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 신화, 무엇이 그들의 날개를 꺾었나
재계 ‘샐러리맨 신화’ 추억속으로
김세헌
betterman89@gmail.com | 2013-10-14 11:17:53
웅진 윤석금ㆍSTX 강덕수ㆍ팬택 박병엽까지 ‘줄줄이 낙마’
“승승장구 도취에 급변하는 모바일 환경에서 적응 못해”
강‧윤, 무리한 사업확장‧인수합병 ‘성장주의’가 발목잡아
[토요경제=김세헌 기자] 최근 ‘샐러리맨 신화’가 또 한번 무너졌다. 지난 9월 팬택 박병엽 부회장이 채권단에 사의를 표하고 이사회에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다. 박 부회장 외에도 지난 1년 동안 2명의 샐러리맨 출신 CEO가 왕좌에서 떨어져 나갔다. 지난해 10월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과 지난달 STX조선해양 강덕수 회장이 바로 그들이다.
다른 대기업 총수들과 달리 회사를 상속받지 않고 자력으로 기업을 일군 이들의 성공은 많은 직장인들에게 희망과 기대감을 안겨줬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재계 내에서는 승승장구하던 이들이 성공신화에 도취한 나머지 무리한 사업확대를 통해 위기를 자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창업자’ 박병엽, 모바일 시장 대응 역부족…고군분투 끝내 좌초
사실 팬택 박병엽 전 부회장은 샐러리맨이 아닌 벤처사업가(창업자)로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맨주먹에서 시작, IT 업계에서 대기업 틈바구니에서 고투를 벌여 끝내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로 통한다.
박 전 부회장은 지난 1991년 단 6명의 직원으로 창업, 무선호출기 시장에 진출했다. 그의 1997년 휴대폰 시장 진출 결정은 시장을 10년 앞서 내다본 과감한 결단으로 업계 내에 손꼽히기도 한다. 이후 팬택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박 전 부회장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경영 철학에 따른 성과였다.
박 전 부회장은 2001년에는 매출 규모 1조원에 이르는 현대큐리텔을 인수하는 경영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 때 팬택은 달러 매출액 기준 50대 기업의 거대 단말기 업체로 급성장했다. 연간 40개 이상의 독자 모델을 생산대수 1200만대 이상 생산했다.
특히 유명 브랜드 ‘스카이’를 인수한 2005년의 인수합병(M&A)은 업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프리미엄 마케팅 전략을 내세워 시장 점유율을 서서히 끌어올리던 스카이를 인수하면서 팬택의 라인업은 더욱 공고해졌다.
팬택은 연간 매출 3조원까지 끌어올리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는 경쟁자가 됐다. 세계 시장과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을 거뜬히 생산해내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밑바탕이었다.
그렇지만 2006년 박 전 부회장의 성공신화는 커다란 장애물을 만났다.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적자가 불어났고 팬택은 그해 11월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팬택은 지난 6년간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모바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박 전 부회장은 경영 최일선에서 진두지휘했는데, 그는 가장 먼저 회장에서 부회장으로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팬택의 실질적 최고경영자지만 회사를 워크아웃에 빠지게 한 것에 대한 송구함을 직함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결과, 팬택은 지난 2007년 2분기 이후 20분기 연속 흑자를 냈다. 재기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위기가 업계에 감돌았다.
하지만 팬택은 지난해 3분기 17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5년 만에 다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박 전 부회장은 기업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삼성전자에 손을 벌리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팬택에 53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마침내 박 전 부회장은 사퇴 발표 2년 만에 다시 건강 문제와 경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평민’ 강덕수‧윤석금, 문어발식 사업확장 ‘위기의 부메랑’ 돼
지난 9월 초 STX조선해양 강덕수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그의 ‘10년 천하’도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 전 회장은 그동안 재계에 숱한 화제를 남기며 웅진그룹 윤석금 전 회장과 함께 ‘샐러리맨 신화’의 대표적 인물로 불려왔다. ‘평사원 출신 CEO’라는 명성은 지난 10여 년간 그를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수식어와 같았다.
