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고전 읽기]장기판에 맞아 죽은 송(宋) 민공

32. 허망한 죽음(2)

정해용

peacepress@hanmail.net | 2013-10-14 15:38:05

戱則不敬 悖逆將生 희즉불경 패역장생
(군주가 신하를) 희롱하면 존경심이 사라져 반역의 마음을 품게 된다. (春秋 穀梁傳)
송 민공이 장수 남궁만을 자주 희롱하자 대부 구목이 위험성을 경고한 말


송(宋)나라 공자 풍(馮), 즉 송 장공이 정나라로부터 돌아와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먼저 상공(殤公)을 제거한 태부 화독 덕분이었다. 그 반란을 눈감아준 주변 제후국들의 덕도 빼놓을 수 없다. 화독은 공자 풍을 옹립하는 것과 동시에 나라의 곳간을 열어 주변 나라들에게 푸짐한 선물을 돌렸다. 일종의 뇌물이다. 어차피 군주를 시해하거나 이복 형제간에 서로를 죽이고 왕위를 차지하는 사건이 여러 나라에 유행처럼 번지던 터여서, 후계의 정당성이나 도덕성 여부에 문제를 제기할 자격을 가진 제후도 드물긴 했다.

이 때 노나라 군주는 형 은공을 죽이고 즉위한 환공이었다. 그는 송으로부터 보물이 전달되자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 보물은 왕이나 제후를 상징하는 솥(九鼎; 조상 제사에 사용되는 제기 중 하나)이었다. 노 환공은 이 선물을 종묘에 보내 제사에 쓰도록 했다. 세상 사람들은 ‘노 환공이 형을 죽여 군주가 된 뒤 다른 나라의 난리를 도와주다가 뇌물을 받고 물러나서는 그 뇌물로 조상을 모시면서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고 비웃었다(穀梁傳).

그런 직후에 송나라가 정나라에서 태자를 몰아내는 사건이 벌어졌다. 정 장공이 죽은 후 태자 홀이 뒤를 잇자 송나라가 정나라 대부 제중을 잡아놓고 장공의 서자인 돌(突)을 옹립하도록 협박한 사건이다. 송나라 여인이 낳은 아들을 위해서 벌인 일이긴 했으나, 풍이 망명시절 이웃나라들과 전쟁을 치르면서까지 보호해준 정 장공의 은덕을 생각하면 배은망덕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송 장공이 집권 19년째에 죽고 아들 민공이 즉위했다. 민공이 다스린 지 9년이 되었을 때 송나라는 홍수로 큰 수재를 겪었다. 노나라가 위로하기 위해 사신을 보내자 민공이 말했다. “이런 수재가 발생한 것은 다 내가 부족한 탓이오. 신을 잘 섬기지 못하고 정치 또한 밝지 못해서 겪게 된 것입니다.” 사신이 감동하며 돌아갔다. 이 말을 들으면 민공이 현명하고 겸손한 사람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은 민공의 어리석음을 걱정한 대부 자어가 미리 가르쳐주었던 것일 뿐, 그는 그저 가벼운 사람이었다. 노나라의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이듬해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참전을 요구하자 함께 노나라를 공격했다.

노나라와의 싸움에서 송나라 장수 남궁만(南宮萬)이 포로로 잡혀갔다. 남궁만은 누구나 두려워할 정도로 힘이 장사였으나 혼전 중 노나라 군의 화살에 맞는 바람에 사로잡히고 만 것이다. 송나라군은 물러나 화의를 청했고 노나라는 남궁만을 돌려보냈다.

남궁만은 송 민공과 어려서부터 친구처럼 자라나 허물없는 사이였다. 만이 돌아와서 인사를 올릴 때 민공이 말했다. “과인은 그대를 존경해왔건만 그깟 화살을 맞고 포로가 되다니, 이제 더는 존경하지 않을 것이오.” 만이 얼굴을 붉히자 민공은 “그대와 허물없는 사이라 농담을 하는 것이니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오”하며 달랬다. 신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구목(仇牧)이라는 신하가 말했다. “군주가 신하를 희롱하면 안 됩니다. 희롱이란 존경심이 없다는 것이니 곧 모멸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패역한 마음이 생긴다는 것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群臣之間 以禮相交 不可戱也. 戱則不敬 不敬則慢 慢而無禮 悖逆將生, 君必戒之).”

그들은 다시 친구처럼 지냈다. 남궁만은 상경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민공은 종종 친구인 만을 ‘포로’라고 놀렸다. 이듬해 가을 임금이 사냥을 나섰다. 여자들이 술시중을 드는 가운데 민공과 만이 장기를 두었다. 만이 승기를 잡았던지 보란 듯 우쭐거리자 속 좁은 민공이 질투심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래봤자 나는 왕이고 네놈은 포로가 아니냐.” 여자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하자 쌓이고 쌓인 모멸감이 폭발했다. 술 탓도 있었을 것이다. 만은 장기판을 번쩍 치켜들어 민공의 머리를 내리쳤다. 임금은 즉사했다.

중신 구목이 급보를 듣고 달려가자 만이 문을 벌컥 열었다. 구목은 문에 부딪쳐 이가 깨지면서 넘어져 죽었다. 엎질러진 물. 내친걸음에 남궁만은 도성으로 들이닥쳤다. 왕의 형제들은 소와 박이란 성읍으로 도망쳤다. 만은 태재 화독마저 죽이고 공자 유를 군주로 세웠다.


이야기 PLUS
허물없다는 이유로 친구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말을 함부로 하거나 손찌검을 하거나 그의 소유를 함부로 뺏어 쓰면서도 ‘널 믿어서 그러는 거니까 이해하라’고 말한다. 친구 뿐 아니라 부부, 가족 간에서도 그런 일을 보기는 어렵지가 않다. 진정한 우애나 의리가 아니다.
옹졸하고 경망스런 송 민공은 애당초 군왕의 재목이 아니었거니와, 어릴 적부터의 친구를 가장 가까이에 두고 멸시하다가 그 댓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에게 의지한다면 경멸하지 말아야 했고, 그를 경멸한다면 가까이 두지 말아야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남궁만의 행위는 모반이었다. 공자들이 연합하여 반격하자 만은 도망쳐 진(陳)나라로 갔다. 진은 송나라의 부탁을 받고 그에게 술을 대접하여 대취하게 한 뒤 물소가죽으로 결박하여 송에 넘겼다. 만은 그의 부하 맹획과 함께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송나라가 새 군주를 세웠다. 환공(桓公)이다.



여자들이 술시중을 드는 가운데 장기에서 지게 된 민공이
“그래봤자 나는 임금이고 네 놈은 포로가 아니냐”고 희롱했다.
분노한 만(萬)이 벌떡 일어나 장기판으로 머리를 내리치자 민공이 즉사했다. 우발적인 모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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