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연극] 혜경궁 홍씨

역사의 속살을 드러낸 한 여인의 기록 ‘혜경궁홍씨’

이완재

puryeon@naver.com | 2013-11-25 10:46:02

연극계 거장 이윤택이 전하는 한 여인의 한많은 궤적
“역사란 얼마나 알량한 삶의 껍데기인가.
역사의 결과물이란 카테고리 속에는 인간의 속살이 느껴지지 않는다.”

◇“글쎄, 이건 내 인생이라서 재미가 있을라나 모르겄네.”
왕실의 주인으로 살다, 한낱 여인으로 죽다.

우리나라 연극계의 거장 이윤택이 거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하게 생을 살다간 혜경궁 홍씨의 삶을 무대에 올린다. 이번 작품은 혜경궁 홍씨의 기억을 따라 현실과 기억 저편의 경계를 넘나들며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만나 엉킨 실타래를 풀 듯 그녀의 삶을 되짚어 나간다. 아버지에게 죽임 당한 사도세자의 아내로 끔찍한 세월을 감내하며 궁에서 천수를 다한 혜경궁 홍씨. 그토록 모진 삶을 견뎌낸 혜경궁 홍씨의 삶의 근원,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연출가 이윤택은 그것이 그녀의 비밀스러운 글쓰기. 바로 <한중록> 집필이었다고 본다. 작품은 철저히 혜경궁 홍씨의 입장에서 <한중록>을 따라 재구성한 대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혜경궁 홍씨는 10세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궁으로 들어온 뒤, 81세까지 살다 생을 마감했다. 그런 그녀를 비운의 여성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한편, 남편의 죽음을 방조한 냉혈한 여성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과연 혜경궁 홍씨가 이 모든 사건의 주도자인가 라는 질문이다. 그녀의 인생에서 가문과 세자빈이라는 운명은 양날의 칼처럼 일생을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인생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있었던 순간이 한 순간이라도 있었을까. 역사의 희생양이었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낸 혜경궁 홍씨는 지어미이자 어머니였고 딸이었을, 한 여인 일뿐이다.


◇“바람아 불어라 폭풍우야 쏟아져라. 천둥 번개야 이 미친 백발을 태워라!”
이것은 역사의 비극이 아닌, 가족의 비극이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사건은 조선왕조의 역사에서 가장 끔찍하고 비극적인 사건이다. 작품은 이를 둘러싼 3대에 걸친 왕족의 역사를 한 가족의 일대기로 풀어낸다. 연출의 작의에 따르면,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주 디테일한 심리적 동기이다. 따라서 작품은 역사극이 아닌, 인간 연극, 배우 중심의 연극이다. 왕과 비, 왕세자이기 전에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인 것이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역사라는 객관적 굴레를 벗어던져 버린, 벌거벗은 인간의 모습으로 생생하게 구체화 된다. 혜경궁 홍씨를 둘러싼 인물과 사건 안에는 모든 비극과 인간군상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 역사의 에너지인 권력이, 욕망과 고립, 콤플렉스, 소통의 부재 등이 속살을 드러내며 인간에 대한 분석과 성찰로 이어진다. 작품은 사건과 인물을 원근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좁은 구멍을 통해 방안을 들여다보듯 아주 디테일하고 세밀하게 접근하여 풀어나간다. 따라서 이번 작품에서의 영조와 정조, 사도세자, 그리고 혜경궁 홍씨는 그 동안 우리가 접해 왔던 역사적 인물과는 또 다른 모습인 살아있는 인물인 것이다.


◇대한민국 연극계의 거장이 선보이는 종합 예술의 무대

전방위적 연출가인 이윤택은 그간 한국적인 정서와 공연 양식을 무대화 시키는데 주력해 왔다. 이번 작품 역시 전통 연희와 가무가 녹아있는 총체극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시작을 여는 혜경궁 홍씨의 진찬례에서는 궁중의례인 진찬연을 축약시켜 재현하며 종합예술로서의 연극의 진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자신을 스스럼없이 대중적인 연출가라고 말하는 이윤택은 관객들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번 작품은 역사 속의 인물들을 올리고 한국적인 양식을 차용했지만 어떤 현대극 보다 모던하다. 전통을 그대로 재현해 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서 배우가 가장 돋보일 수 있도록 절제되고 상징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나를 쳐라! 아, 나는 비바람 속에 다 털고 떠나련다.”
칼날처럼 빛나는 배우 김소희, <혜경궁 홍씨>가 되다.

혜경궁 홍씨 역할은 관객과 평단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김소희가 맡았다. 연출가 이윤택이 자신의 연극적 페르소나라고 부를 만큼, 김소희는 심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관념적인 세계를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낼 줄 아는 영리한 배우이다.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였지만, 여성으로서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혜경궁 홍씨의 복잡한 내면을 입체적 연기로 섬세하게 표현한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영조 역할은 연극계의 원로이자, 현재에도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전성환 배우가 맡았다. 비극의 주인공 사도세자는 최우성, 야먕이 넘치는 정조는 정태준 배우가 열연한다. 베테랑 배우들과 신선한 신인배우들의 조합이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그 동안 <문제적 인간, 연산>, <조선선비 조남명>, <궁리>로 이어지는 인물 사극을 선보여 왔던 이윤택은 이번 작품 <혜경궁 홍씨>를 통해 화석처럼 남아있는 역사 속의 인물들을 무대 위에 생생하게 환생시킨다.


“역사란 얼마나 알량한 삶의 껍데기인가. 역사란 결국 삶의 누추한 결과물을 대충 털어내고 솎아 내어서 전리품의 기록처럼 남긴 결과물에 불과하다. 역사의 결과물이란 카테고리 속에는 인간의 속살이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의 속살은 그 어떤 결과가 아닌, 역사적 과정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입장이며 느낌이다. 결국 나는 역사적 결과물에 저항하여, 자기 삶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호소하고 주장하는 한 조선 여성의 개인적 글쓰기, 그 처절한 주체적 삶 의식을 희곡으로 재구성하기로 했다.” -이윤택 연출의 작의 中 -

<공연개요>
공연명 : 2013 국립극단 가을마당 창작희곡 레퍼토리 ‘혜경궁 홍씨’
공연기간 : 2013년 12월14일(토)~12월29일(일)
시간 : 화수목금 19시30분 / 토, 일, 공휴일 15시 / 월 쉼
장소 :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작가ㆍ연출 : 이윤택
출연 : 전성환, 김소희, 차희, 한갑수, 박지아, 최우성, 허대욱, 민정기 등
제작 : 국립극단
관람료 : 일반 3만원 / 청소년(24세 이하) 2만원 / 소년소녀(19세 이하) 1만원
관람등급 : 중학생이상 관람가 (14세 이상)
공연문의ㆍ예매 : 국립극단 1688-5966 / www.ntck.or.kr
인터파크 www.interpark.com /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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