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조작의 추억
정해용
peacepress@hanmail.net | 2010-04-05 10:29:13
무엇부터 짚어보아야 할까. NLL 인근에서 일어난 해군 초계함 침몰사건이 던져주는 생각의 단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상황에 대한 당국의 발표 내용이 오락가락하여 국민의 의혹이 부풀고 있다. 도무지 진실에 대한 정직한 보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느려터진 사후 대응체계도 심각하다. 수십 명의 귀한 병사들이 물속에 잠겨있는데 구조 활동이 시작된 건 거의 사흘이나 지나서다. 그것도 제대로 된 장비를 동원하여 심해 구조작업을 채비를 갖춘 건 이틀이 더 걸렸다. 도대체 갇힌 사병들의 생존 가능기간에 한 목숨이라도 더 구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인지, 대한민국 해군에 인명 구조능력이 있기나 한 것인지 국민들은 아연 혀를 찰 뿐이다. 대체 최첨단 장비를 갖춘다며 수천억 원 국민 혈세를 투입한 첨단 군함들이 어째서 작은 선박에도 장착된 해저탐지장비 하나 갖고 있지 못한 것인가도 새삼 궁금하다.
옛날이야기 가운데 거짓말의 상반된 기능을 동시에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가 바로 별주부전이다. 용왕이 죽을병에 걸렸는데, 토끼의 간이 특효라는 말을 듣고 자라, 별주부가 뭍으로 올라와 토끼를 유인하는 데 성공한다. 토끼를 유혹하기 위해 산 중에서 가장 약골인 토끼를 천하의 장부라고 치켜세우는 거짓말이 동원된다. 깜박 속아 용궁에 따라간 토끼는 뒤늦게 자신이 죽게 된 것을 알고는 깜짝 놀라지만 곧 너스레를 떨며 살아날 꾀를 쓴다. “토끼는 영물이라, 다른 동물과 달라서 간도 넣었다 뺐다 하는 존재다. 진즉 사정을 말했다면 흔쾌히 간을 하나 떼어주었을 텐데 괜히 돌려 말하는 바람에 바위에 널어놓은 간마저 깜박하고 왔으니 애석한 일이다. 다시 돌아가서 간을 가져오면 서로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자라나 토끼나 큰 거짓말을 주고받았다. 자라 입장에서는 자기 거짓말이야말로 왕을 살리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며 정당한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토끼에게는 까닭 없이 목숨을 빼앗아가기 위한 흉악한 거짓말이다. 한편 토끼가 간을 빼놓고 왔느니 어쩌니 하며 용왕을 속인 수단도 역시 거짓말이다. 토끼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죽지 않으려니 불가피하고 정당하다 못해 통쾌한 거짓말일 테고, 자라 입장에서는 감히 용왕을 속이고 경각에 달린 왕의 목숨을 팽개친, 용서할 수 없는 거짓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사 이래로 거짓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다. 古代의 원시법률에 하나같이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일찍부터 거짓말의 폐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율법 조항에는 대개 ‘남을 해치려고~’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거짓말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되 남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거짓말은 죄악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짓말은 유익성과 폐해성을 동전의 양면처럼 지니고 있다.
국가 안보와 연관된 군 관련 사고다 보니, 그 정보가 일관되거나 세밀하지 않거나 다소 은폐되는 게 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불가피성은 용인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에도 사고발생 시각부터 오락가락하는 것은, 그 중 다수가 거짓이거나 연막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군내 사고이므로 무엇이든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를테면, 국가안보상 필요에 의한 거짓이나 위장의 범위 내에 사고발생 시각이 포함될 수 있을까. 이런 사소한 것부터 제대로 밝히려 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과연 사고 원인 은폐나 침묵이 순수하게 국익이나 국가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국가안보상의 필요보다는, 군의 실책이나 무능, 지휘체계의 나태함을 감추기 위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국민은 걱정하게 될 것이다. 이런 군대에게 나라의 안보를 맡겨놓고 과연 우리는 편안하게 잠을 자도 될 것인가. 군이 존재하는 것은 귀중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일이다. 전시도 아닌 평시의 침몰사고에서 자신들의 인명도 구하지 못한대서야 국민이 어찌 군대를 믿을 수 있겠는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은, 게으른 목부를 비웃는 것이기도 하지만 만일 소를 여러 마리 가진 사람이라면 새겨들을 말이기도 하다. 군의 허술한 비상시 대응 매뉴얼을 차제에 완벽하게 보충하도록 노력하고, 느슨해진 위기관리 시스템도 점검을 해야 한다. 평상시 승조원들의 비상탈출 훈련 등 군사 매뉴얼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각종 대비태세를 숙지하는 데도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소중한 해군 병사들의 어이없는 희생에 대해 그나마 값있게 보상하는 길일 것이다. [상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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