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관 사칭 사기범 날뛴다

환급사기 1억원 가로챈 중국인 4명 구속 국세청 "공과금 환급 전화는 100% 사기"

황지혜

gryffind44@hotmail.com | 2006-11-20 00:00:00

최근 국체청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 금융감독원, 시중은행 직원을 사칭하며 세금·보험료 환급 사기행각을 전국적으로 벌여온 중국인 일당의 꼬리가 잡혔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15일 금융회사 직원을 사칭, 피해자들을 은행 현금입출금기(CD기)로 유인해 통장에 있던 예금을 계좌이체 받아 가로챈 혐의로 H씨 등 중국인 4명을 구속했다. 8월부터 최근까지 9명에게서만 총 1억500만원 상당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남녀 2인1조로 짝을 이뤄 여자가 먼저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거나 혹은 음성 메세지 안내를 통해 "과오 납금한 세금이나 건강보험료, 국민연금 등을 계좌 이체해 주겠다"고 말하거나 혹은 "00은행 카드대금이 7백만원 연체됐으니 납부하라"고 유인한 후 피해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핸드폰번호 등을 물어봤다.

잠시 후 과장으로 위장한 남자가 전화를 걸어 지불담당 팀장인데 확인이 필요하다면서 개인정보를 빼낸 후 "CD기가 있는 쪽으로 가셔서 전화를 주면 인증번호를 불러 바로 송금을 시켜주겠다"고 유인했다.

피해자가 카드나 보험 가입이 되지 않았다고 응하지 않는 경우에는 "제3자의 명의도용으로 피해가 발생했을 우려가 있다"고 겁을 준 후 구제를 위해 전화를 건 금융감독원 직원으로 사칭해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이들은 금융실명법, 자금세탁방지법을 거론하며, 응하지 않을 시에 벌금이 나온다고 협박을 했다. 특히 가정주부나 노인이 전화를 받으면 "연체대금을 내지 않으면 법적조치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강도 높은 협박을 해 CD기를 통한 계좌이체를 강요했다.

가령 500만원을 빼가려면 피해자 의심을 피하기 위해 '0500…'식으로 500만원 앞에 숫자 '0'을 붙여 피해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범인들의 계좌번호, 금액 등을 누르게 하여 피해자의 계좌에서 범인들의 계좌로 이체토록 하여 즉시 인출해 가는 수법을 사용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까지 금융감독원 및 은행직원 사칭에 따른 금전적 피해가 발생한 사실은 확인된 바 없지만 주민등록번호, 휴대폰 번호 등의 개인정보가 유출돼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렇게 수집된 피해자들의 개인정보가 대포통장이나 대포폰을 개설할 때 사용돼, 제2의 범죄 도구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제주에서 시중은행의 콜센터 직원임을 사칭해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신종 사기 형태가 등장하기도 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고객 스스로 자신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은행이 구제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의심스러운 전화를 받게 되면 통화자의 성명, 직위, 연락처 등을 꼼꼼히 확인하고 개인정보가 누출됐을 시에 바로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갈수록 지능화된 범인들이 추적이 힘든 대포통장이나 인터넷전화를 범죄에 사용해 경찰청도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주범들이 중국에서 추적이 힘든 국제전화나 인터넷 전화를 이용하해 국내 일반 국민들에게 무작위로 음성메세지를 보내거나 직접 전화하고, 국내 공범들은 노숙자나 개인정보가 유출된 몇몇 주민등록증·위조한 외국인등록증 등을 이용해 속칭 대포통장, 대포폰을 개설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생활정보지나 인터넷 등을 통해 유포된 범행대상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범행 후 통장에서 현금을 인출해 중국으로 송금하는 역할 등을 분담하고 있어 범인 체포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으로 금융기관의 외국인 계좌 개설의 허술한 관리도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경찰 조사 결과 H씨 일당은 홍콩에서 들여온 위조여권을 사용해 시중 7개 은행에 가ㆍ차명 계좌 291개를 개설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원래 홍콩 등지에서 범행을 저지를 계획이었지만 여권만 제시하면 별도의 확인 절차 없이 손쉽게 계좌를 개설해주는 한국 금융 시스템의 허점을 노려 범행 대상 국가를 바꾼 것으로 조사됐다"며 "시중 은행들의 허술한 관리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내국인의 주민등록증이나 면허증은 즉석에서 실명 확인이 가능한 데 비해 외국인의 여권은 그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며 "대사관 등에 확인하는 절차도 번거롭기 때문에 여권의 만기 여부 정도만 확인하고 있으며 금융 당국의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여기에 보험료 환급 사기에 대한 시민들의 경각심이 부족한 점도 한몫했다. 지난해 말,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지금도 수사를 진행 중이며, 각 기관과 은행에서는 현금인출기에 '환급 사기' 스티커나 안내문을 붙여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음에도 피해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국회 국민건강보험공단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보험료 환급 사기는 57건으로, 피해금액은 건강보험이 44건 1억,6016만원, 국민연금은 13건에 3,1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세청 징세과 담당자는 "매일 많게는 100건이 넘는 신고 전화가 걸려오고 있으며, 다른 기관도 피해 접수가 계속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이나 은행을 통해 계속 홍보를 해도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잊어버리다 보니 똑같은 수법에도 피해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국세청은 어떠한 경우에도 은행 CD기를 통해 환급하는 경우는 없으며, 만일 환급이 발생하면 납세자가 세무서에 미리 신고한 계좌로 입금하고 신고계좌가 없으면 우체국을 통하여 환급하고 있다"고 거듭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공과금 환급 위해 은행카드를 가지고 은행으로 나오라는 전화는 100% 사기"라고 강조했다.

한편 경찰은 이들이 하루에 4,000만∼1억4.000만원씩 챙겼다고 진술한 점으로 미뤄 피해 규모가 더 큰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이 홍콩 폭력조직 삼합회(三合會) 계열 '신이안파'의 조직원이고, 일본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파'가 연계돼 있다고 진술함에 따라 국내외에 공범들이 더 있는 것으로 보고 인터폴에 수사공조를 요청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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