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고전 읽기]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참된 벗이다
36. 제 환공-관포지교
정해용
peacepress@hanmail.net | 2013-11-18 13:46:07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史記>管晏列傳)
관중(管仲)이 포숙(鮑叔)에 대한 고마움을 회고하면서 남긴 말
관중과 포숙의 우정을 가리켜 관포지교(管鮑之交)라 한다. 관중의 재능을 포숙이 알아주었으므로 두 사람이 뜻을 합하여 천하를 평안케 했다. 과연 어디까지 알아주는 사이였을까.
그들은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 포숙이 넉넉한 사대부 집안에서 자라난 반면 관중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선비였다. 포숙의 성품이 원만하여 주변 사람들과 두루 잘 지내는 반면 관중은 그리 사교적이지도 못했던 듯하다. 다른 사람들은 관중을 어떻게 보았는지 모르지만, 포숙은 그런 관중의 실패가 너무 뛰어난 재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포숙은 관중이 언젠가 큰 일을 할 것이라고 여겼던지, 청년시절 이모저모로 관중을 도와주었다. 20세기 초 유럽의 레닌이 마르크스를 후견했듯, 포숙은 관중의 친구이자 후견자였던 셈이다. 후일 성공을 거뒀을 때 관중이 스스로 한 말을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내가 예전에 곤궁할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이익을 나눌 때 내가 더 많이 차지하곤 했다. 그래도 포숙은 나를 탐욕스럽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가 포숙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벌이다가 실패하여 그를 곤란하게 만든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나무라지 않았다. 시운이 좋을 때와 안 좋을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세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모두 군주에게 쫓겨났는데, 그래도 포숙은 나를 못났다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세 번 전투에 나가 세 번 모두 도망쳤는데, 그래도 포숙은 내게 겁쟁이라고 흉보지 않았다. 나에게 노모가 계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패했을 때 소홀은 죽고 나는 붙잡혀 굴욕을 당했는데도 포숙은 나를 수치를 모르는 자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사소한 일에는 수치를 느끼지 않으나 천하에 공명을 떨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주신 이는 부모님이나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관안열전)
과연 포숙이 아니었다면 중국 역사상 최고의 재상 관중은 없었을 것이다. 관중이 없었다면 제 환공이 중원의 맹주가 되는 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포숙이 관중을 믿고 천거했더라도 환공이 등용하지 않았다면 역시 관중에게 기회는 없지 않았겠는가. 그 과정에도 한번 신뢰한 신하를 철저히 믿고 맡긴 군주의 통 큰 그릇의 본보기가 있다. 물론 사람의 됨됨이를 한 눈에 알아보는 지인지감(知人之鑑)이 전제돼야 할 일이긴 하다.
포숙의 장담을 믿고 관중을 용서하여 대부로 삼았으나 관중은 하는 일이 없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생기는 법. 환공이 의아해서 물으니 관중이 대답했다. “낮은 지위로는 높은 지위를 다스릴 수가 없으니 자중하고 있습니다.” 환공은 옳다 여겨 상경(上卿) 벼슬을 내렸다. 그래도 관중은 하는 일이 없었다. 환공이 또 물으니 관중은 “가난한 자가 부유한 자를 다스릴 수 없어 자중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환공은 많은 재물을 내려주었다. 하지만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환공이 또 묻자 관중이 대답했다. “높은 벼슬과 많은 재물을 가진 자라도 공자들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 자중하고 있습니다.” 공자란 환공의 일족, 즉 왕족을 말한다. 환공은 관중에게 중보(仲父)라는 호칭을 제수했다. 그제야 관중은 품고 있던 경륜을 설파하면서 과감하게 국정을 혁파해 나갔다. 환공의 성공과 관중이 성공, 제나라의 부국강병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야기 PLUS
우정을 나타내는 말 가운데 죽마고우(竹馬故友)라는 말이 있다. 흔히 사이좋은 친구를 나타낸다고 알고 있으나 본래 그 반대의 뜻으로 시작되었다. 4세기 중국 진(晋)나라 간문제 때 환온이란 장군이 있었다. 환온의 권력이 강대하며 오만해지자 황제는 그를 견제하기 위해 은호라는 사람을 발탁했다. 은호는 어릴 적 환온과 함께 자란 친구였으나 환온은 탐탁지 않게 여겼다. 마침 출병할 일이 생겨 간문제가 은호를 중원장군으로 삼아 출병케 했는데, 운 나쁘게도 은호는 말에서 떨어져 대패하고 돌아왔다. 환온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규탄하는 상소를 올리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은호는 어릴 때 나와 죽마를 끌며 같이 놀던 친구(竹馬故友)인데, 늘 내가 타던 죽마를 주워가던 사람이다. 이제라도 그가 나를 앞설 수는 없다.”
권력이 커지자 황제마저 무시하는 인품과 어릴 적부터의 친구를 시샘하는 인품은 상통하는 데가 있을 듯하다. 전국시대 위나라의 방연도 그러했다. 동문수학한 손빈의 실력이 뛰어남을 잘 알고 있었으나, 자기 군주를 위하여 그를 천거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놓아두고 최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계략으로 손빈을 불러들여 불구로 만들었다.
포숙은 친구 관중과 목숨을 건 경쟁을 벌였음에도 주군을 설득하여 중용되게 했을 뿐 아니라 관중이 자기보다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시기하지도 않았다. 당대 사람들은 관중의 경륜에 찬탄해마지 않았으나 그보다 더 존경한 대상은 포숙이었다. 포숙의 후손들은 제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제나라 사람들로부터 명문가의 대우를 받았다.
“낮은 지위로 높은 사람들을 다스릴 수가 없으니 자중하고 있습니다.” 환공은 옳다 여겨 상경의 벼슬을 내렸다. “가난한 자로서 부유한 자를 다스릴 수 없으니 자중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환공은 막대한 재물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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