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금리에 단기성 부동자금 급증...은행 예금 이탈 가속
6월말 요구불예금 566조원...전년말比 77조8천억↑
5대 시중은행 6월말 정기예금 전월比 10조6785억원↓
부동산·주식 등 투기성 자금으로 이동 자산왜곡 심화 우려
김사선
kss@sateconomy.co.kr | 2020-07-23 10:44:09
[토요경제=김사선 기자] 초저금리가 장기화로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로 전환하면서 대기성 자금인 요구불예금이 급증하고 있다. 반면 1%대 금리제공에 실망한 고객들의 이탈로 은행 정기예·적금은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단기성 부동자금이 부동산과 증시 등 투기성 상품으로 쏠리면서 자산왜곡 현상이 심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부동산, 주식 등 투기성 상품으로 쏠릴 가능성이 많은 요구불예금은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지난달 말 기준 요구불예금 잔액은 566조316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말보다 77조8000억원 늘어난 규모다.
부동자금으로 분류되는 요구불예금은 수시입출금 예금,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 등은 고객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자금을 말한다.
반면 지난 6월말 기준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633조914억원으로 전월보다 10조6785억원 감소한 622조4129억원을 기록했다.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3월 652조3277억원을 기록한 이후 석달 내리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감소폭이 4월 2조7079억원, 5월 5조8499억원 등으로 매월 2배가량 늘고 있다.
은행권은 정기예금이 매월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는 이유로 한국은행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하로 정기예금 금리가 0%대로 떨어지면서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를 기록함에 따라 만기가 도래한 정기예적금을 굳이 재예치할 유인이 적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또 투자처로서의 매력이 낮아진데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경기침체 등으로 소득이 줄어들면서 여유자금이나 투자자금 성격의 예금도 감소한 것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은행은 앞서 지난 5월 말 기준금리를 연 0.5%로 내리면서 올 들어서만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하한 바 있다. 이후 은행들도 잇달아 수신금리를 내리면서 주요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기본금리는 연 0.4~0.85%까지 떨어진 상태다. 우대금리를 다 합쳐도 1%대 이자를 받기 어렵다.
은행 관계자는 “통상 1년 단위로 정기예금을 재예치하던 고객들도 올해는 만기가 된 자금을 재예치하는 대신 일단 수시입출식 예금에 넣어두는 경우가 많다”며 “저축성 수신의 잔액이 급감하는 동시에 요구불예금이 늘어나는 것은 저금리 영향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 상황에 따라 주식이나 부동산 등 투기성 상품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부동산, 주식 등으로 자금이 쏠리고 있다. 한국감정원이 7월 둘째주 서울의 주간 아파트 가격을 조사한 결과 아파트 가격은 0.09% 상승해 6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송파구(0.13%)가 지난주에 이어 서울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고 삼성·대치·청담동이 있는 강남구도 지난주(0.12%)에 이어 이번주 0.11% 올랐다. 서초구도 0.09% 상승해 지난주(0.10%)부터 강세가 이어졌다.
주식시장도 2분기들어 과열 양상을 보이며 요동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전날까지 코스피·코스닥·코넥스 시장에서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된 종목은 총 152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61건)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이중 코스피시장 종목은 54건인데 반해 개인들이 주로 투자하는 코스닥(70건)과 코넥스(28건)은 100종목에 육박하며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거래소는 특정 종목 주가가 이상 급등 현상을 보일 경우 투자주의 환기와 불공정 거래 차단을 목적으로 투자경고종목을 지정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6.17 부동산 대책에 이어 7.10 대책 등 잇단 부동산 규제책 때문에 부동산으로의 자금이동으로 제한적일 것으로 관측했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1분기 위험자산인 주식시장 주변 자금은 크게 늘었다"면서 “증권투자 예탁금이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지속적으로 증가해서 지난해 월 평균 26조원 대비 75.2% 증가한 46조원을 상회했다”고 분석했다.
조 센터장은 은행권의 대기성 자금인 수시입출금예금이 급증하고 정기적금은 감소한 반면 제로금리시대에 금융투자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19사태에 따른 경기불황과 제로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효과로 세계적으로도 MMF(Money Market Fund)나 요구불 예금과 같은 대기성 자금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면서 "주식·주식혼합형 투자신탁 잔고는 감소하고 증권사 예탁자산은 급격한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사태로 주가가 하락한 이후 이제 고객들이 펀드보다는 직접 투자를 선호한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갈 곳 잃은 유동성 자금이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으로 과도하게 쏠리면서 가격만 과도하게 올리는 ‘자산버블’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주식시장에서 빚내 투자하는 신용거래 융자 잔고가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은 주가 상승에 베팅하는 개미가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라며 "시중에 대거 풀린 유동성이 소비와 투자 등 실물 경제에 유입돼 활력에 보탬이 되기보다는 수익률이 높은 주식과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가격 거품을 일으키는 등 자산시장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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