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살고 있는 왕궁’, 족자카르타 크라톤 왕궁 ‧ 타만사리

박진호

ck17@sateconomy.co.kr | 2014-10-31 10:54:43

[토요경제=박진호 기자, 박용우 객원기자] 10월 내내 본지에서는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Yogjakarta)를 안내하고 있다. 힌두교 유적지인 ‘프람바난’을 시작으로 ‘머라피 화산의 지프 투어’, 그리고 세계 최대규모의 불교 유적인 ‘보로부두르’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절반만 왔을 뿐이다. 인도네시아를 떠올릴 때 ‘발리에서 생긴 일’만 머릿속에 가득 채우고 있는 관광객들에게 자바 문화의 유산에 대한 설명거리는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이번에 둘러볼 곳은 크라톤 왕궁(Kraton Yogyajarta) 과 ‘물의 궁전’이라 불리는 타만사리( Tamansari), 그리고 옛 왕궁터에 들어선 주변의 마을들이다.
이번에는 이슬람이다
크라톤 왕궁은 말리오보로 거리(Malioboro street) 남단에 있는 넓은 왕궁 광장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왕궁은 높이 5m, 두께 3m의 흰 외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멩쿠보노 1세(Hamengku Buwono I)에 의해 지난 1755년 건립된 것으로 족자카르타를 통치했던 역대 술탄의 궁전이었다.
술탄은 이슬람교의 종교적 최고 권위자인 칼리프에 의해 수여된 정치적 지도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아랍어로는 ‘권력’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또한 자바 문화가 지역적 특성과 함께 종교적 다양성을 함축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프람바난’과 ‘보로부두르’는 각각 힌두교와 불교를 상징하는 주요 유산으로 그 규모와 가치에서 이 지역에 해당 종교의 문화가 얼마나 융성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크라톤 왕궁’으로 인해 이슬람 문화 역시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시아에 큰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3개 종교의 유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현재 인도네시아는 전 국민의 87%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으며, 힌두교와 불교는 개신교보다도 그 수가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람바난’과 ‘보로부두르’가 과거의 유적이라면, ‘크라톤 왕궁’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인도네시아 정신문화의 연장선과도 연결된다. 실제로 이곳에는 족자카르타 특별지구의 기사인 하멩쿠보노 10세가 거주하고 있다.
7개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궁전은 각각의 특색이 있는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일부가 일반에게 공개되어 역대 술탄들의 왕궁 생활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힌두와 이슬람을 함께 설파한 마타람 왕국
왕궁을 세운 하멩쿠보노 1세는 자바 문화를 꽃피웠던 마타람 왕조의 일원이다. 마타람 왕조는 앞서 설명했던 ‘프람바난’을 건축했던 왕조다. 9세기 무렵 힌두교를 바탕으로 자바 지역에 기틀을 잡았던 마타람 왕국은 중국의 신당서(新唐書)에도 소개되어 있다.
당시 중국인들에게 ‘가릉(訶陵 Ho Ling 허링)’이라고 불린 마타람 왕국에 대해 신당서는 마타람 왕국의 왕은 목성(木城)에 살면서 주변 30여 개국을 지배했고, 32명의 대신을 거느렸다고 전하고 있다.
13세기 초까지 번영을 이어가던 마타람 왕조는 1222년, 장갈라 부근 싱고사리(Singosari) 출신의 앙록(Angrok)에 의해 멸망했다. 그러나 17세 무렵, 동남아시아 식민화에 나서 인도네시아 지역을 점령했단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를 견제하면서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의 마타람 왕조는 힌두교가 아닌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마타람 왕조는 힌두교의 전파자이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이슬람 문화의 수호자이기도 한 것이다.
타만사리 역시 하멩쿠보노 1세가 세운 것으로 크라톤 왕궁의 남서쪽에 인접해 있는 별궁이다. 원래 타만사리는 ‘꽃의 정원’이라는 뜻이지만 여러 개의 목욕장이 있어 ‘물의 왕궁’으로 불리고 있다. 왕비나 후궁들이 사용하던 넓은 목욕장과 이를 둘러싼 복도, 왕실 전용 기도소, 물을 통하게 했다는 돌 침실, 흰 탑 등이 남아있다.
족자카르타 전체를 한 공간에 담다
크라톤 왕궁은 실제 거주자가 있는 만큼 하루 종일 개방되지는 않는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5시간만 개방되며 금요일은 12시까지 4시간만 공개된다. 국경일을 비롯해 자바지역 휴일에도 문을 열지 않는다. 입장객들은 1인당 1만 2500루피아를 관람료로 지불하는 데, 이는 우리 돈으로 약 1100원 수준이다. 또한, 궁전을 사진으로 찍기 위해서는 추가 요금으로 1000루피아를 더 내야한다. 약 90원이다.
왕궁 내에서는 매일 각기 다른 공연이 펼쳐진다. 족자카르타 지역에서도 유명한 그림자인형극 와양꿀릿(Wayang Kulit) 공연을 비롯해, 와양골렉(Wayang Golek), 모조빠잇(Mojopait) 민요 공연, 전통 댄스 등이 요일별로 다르게 편성되어 있다. 왕궁 안에는 허리에 ‘크리스(Kris)’를 차고 이곳을 지키는 병사들인 ‘무사’들이 같은 복장을 하고 왕궁 보호와 관리를 하고 있다. 일종의 자원봉사처럼 무보수로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무사’들은 내부 안내도 해주고 있다.
외부에 공개가 되고 있는 건물에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곳이 많다. 여기에는 족자카르타와 술탄에 관한 전시물이 많아 ‘족자카르타의 축소판’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하멩쿠보노 10세가 9세를 위해 만든 기념관도 있는데, 하멩쿠보노 9세의 집무실을 그대로 보존해놓고 있다. 왕궁은 넓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지만 일반이 생각하는 왕의 위풍에 맞는 고급스러움은 배제되어 있다.
크라톤 왕궁의 별궁은 타만사리 역시 별도의 입장로 8000루피아를 지불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한화로 700원 정도다. 입구를 통해 내부로 이동하면 거대한 목욕탕이 나타난다. 타만사리는 1825년∼30년 사이 인도네시아의 영웅인 디포네고로 왕자가 네덜란드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디포네고로의 자비전쟁’과 지진 등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렸는데, 이후 당시에 왕비와 후궁들이 사용하던 목욕탕이었던 장소가 복원되며 ‘물의 궁전’ 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과거의 술탄들은 건물에서 이곳 목욕탕을 내려다보며 목욕을 하고 있던 왕비와 후궁들 중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낼 여성을 간택했다고 전해진다.
왕비와 후궁들이 사용하던 목욕 시설인 관계로 탕을 둘러싼 곳은 창문 등의 빈틈을 허용하지 않고 높은 벽으로 둘러져 있다.
타만사리 주변으로 형성되어 있는 마을은 과거 크라톤 왕궁의 일부였던 곳이다. 폐허가 되었던 왕궁의 일부 건물을 현지인들이 집으로 사용하고, 또 건물을 새롭게 지으면서 궁전 유적인지 마을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형태가 되었다. 사실은 대부분 불법 건축이다. 마을에는 수무르 구물링(Sumur Gumuling) 이라 불리는 지하 사원(The underground mosque)이 있고, 외적의 침입과 홍수 등을 대비한 지하 비밀 통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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