업체 간 가격차 최대 60%
정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독점 판매권을 가진 수입업체와 병행수입업체의 제품 간 판매 가격 차이는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60%까지 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기획재정부는 최근 수입품 품질 인증을 위한 통관인증과 같은 진입장벽을 완화하고, 병행수입 실적을 비롯한 병행수입업체 인정 기준을 대폭 낮춘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 통관 인증에 필수 요건으로 규정된 시설·인력 기준과 검사절차도 간소화한다는 계획이다.
기재부는 병행수입 활성화를 위해 ▲코스트코 등 외국계 대형할인점, 아마존 같은 외국 인터넷쇼핑몰이 수입품을 대량구입해 국내에 유통하도록 하는 방안 ▲국내 업자가 해외 유명 브랜드와 도매계약을 해 수입하도록 하는 방안 ▲국내 회사가 외국 상품의 원산지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해당 제품을 싸게 수입해 국내에 유통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는 코스트코라는 거대 수입유통업체가 홀세일 매장을 독점해왔다. 코스트코는 회원제 마트이고, 심지어 현금결제가 아닐 경우 특정 신용카드사 이용을 고집하고 있다.
이러한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소비자는 싼 가격에 수입제품을 대량으로 살 수 있는 점, 고급 먹거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점 등을 큰 장점으로 꼽고 있다.
코스트코는 또한 일반 소비자가 명품을 비교적 쉽게 소비하는 것이 가능해진 상황을 일컫는 ‘매스티지(대중+프레스티지)’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 “가격인하 부를 것” vs “짝퉁시장 기승”
소비자 수요 증가와 함께 정부의 이번 수입병행화 활성화 대책이 맞물리게 되면 관련 시장의 규모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이와 관련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정식 의원은 지난 13일 공산품의 수입 가격을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의 관세법 개정안을 공동발의 했다. 조 의원은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수입판매업체들이 과도한 폭리를 취하고있다”며 “공산품 수입 가격 공개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라고 말했다.
관세법 개정안을 통해 수입가격이 공개되면 이 또한 가격인하 효과를 부를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인하대 이은희 교수(소비자아동학)는 “자유무역협정(FTA) 이후에도 수입품 가격은 너무 비싸다”며 “소비자가 가격 정보를 정확히 알면 현혹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인터넷 누리꾼 사이에선 “병행수입을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지만 국내 중소기업이 더 힘들어질까 걱정된다”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병행수입 물품의 경우 사후관리(A/S)가 어렵고 중소업체의 경우 수입 자격 획득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비자 일각에서는 “짝퉁 시장만 잘 단속된다면 좋을 것”과 같은 유사한 반응을 보이며 병행수입 활성화에 따른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국내 한 언론매체에서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11월초까지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수입품 13종의 한·미·일 소비자가격에 대한 보도에 따르면, 폴로의 경우 지난 7월부터 국내 가을·겨울 신상품 가격을 최대 40% 인하했지만 여전히 미국보다 30%정도 비쌌다. 특히 인기 품목인 프레드페리 남녀 피케셔츠는 미국은 85달러(약 9만1120원)이지만 국내에선 15만8000원이라는 두 배 수준의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유럽 제품도 매한가지. 요즘 여성들에게 레인부츠 열풍을 불게 한, 할리우드 여성들이 가장 많이 신고 있는 영국 헌터부츠의 경우, 일본 편집매장 판매가격은 1만2600엔(약 13만5642원), 미국현지 판매가격은 150달러(약 16만8000원)다. 반면 우리나라의 판매가격은 19만8000원에 달한다.
수입품시장 독점체제 문제점의 중심에는 수입 유모차가 꼽힌다. 수입 유모차는 아기가 있는 엄마들 사이에서 ‘유모차를 보면 그 집안의 수준을 알 수 있다’는 왜곡된 인식이 퍼지면서 사회의 원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스토케, 잉글레시나, 맥클라렌, 퀴니, 오르빗, 트립 등 대표적인 수입 브랜드 유모차의 국내 가격은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에선 최고 2.2배나 높게 책정되고 있다. 특히 보령메디앙스가 독점 판매하고 있는 잉글레시나의 ‘트립(Trip)’ 제품은 네덜란드에서 19만3000원 가격에 판매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42만5000원으로 2.21배나 더 비싸게 판매되고 있다.