강 전 회장은 지난 1973년 쌍용양회에 평사원으로 입사한지 30년만에 2003년 STX그룹 회장까지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 과감한 인수합병(M&A)를 잇따라 성공시키며 STX를 재계 13위 대기업까지 성장시키는 저력을 발휘했다. STX그룹 출범 이래 10여 년간 매출은 100배, 임직원은 75배씩 성장하며 재계를 놀라게 했다.
그렇지만 STX그룹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에 직격탄을 맞았다. 2008년 이후 공격적인 경영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면서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STX팬오션, STX조선해양 등 그동안 STX의 실적을 견인했던 주력 계열사들은 줄줄이 쇠락했다. 그룹 전체 재무구조까지 미친 타격은 STX팬오션 등 계열사를 회생절차로 이끌었다.
재계는 그동안 강 전 회장의 ‘신화적인 경영 이력’을 두고 그가 STX의 재기에 어떤 역할을 해낼지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러나 강 전 회장은 지난달 2일 경영책임을 이유로 STX팬오션 대표에서 물러났고 그룹 내 경영 일선에서도 완전히 물러나게 됐다.
‘샐러리맨 신화’의 원조격인 윤석금 웅진그룹 전 회장. 그는 백과사전 외판원으로 시작해 연 매출 6조원, 재계 31위 대기업군을 일궈냈다. 요즘 재계에서 보기 드문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윤 전 회장은 ‘뚝심의 경영인’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지난 1971년 한국브리태니커의 백과사전 영업사원으로 출발한 그는 1980년 출판사업을 시작한 지 32년 만에 매출 6조1000억원에 15개 계열사를 거느린 웅진그룹을 키워냈다.
윤 전 회장은 1980년대 과외금지 시대에 학습지와 테이프 학습교재를 내놓고, 고학력 주부가 늘어나자 여성 방문판매 시스템을 도입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소득수준이 높아지자 1989년 웅진코웨이를 설립해 정수기 시장에 뛰어들었다.
윤 전 회장의 뚝심은 위기에 특히 빛났다. 웅진코웨이가 1997년 외환위기 때 100만 원대 고가의 정수기 매출이 뚝 떨어지자 그는 정수기를 월 2만7000원에 빌려 주는 렌털 아이디어로 돌파구를 찾았다.
이어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1999년 연 매출액 2500억 원의 주력 사업인 코리아나화장품을 매각하는 승부수를 던져 재계를 놀라게 했다. 내부 반대가 심했지만 윤 전 회장은 회사 매각을 속전속결로 처리했으며, 그 돈은 정수기와 식품 사업에 투입했다. 비싼 정수기를 저렴하게 빌려주는 렌털 사업, 아침햇살·초록매실 같은 음료 신제품을 연속 히트시키면서 그는 탁월한 경영자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성공했다는 말을 들으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할 정도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2007년 극동건설, 2010년 서울저축은행을 사들였고, 태양광 사업에도 진출했다.
하지만 급격한 사업 다각화가 부메랑이 됐다. 재무 부담이 가중되면서 알짜 계열사를 팔아야 할 상황에 몰리면서 결국 쇄락의 길을 걷고야 말았다.
윤 전 회장은 당시 웅진그룹이 위기에 빠진 결정적 원인이 “자신의 무리한 사업확장이었다”고 인정했다. 그는 “무리하게 태양광과 건설업에 진출하는 등 사업확장을 꾀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재계 내에선 이들 샐러리맨 신화의 잇단 실패를 두고 무리하게 성장만 추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순간의 성공에 도취돼 회사를 더욱 빨리 키우고 싶은 노파심에 흔들리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고찰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이 돌이킬 수 없는 위기로 바뀌어 결국 좌초를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샐러리맨 신화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인물은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거의 유일한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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