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롯데라는 나라

최봉석

bstaiji@sateconomy.co.kr | 2019-07-24 11:42:50


[토요경제=최봉석 기자] 한국 기업과 소비자들과의 역사를 보면 특유의 배려적 민족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특별히 '친일 기업'이라고 매도하며 아픈 과거를 들춰낸다던지 노골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불매를 하는 행위는 없었다. 국내 소비자들은 사실, 이 같은 '일본을 이롭게 하는 행위'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십상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의 역사를 재조명 해본다면, '반일' 행위가 주기적 반복적으로 일어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세계에서 한국만큼 자국을 침략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과조차 없이 뻔뻔하고 가증스러운 나라에 열광하며 우호적인 나라도 드물다.


일본에서 생산한 의류, 식품, 주류, 의약품, 영화, 음악 등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제품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뒤섞여 있다. 한마디로 일본은 한국을 암묵적 식민지로 여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일본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최대 규모의 극우 단체인 일본회의는 '한국은 식민지 지배를 받은 열등한 민족'이라는 전전의 식민지 의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한 저항이라든지,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과 같은 소비자들의 반발은 그간 전무했다.


가끔 일본의 브레이크 없는 경제, 역사, 안보 이슈에 대한 도발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때문에 의로운 국민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 혹은 집단 시위를 한 적은 있으나, 이 또한 언론에서 대서특필하지 않고 국민 역시 '심각한 현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일본에 대한 저항적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일부 정치 지도자들과 특정 기업 단체들과, 또 몇몇 보수 언론과 우리 사회 지도층은 일본에 대한 화해를 택했다. 한국의 경제를 성장시켜 주고 근대화까지 가능하게 해줬는데도 불구하고 이제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서려고 하는 것은 인정하기 어렵다는 '일본회의'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는 이런 분위기에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분노해야 할 일로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행보를 보면 한국의 기업들이 얼마나 이러한 비상식적 행위를 눈감아주거나 혹은 주도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한때는 '유럽의 화약고'라는 표현을 하나의 관용구처럼 서술했지만, 분단이 장기화 되면서 그리고 일본이 끝없이 전쟁하는 나라를 갈망하면서 '한반도 화약고'라는 표현이 언제부터인가 습관적으로 나오고 있다. 일본의 끊일 줄 모르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도발은 근본적으로 일제의 한반도 지배가 합법적이라는 일본 사회의 인식과 그런 사회가 만들어낸 '교육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지금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으킨 '경제 도발' 역시, 국내 일부 진영의 일본에 대한 충성심이 그 원인이 되고 있고, 한발 더 나아가 아베 정권이 경제 도발로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줘 문재인 정권을 무너트리려는 사태 역시 '친일파'가 날개를 달고 있기 때문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친일기업이 아닌 '일본기업' 롯데를 바라보는 '눈'은 예사롭지 않다. 이 기업에 대한 비판과 갈등은 여전하고, 지배구조의 아래에 있는 롯데상사, 미도리상사, 롯데아이스크림, 메리초콜렛, 롯데리아, 크리스피도넛, 지바코지코너 등도 '불매운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롯데의 대부분 계열사들의 불매운동의 중심에 서있는 중이다.


롯데에 대한 이 같은 접근법은 이 기업이 일본의 것인지, 아니면 한국의 것인지 여전히 궁금해하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다. 롯데그룹과 신동빈 회장 일가의 '일본 정체성 논란'이 또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는 뜻이다.


롯데는 삼척동자도 알다시피 '일본'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기에 근본적으로 '매출 규모가 큰' 한국에서 돈을 버는 기업일 수는 있으나, 앞서 신동주(일본명 시게미쓰 히로유키)·신동빈(일본명 시게미쓰 아키오) 형제의 경영권 분쟁 당시부터 정체성 논란에 휩싸일 만큼 사실상 '친일본'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분 구조를 보면 일본 롯데홀딩스(19.07%)가 대주주로 자리매김하는 등 누가 보더라도 '일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그런 롯데는 무인양품, 유니클로 등과 같은 일본 브랜드가 한국 상륙작전을 쉽게 할 수 있는 주체적 역할을 해왔다.


일본의 무역 보복조치와 관련해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와는 관련성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니클로, 무인양품, 롯데아사히 주류 등 일본과의 합작사가 많아 이른바 '롯데라는 나라'가 국내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이유인 셈이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지난 20일 닷새간 일정을 마치고 끝난 롯데그룹의 하반기 사장단 회의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좋은 일 하는 기업'이라는 공감을 고객, 임직원, 협력업체, 사회공동체로부터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롯데는 재벌이 됐고 그렇게 거대 권력이 됐고, 또 역사 속에서 엄청난 파란을 불러왔던 까닭에 신동빈 회장의 당시 발언을 객관적으로 해석해야 할지, 아니면 상황에 따라서 작금의 위기 순간을 타개하기 위한 언어적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부호가 커지고 있다.


일본과 합작사가 너무나 많아 국내 불매운동으로 인한 '유탄'을 제대로 맞고 있는 롯데가 난데없이 '공감'을 주창하는 것도 이런 일련의 그림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선진국이라 일컫는 서구에선 결코 접할 수 없는 단어인 '재벌'은 한국 최초의 거대 기업 집단이다. 그리고 이 재벌은, 우리 역사에서 정치를 장악한 시대를, 노동자를 우롱하는 시대를 지속해왔지만 우리 역사에서는 다행스럽게도 결코 단 한번도 재벌이 소비자 개개인을 지배한 시대는 없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한국기업' 아닌 '좋은기업'을 언급한 이유 역시 아마도 "이번 불매운동은 앞으로 계속되어야 한다"는 확실한 신념과 가치관이 우리 소비자들의 머리와 혈관에 깊이 박혀 있다는 점을 일정부분 알아차렸기 때문은 아닐까.


국내 소비자들의 일본 불매운동을 두고 "감정적이고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친일파 혹은 보수진영의 황당한 주장에 대해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이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발표가 24일 나왔다. 누가 뭐래도 한국인라고 자부해도 좋은 대단한 저력이다. 독립운동을 하는 마음으로 불매운동을 하고 있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롯데가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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