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옥죄는 에버랜드 CB 풀자

대승적 견지에서 과거 관행 타파해야

한운식

WOOLSEY1@paran.com | 2007-06-04 00:00:00

- 이사회 무효, 공모 여부 쟁점될 듯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이 치열한 법리 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삼성 이재용 상무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위법성 판단 여부가 1, 2차 라운드에서는 삼성의 유죄로 잠정 판단되었지만, 이제 대법원에서 치열한 논쟁을 통해 여기서 '유죄냐, 무죄냐'가 최종 결정된다는 것이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의 유죄 판결에 대해 검찰과 삼성이 모두 상고키로 해 더욱 주목되고 있다.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에버랜드 이사회 결의의 효력 여부 △CB 발행 가격의 적정성 △ 그룹 차원의 공모 여부 등에 대해 치열한 법리 공방이 이뤄진다. 검찰과 변호인간의 물러 설 수 없는 한 판 대결이 불가피해 졌다는 얘기.

일각에서는 쌍방이 지루한 법리 공방을 지양하고 사건의 얽힌 매듭을 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 '에버랜드 CB' 항소심서도 유죄... 전환사채 저가 발행, 배임 인정

지난달 29일 서울고등법원은 에버랜드의 허태학, 박노빈 전 현직 사장에 대해 "전환사채(CB)를 헐값에 발행, 지배권을 이건희 회장 자녀들에게 넘기고 회사에 89억원의 손해를 입혔다"며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30억원을 선고했다.

이번 선고의 요지는 "CB 발행을 결의한 1996년 10월 30일 에버랜드 이사회의 결의는 무효'라는 재판부의 판결이다.

1심 재판부도 ' 당시 이사회는 의결 정족수가 미달된 상태에서 결의가 이뤄졌다'며 '절차상 위법성'이 있다고 밝혔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더 적극적으로 '결의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사 17명 중 8명이 참석해 정관이 정한 의사정속수가 미달된 상태에서 이뤄진 결의는 '이사회의 결의는 이사 과반수로 해야 한다'는 상법 규정을 위반해 무효라는 것.

하지만 상법상 주식이전 무료소송은 주주나 이사, 감사가 신주 발행 6개월안에 제기해야 하나 이미 시효가 지났고, 계열사인 주주들이 민사소송을 내 가능성도 희박하다.

또 이번 판결에서 또 주목되는 부분은 법원이 '삼성그룹 차원의 지배권 이전 목적의 공모'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와 관련, 삼성은 "항소심에서 '그룹 차원의 지배권 이전 목적의 공모'라는 공모사실의 기본전제를 인정하지 않고 범죄사실에서 배재함으로써 검찰의 주장을 사실상 배척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이 유무죄 여부를 다시 판단해야 한다는 상황이 발생됨에 따라 이건희 회장의 소환조사 여부도 유동적으로 변하게 됐다. 검찰은 지난 번에는 " 이건희 회장 조사가 턱 밑까지 와 있다"며 소환의지를 강조했지만 이번에는 "판결문 분석을 끝낸 후에 수사결과를 결정할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이회장 소환조사를 대법원 확정 판결이후로 예상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부하직원의 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 1위 재벌 총수를 불러 조사하기에는 검찰의 부담감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 재벌 지배구조 선진화 계기될 듯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고 CB 발행 당시의 이사회 결의를 무효로 돌릴 경우, 이재용 상무가 보유한 지분의 정당성에 대해 법적 논란은 불가피해 것으로 관측된다.

향후 삼성의 지배구조 변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법원의 판결 이후, 삼성물산을 지주회사로 만들려는 삼성 내부의 움직임이 포착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대법원 확정 판결을 떠나, 1심과 2심에서 연거푸 유죄 판결을 받음에 따라 삼성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도덕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됐다.

더구나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반(反)기업 정서가 형성되고 상황에서 이번 판결이 나와 이런 기류를 더욱 확산시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문제는 과거 재벌의 관행이 현재의 잣대로 재단되면서 이런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외환위기 전 한국 경제는 불투명한 면이 많았으며 잘못된 관행이 합법적인 것으로 통용되기도 했다. 11년 전 에버랜드의 CB 발행도 그 같은 연장선상에 이뤄졌다는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삼성은 "당시에는 기업들이 많이 그렇게 했다"며 "당시에 합법적이라고 하나까 그렇게 했지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했겠냐"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재계는 결국 에버랜드 사건이 우리 재벌의 경영권 승계 방향이 좀 더 선진화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재벌의 지배 구조의 취약성에 비판 여론과 함께 지주회사 설립 등 개선안이 나왔다는 그 좋은 예다.

다만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메우는 과정에서 보다 대승적 견지로 사건의 매듭을 푸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 재계의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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