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브라질 … 월드컵은 끝났다

독일에 1-7 굴욕 대패 … ‘미네이랑의 비극’

박진호

ck17@sateconomy.co.kr | 2014-07-09 14:33:55

[토요경제=박진호 기자]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월드컵을 개최하는 데 반대 시위가 잇따랐다. 경제 위기로 인해 월드컵을 개최할 상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브라질의 경제 위기는 2008년 금위기가 발생한 후 미국이 기준금리를 낮추면서 제로금리에 가까운 상태가 되자 미국 투자자들이 10%가 넘는 금리를 유지하던 브라질에 엄청난 달러를 이동시키면서 시작됐다.
이후 브라질 화폐인 헤알화 가치 상승과 인플레이션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진정시키려던 브라질 정부의 정책은 실패했다. 브라질은 월드컵을 통해 경제성장의 모멘텀을 찾고자 했지만 그리스가 올림픽을 기점으로 경제위기의 치명타를 맞았던 것과 같은 우려가 더 강하게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을 우승으로 마무리하며 12년만의 우승과 함께 국민 사기 진작이라는 밑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브라질의 계획은 8강전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브라질은 지난 5일 벌어진 콜롬비아와의 8강에서 티아고 실바와 다비드 루이스의 연속골로 콜롬비아를 2-1로 누르고 4강에 올랐다. 이번 대회에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콜롬비아를 상대로 완전하게 압도하지 못했던 브라질은 다소 홈 어드벤티지의 영향이 있지 않았냐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며 4강까지는 진출했다. 그러나 너무 뼈아픈 희생을 겪어야 했다.
후반 막판, 팀 공격의 중심이던 네이마르가 콜롬비아의 수비수 후안 카밀로 수니가의 거친 수비에 쓰러졌다. 의사 진단 결과 척추 골절로 최소 6개월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당연히 4강은 뛸 수 없는 상황. 수비의 핵심인 티아구 실바 역시 경고 누적으로 4강에 나설 수 없게 됐다.
4강 상대, ‘가장 강력한 도전자’ 독일
공수의 핵이 빠진 상황에서 브라질이 4강에서 마주한 상대는 유럽의 맹주 독일. 비록 역대 월드컵 우승은 브라질이 5회로 최다지만 4강 진출 횟수는 12회로 독일이 최다기록을 갖고 있다. 가장 기복 없는 성적을 자랑하고 있으며, 이번 대회에서도 남미와 유럽이 월드컵 역사 내내 이어왔던 개최국 우승 징크스를 깰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팀으로 꼽히고 있던 팀이다.
우리시간으로 지난 9일, 벨루 오리존치에 위치한 이스타지우 미네이랑에서 벌어진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전 첫 경기에서 브라질은 티아구 실바 대신 분데스리가 FC 바이에른에서 활약하고 있던 단테를 선발로 내세웠고, 네이마르의 자리에는 플루미넨세 FC의 프레드를 출장시켰다.
브라질은 국가가 연주될 때, 골키퍼 줄리우 세자르와 이날 주장완장을 찬 다비드 루이스가 네이마르의 유니폼을 함께 들고 동료애를 과시했으며, 전반 2분 만에 마르셀루가 날카로운 중거리슛을 시도하며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브라질의 기세는 거기까지였다.
지난 2010년 월드컵 이후 티아구 실바와 네이마르를 모두 빼고 경기에 임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브라질은 이른 시간 실점을 하기 시작한 후 어이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악몽의 5분, 경기는 이미 끝났다.
전반 11분, 토마스 뮐러가 코너킥 상황에서 오른발로 가볍게 첫 골을 만들었다. 브라질 수비수들이 뮐러를 아무도 잡아두지 못했다. 하지만 첫 실점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후였다. 브라질은 전반 23분부터 약 5분여의 시간 동안 독일에게 무려 4골을 허용했다. 악몽의 4분이었다.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독일의 패스를 끊으려던 페르난지뉴의 수비가 실패하자 토니 크로스의 패스가 페르난지뉴의 배후로 이어졌고, 이 패스의 연결에서 클로제의 골이 터져나왔다. 이후 브라질을 속절없이 무너졌다.
브라질의 우측 측면을 공략한 독일은 필립 람이 중앙으로 낮게 크로스를 깔아줬고, 이 볼이 옆으로 흐르자 토니 크로스가 정확한 왼발 슛으로 3번째 골을 만들었다. 클로제의 골이 나온지 1분 만이었다. 토니 크로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시 킥 오프를 한 브라질이 방심한 사이 크로스는 페르난지뉴의 공을 빼앗았고 사미 케디라와 공을 주고 받은 뒤 네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케디라는 3분 뒤, 메수트 외질과의 패스를 통해 페널티박스 정면에서 다섯 번째 골을 터뜨렸다. 경기 시작 30분도 되기 전에 5-0. 브라질의 월드컵은 이미 끝나 있었다.
후반 들어 전열을 가다듬은 브라질은 거센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5골을 앞서고 있음에도 독일의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는 허점을 보이지 않았다. 하미레스의 날카로운 크로스를 한 발 앞서 막아낸 노이어는 오스카의 슈팅도 선방해냈고, 일대일 찬스를 잡은 파울리뉴의 연속 슈팅도 모조리 막아냈다. 브라질이 여전히 골을 터뜨리지 못하자 독일의 공격이 다시 폭발했다. 안드레 쉬를레가 후반의 주인공이었다.
쉬를레는 후반 24분, 람이 페널티박스 안 오른쪽에서 낮게 깔아준 패스를 방향을 바꿔 넣으며 6-0을 만들었고, 10분 뒤에는 페널티박스 안 왼쪽에서 날카로운 왼발 슛으로 팀의 일곱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브라질은 경기 종료 직전 오스카가 한골을 만회하며 겨우 0패를 면했다.
1-7. 브라질 축구사에 잊지 못할 굴욕의 순간이었다.
브라질 축구의 비극. 마라카낭
브라질은 1950년 브라질 월드컵 결선 라운드 최종전에서 우루과이에게 1-2로 패했던 경기를 ‘마라카낭의 비극’으로 부르며 역대 최악의 경기로 꼽아왔다. 당시 개최국이었던 브라질은 조별리그에서 스위스와 2-2로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멕시코를 4-0, 유고슬라비아를 2-0으로 제압하며 A조 1위로 결선 라운드에 올랐다.