이와 관련 소비자시민모임(소시모) 한 회원은 “유모차가 대부분 백화점을 통해 판매망이 구축돼 있으며 수입업체와 공급업체가 독점적으로 정해져 있어 경쟁을 통한 가격 형성이 이뤄지지 못하고 고가 마케팅 전략에 의해 가격이 책정 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실제 소시모가 국내에서 판매되는 해외브랜드 유모차의 유통과정과 마진 등에 대해 조사한 결과, 국내 수입 유모차의 수입업체 유통마진은 30%내외, 공급업체 마진은 15~20%, 백화점 유통업체 마진은 30~35% 정도이며, 여기에 물류비 5~7%, A/S비 10% 내외 등 각종 제반 비용이 포함돼 최종 소비자 판매가격은 수입 원가 대비 3배 이상으로 책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 독점횡포 방지 위해 제도적 뒷받침 필요성 대두
수입 제품의 유통구조는 해외본사에서 국내수입품 판매법인인 ‘OOO코리아’ 또는 한국 수입권자가 대리점 또는 백화점·면세점·로드숍 등의 유통판매처를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4단계로 이뤄진다.
유통구조가 복잡한 편은 아니지만 유통·소비자 전문가들은 독점권을 가진 수입업자와 해외 본사들이 가격을 부풀려 책정하는 데 원인이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회사로부터 식품을 수입해 파는 국내의 한 식품회사는 “가격에 대해서는 우리가 말도 못 꺼낸다”며 “가격을 낮춰 공급해 달라고 하면 공식 수입업체를 바꿔버리는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고 성토했다.
또한 지난해부터 병행제품의 진품 여부를 보증하기 위한 QR코드를 도입했지만 오히려 병행수입 장벽만 다시 높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식품 병행수입 업계에서는 미국과 일본에서 이미 검증된 브랜드 제품인데도 불구하고 성분표를 다시 요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규제는 결국 독점 수입권자의 권리만 보호해주는 꼴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한국에서 유독 수입품 가격이 비싼 것은 독점 계약 때문에 자율 경쟁 체제가 불가능한 유통 구조 때문”이라면서 “병행 수입 폭을 더 넓히고 특정 업체가 독점 수입하는 것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병행수입이 이미 1995년에 합법화됐지만, 활성화는커녕 오히려 ‘불법’ 취급을 받고 있는 형국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바로 독점유통이 공식화됐기 때문이다. 독점권을 딴 유통업체들은 자사의 제품에 정품이라는 말을 붙이고, 병행수입품에 대해 A/S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나쁜 인식을 심어줬던 게 사실이다.
소비자시민모임 한 관계자는 “병행수입 업체들이 영세하다 보니 지속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물건을 공급하기가 쉽지 않다”며 “실제로 병행수입업체가 ‘한탕’ 하고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병행수입 활성화 앞으로의 과제는?
정부의 이번 병행수입 활성화 방침에 국내 기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 한 회원은 “이케아가 들어오면서 제품 가격은 하락했지만 국내 영세 가구공장은 망한 격”이라면서“ 결국 힘 있고 돈 많은 기업만 키워 주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일부 소비자들은 수입업자의 독과점이나 병행수입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유통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해외브랜드의 공식 수입업체들도 병행수입 확대에 대해 난색을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캐나다구스의 국내 공식 판매원인 코넥스솔루션 관계자는 “공식 판매원을 통해 구입한 소비자는 평생 A/S를 제공하지만 병행수입품 구매자에게는 제공하지 않는다”며 “비싼 값을 주고도 공식 수입품을 사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수입브랜드 관계자는 “최근 온라인상에서 병행수입제품 거래 물량이 많아지면서 수선 등 제품 불량 관련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며 “수입 물량에 비해 소비자 불만 건수가 많아 조사해보니 온라인을 통해 구입한 제품을 한국 공식 판매처로 접수한 사례가 상당수였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병행수입 제품의 판매경로가 많아지면 가품 즉, ‘짝퉁’을 유통시키는 업자들이 난립할 것이라는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병행수입제품 활성화 대응책에 앞서 ‘유통질서 확립’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도 속속 나오고 있다.
미국 의류브랜드 아베크롬비앤피치는 지난해 11월 한국지사를 설립해 병행수입 매장을 없애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폴로 랄프로렌은 국내 인터넷 사용자 온라인몰 접속을 차단했다. 이처럼 일부 브랜드들은 병행수입과 직구를 원천 봉쇄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소비자들은 병행수입제품 구매 시 가품을 살 수 있다는 불안감보다 정식 경로로 수입되는 제품의 지나친 고가 제품이 더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유통분야 한 전문가는 “수입자와 소비자가 근본적인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 방침이 나와야 한다”면서 “수입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 병행수입 통관 관련 진입장벽을 완화하고, 유통관기 시스템을 재정립하며, 소비자를 위해 병행수입품에 대한 공동 애프터서비스가 확립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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