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500년 조선의 문화를 품다

동궐을 찾아가는 역사기행

송현섭

21cshs@sateconomy.co.kr | 2006-11-20 00:00:00

우선 집은 단순히 먹고 자는 공간이 아니라 그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하는 상징물이다. 물론 인류는 기상의 변화와 맹수의 습격을 피해 편안하게 먹고 잠을 자기 위한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당초 안락한 식사와 거주가 필요했던 인간은 이런 근본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공적으로 집이라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집은 문명의 진보와 인간생활의 발전을 기반으로 부엌과 식당, 거실, 침실 등으로 구분되고 프라이버시 개념까지 형성됐다. 이후 일상적인 살림을 위한 공간, 경제활동을 위한 작업공간, 종교활동을 위한 신성한 공간 등이 지어졌다. 특히 대중들의 권위를 획득한 지도자가 권위적이고 정치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하게 됐다.

지금은 황폐하게만 버려진 빈 공간인 서울의 궁궐들은 물론, 왕이 살던 집으로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물론 한국사학계의 권위자인 한영우 교수가 창덕궁과 창경궁의 이모저모를 안내해주는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는 흔히 볼 수 있는 기행문과는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책에 끼워져 있는 오밀조밀한 동궐도를 본다면 독자들도 금세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이 현재와는 많이 달랐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동궐은 창덕궁과 창경궁, 비원 등을 아우르는 폭 넓은 개념이다.

특히 조선의 정궁이자 북궐로 불렸던 경복궁과 달리 동궐은 권위적이기 보다 숲 속에 숨겨진 아기자기한 모습의 매력이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실제로 인왕산이나 북악산에 오르면 한눈에 전경이 보이는 경복궁과 달리 동궐은 여기저기 작은 숲에 숨겨져 있는 집들이 정숙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실 왕들의 집이 아니라 조선의 집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동궐은 조선의 문화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화려하고 권위적이기 보다 소박하고 오밀조밀한 아름다움은 이미 많은 건물들이 훼손됐음에도 불구,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의 대표궁궐은 경복궁이라지만 실제로 왕들은 창덕궁과 창경궁에 가장 많이 머물렀다.

경복궁이 정궁이기는 했지만 태종에 의한 왕자의 난이 일어난 비극의 무대라서 후대 왕들이 기피했다는 것이다. 또한 깊은 숲에 가려진 백조와 같은 동궐은 아름다운 후원 덕분에 더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동궐 역시 권력의 부침으로 일어난 많은 사건들을 피해갈 수 없었다. 창덕궁 돈화문을 지나 인정전에서는 연산군을 비롯해 효종·현종·숙종·영조·순조·철종과 고종에 이르는 여덟 왕의 즉위식이 거행된 바 있다.

같은 곳에서 즉위했지만 왕들의 뒷모습은 제각각이었다. 반정으로 쫓겨난 경우가 있는 반면 가장 오래 재위한 왕도 있었고 망국의 한을 간직한 채 왕정의 몰락을 지켜본 비운의 왕도 이 자리에 있었다. 서울은 외국의 다른 도시에 비해 궁궐이 많은 편이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을 비롯해 창덕궁, 창경궁에 덕수궁이라 불리는 경운궁과 경희궁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잊혀진 역사의 공간인 동궐에서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영우 지음, 김대벽 촬영, 효형출판,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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