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2차 협상, 사실상 결렬

협상 마지막날, 양측 모두 '협상 취소' 카드 의약품, FTA 협상 타결 걸림돌 작용 우려

황지혜

gryffind44@hotmail.com | 2006-07-18 00:00:00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협상이 사실상 결렬로 끝을 맺었다.

2차 본 협상 마지막날인 14일 무역구제, 서비스, 상품무역, 환경 등 4개 분과 협상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양측이 일방적으로 모든 협상 일정을 취소했다.

14일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미국 측이 우리 정부의 '건강보험 약가책정 적정화 방안' 시행에 불만을 표시, 무역구제 및 서비스 분과 협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면서 "이에 따라 이들 분과는 어제부터 협상 마지막 날까지 협상이 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의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는 이날 오후 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의약품 분과 협상을 중단한 이유는 한국 정부가 약가 적정화 방안을 추진하는 한 회담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우리 대표단도 이날 예정된 4개 분과 협상을 전부 취소 통보함으로써 2차 협상의 끝을 맺었다. 이처럼 양국간 갈등이 증폭된 것은 약가 적정화 방안에 대한 양국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11일 열릴 예정이었던 의약품, 의료기기 작업반 협상에서도 이 관건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긴 미국 측이 철회를 요구하며, 일방적으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이토록 미국이 반대하는 우리 정부의 건강보험 약가 책정 방안의 '포지티브 시스템(선별목록)'은 효능을 인정받은 신약이라고 해도 모두 건강보험 적용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고, 가격 대비 효과가 우수한 의약품만 선별해 등재하겠다는 방식을 말한다.

정부는 지난 5월 건강보험 약가 책정 적정화 추진방안을 발표, 오는 9월부터 포지티브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허가된 의약품의 대부분을 건강보험 대상에 포함시키는 네거티브 시스템이 시행 돼 왔다.

그러나 미국 측은 이를 정면 중단하고, 적정화 방안을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의 상호 협의하자는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이렇게 강경하게 건강보험 약가 책정 적정화를 반대하는 것은 이 방안이 책정 될 경우, 미국의 신약이 차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는 지난 10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가 발표한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은 혁신적인 신약을 차별하게 될 것이며 이렇게 되면 한국의 환자와 의사들이 신약에 쉽게 접근할 수 없게 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종훈 우리측 수석대표는 "적정화 방안은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신약이 건강보험에 등재돼 (엄청난 돈을) 환불받는 것을 막자는 것으로 국민건강과 직결된 사안이며,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를 위해서도 철회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타협안 도출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의약품 문제가 FTA 협상 타결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비록 마지막날 '협상 전면 취소'라는 파행으로 끝이 난 협상이지만, 이번 협상에서 상품분야 양허안 작성을 위한 기본 틀에 합의했고, 서비스와 투자분야의 유보안을 교환하는 등 두 가지 성과를 기록했다.

상품 분야의 양허안 작성을 위한 기본 틀에 합의해, 한미 양국은 관세 철폐의 이행기간을 즉시 철폐와 3년, 5년, 10년 그리고 기타로 다섯 단계로 나누기로 했다.

특히 기타 항목은 관세 철폐 기간을 10년 이상으로 아주 길게 잡거나 협상결과에 따라 아예 관세화에서 제외할 수도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상품분야의 양허안을 오는 8월 상반기 안에 교환할 예정이다.

또 상품과 섬유, 농산물 세 가지 양허안도 일괄 교환된다. 특별한 문제만 없다면 오는 9월 3차 협상 때 양허안을 놓고, 추가로 요구할 상황을 제시하면 된다.

우리 정부는 쌀은 개방 대상에서 제외하되 나머지 농산물은 상품과 같이 '5단계 개방'을 원칙으로 최장 16년까지 관세 감축을 유예하는 방안을 미국에 제안했다. 이어 전기와 가스, 수도, 방송, 통신 등 공공성이 강한 서비스와 투자분야를 개방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유보안 작성을 유도했다.

그러나 농산물과 자동차 등 분야에서 진척이 없어 향후 협상 전망을 긍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리 정부가 개방 대상에서 쌀은 제외하겠다는 제안에 맞서 미국 측은 쌀을 비롯한 농산물도 상품처럼 5단계로 나눠 개방하자고 응하고 있어 협상이 지지부진한 형상을 보이고 있다. 결국 지금처럼 농산물 양허안의 핵심 쟁점에서 이견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향후 협상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2차 협상의 파행적 결말로 FTA 협상 진행을 우려하는 분위기에 대해 우리 협상단 관계자는 "중요한 협상을 하다보면 밀고 당기는 일이 있기 마련이고, 이번 분과회의 취소도 그런 측면에서 보는 게 맞다"며 "FTA 협상 자체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협상 자체가 결렬되거나 한 것이 아니라는 것.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 협상과 관련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소신과 양심을 갖고 시위에 임하는 것처럼 자신도 소신과 양심을 가지고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제4기 국민경제자문회의 1차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한미 FTA 추진은 대통령으로서 다음 세대를 위해 고민하고 내린 결단"이라며 "한미 FTA의 손익계산서를 보면 이익도 많은데 이는 외면하고, 손실 부분만 잘라서 이야기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고 말했다.

이어 "한미 FTA 협상이 계속 진행돼 구체안이 나오면 정부도 확실한 대안을 갖고 국민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나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양국은 오는 9월 4일부터 미국에서 열릴 한미 FTA 3차 협상으로 결말을 미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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