각조 1위팀끼리 풀 리그로 우승팀을 가렸던 당시 규정에서 브라질은 스웨덴과 스페인을 7-1과 6-1로 연파하며 사실상 우승을 확정지었다. 2전 전승에 13득점 2실점을 기록 중이던 브라질은 1승 1무, 5득점 4실점을 기록 중이던 우루과이를 상대로 비기기만 해도 우승을 결정지을 수 있었다.
1950년 7월 16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20만 명에 가까운 관중들이 운집한 가운데 사실상의 결승전이었던 브라질과 우루과이의 경기가 펼쳐졌다. 브라질은 후반 3분, 프리아사(Friaça)의 골로 먼저 앞서나갔다.
그러나 후반 20분 후안 알베르토 스키아피노(Juan Alberto "Pepe" Schiaffino Villano)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후반 34분 스키아피노의 크로스에 이어 알키데스 기지아(Alcides Ghiggia)의 헤딩골이 나오며 경기는 뒤집혔다. 결국 브라질은 1-2로 패했고, 우승도 우루과이에게 돌아갔다.
약 70명의 브라질 관중들이 경기장에서 실신을 했고,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람과 자살한 사람도 있었다. 일부 브라질 언론은 이날의 경기 결과를 보도하지 않았고, 유명 언론인은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브라질은 이날의 패배를 잊기 위해 대표팀 유니폼의 색깔을 바꾸는 등의 노력을 했으며, 이번 월드컵 결승전의 장소도 마라카낭으로 정하며 비극의 역사를 덮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마라카낭에도 이르지 못한 ‘미네이랑의 비극’
그러나 더 이상 마라카낭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월드컵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독일에게 1-7이라는 대패를 안긴 ‘미네이랑의 비극’이 브라질의 치욕을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기의 패배로 브라질의 A매치 42경기 무패행진도 막을 내렸다. 역대 월드컵에서 개최국이 6골차의 대패를 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7골을 허용한 유일한 나라였던 스위스 역시 1954년 월드컵에서 오스트리아에게 5-7로 패했다.
브라질 축구 역사에서도 이처럼 엄청난 패배는 없었다. 물론 1920년, 칠레에게 0-6으로 패했던 경기가 있었지만 이는 안방에서 벌어진 경기가 아니었다. 만약 경기 종료 직전 터진 오스카의 골이 아니었다면 브라질은 이 기록마저 새로 쓸 뻔 했다.
독일의 연속골이 터지던 전반, 이미 미네이랑 경기장을 찾은 브라질 관중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경기가 끝나자 브라질 선수들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34세의 베테랑으로 브라질의 골문을 지키고 있는 줄리우 세자르는 “차라리 내 어이없는 실수로 0-1로 패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며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브라질에서는 분노한 군중들의 폭력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상파울루 지역에서는 경기 정료 후 버스를 대상으로 한 방화와 공격이 잇따라 발생했고 차량이 전소되는 사고도 벌어졌으며, 대형 유통매장에 대한 약탈 사건도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도와 폭력사태는 물론 소요사태가 벌어지는 등 울분을 참지 못하는 브라질 군중들의 단체행동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월드컵 개최에 대해 반대를 표명했던 세력들도 있었던 만큼 이러한 움직임은 그 어느때보다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8강전에서 브라질의 에이스인 네이마르를 부상당하게 만들었던 콜롬비아의 수비수 수니가는 브라질의 마피아들에게 살해 위협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콜롬비아 정부가 수니가의 집에 경찰병력을 파견한 데 이어 수니가가 SSC 나폴리에서 활약하고 있는 만큼 이탈리아에 직접 신변 보호 요청까지 하고 나섰다.
독일, 브라질의 치욕 속에 역사를 만들다
반면, 이번 대회 가장 완벽한 팀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독일은 개최국 브라질을 완벽하게 무너뜨리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우선 클로제는 이날 팀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자신의 월드컵 통산 16호골을 성공시켰다. 이는 개인 통산 월드컵 최다골 신기록이다.
이미 독일 국가대표로 센츄리클럽에 가입한 클로제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 처음 출전하여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헤딩으로만 5골을 득점하며 득점 2위로 실버슈를 수상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5골을 득점하며 골든슈를 차지한 클로제는 2010년 남아공에서도 4골을 추가했고, 이번 월드컵에서도 가나와의 G조 조별 예선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브라질의 호나우두가 갖고 있던 월드컵 통산 최다골 기록인 15골과 타이를 이뤘다. 그리고 이날 경기에서 호나우두의 나라 브라질을 상대로 한 골을 추가하며 역사적인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또한 지난대회 득점왕인 뮐러 역시 이 경기에서 득점을 성공시키며 두 대회 연속 5골을 터뜨리게 됐다. 1989년 생으로 아직 24세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클로제의 대기록을 가장 위협할 선수는 뮐러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사진 : The Official Facebook Page of the 2014 FIFA World Cup Braz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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