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맛'본 보험사들, 금리 경쟁 '과열'
금감원 '저축성 보험' 특별점검 나서
전성운
zeztto@sateconomy.co.kr | 2012-02-13 13:56:40
보험은 예기치 못한 사고나 보험금이 필요해질 때에 대비해 보험료를 쌓는다. 그것이 ‘위험보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보험의 본질이다. 그러나 최근 과열 양상을 빚는 저축성보험은 이런 본래 기능이 크게 왜곡됐다. 금융감독원이 서둘러 특별점검에 나선 이유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요즘 보험업계가 하는 건 보험이 아니다”며 보험시장의 변질 실태를 지적했다.
지난 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저축성보험 시장 규모는 2010 회계연도(지난해 3월 말) 현재 42조4천억원으로 2년 전보다 10조원(30.8%) 증가했다. 이 기간 손해보험사의 저축성보험 판매는 4조3천억원에서 8조8천억원으로 100%가량 급증했다. 생명보험사도 28조1천억원에서 33조6천억원으로 판매량을 19.6% 늘렸다.
최근 저축성보험 시장이 급성장하고 보험사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자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률을 제시하려는 금리 경쟁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업계 안팎에서 과열경쟁에 대한 비판이 일자 금융당국이 특별검사와 현장점검에 나섰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보험사의 재정 악화로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금감원이 강도 높은 대응에 나선 까닭은 앞다퉈 금리를 올리고 수수료 지출을 늘리는 출혈경쟁이 보험사의 건전성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예금보다 낫다’고 가입을 권하지만, 사업비를 빼고 나면 오히려 수익률이 예금에 못 미쳐 소비자의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설계사가 수수료를 위해 중도 해지와 계약 갈아타기를 권유하는 탓에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원금에 못 미치는 사례가 많다.
◇ 삼성생명이 금리경쟁 선두
최근 과열경쟁은 시장점유율 1위인 삼성생명이 촉발했다. 삼성생명은 올해 저축성보험 공시이율을 연 4.9%에서 5.1%로 0.2%포인트 전격 인상했다. 매월 수천억원씩 보험료가 들어오는 점을 고려하면 0.2%의 의미는 절대 작지 않다.
삼성생명이 공세적으로 나선 데는 박근희 신임 사장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특별지시’가 있었다는 후문이 있다. 삼성생명의 점유율은 갈수록 하락해 현재 25% 수준이고, 특히 저축성보험 점유율은 2010년 1월 23%에서 지난해 11월 19%까지 줄어들었다.
공시이율은 보험료 수입 등 자산을 운용한 수익률을 기초로 산출한 기준이율에서 보험사가 상하 20%까지 조정할 수 있는, 은행으로 치면 예금금리에 해당한다.
이후 다른 보험사들도 앞다퉈 금리를 올렸다. 삼성생명과 비슷하거나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점유율 2·3위인 대한생명과 교보생명도 5.1%와 5.0%에서 5.2%와 5.1%로 올렸다. 이후 우리아비바생명, ING생명, 동양생명, 흥국생명 등 중소형사도 금리경쟁에 가세했다.
뒤늦게 저축성보험 시장에 뛰어든 손보업계에서는 LIG손보와 현대해상이 5.0%, 5.1%이던 연금저축보험 공시이율을 5.4%로 올렸다. 시장점유율 하위권인 롯데손보은 자산운용수익률이 낮은데도 한도(±20%)를 넘기는 편법으로 공시이율을 올리려다 금감원에서 ‘퇴짜’를 맞기도 했다.
급기야 금감원은 “과열경쟁 양상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대한생명, 동양생명, PCA생명, 우리아비바생명을 대상으로 지난주 특별검사에 착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조만간 생·손보업계 현장점검을 나가 저축성보험 판매에 문제가 없는지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저축성보험 보험료를 손익계산에 반영되지 않는 ‘예수금’으로 분류해 보험사들의 영업 유인을 억제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시장은 대형사가 보험료를 내리거나 이율을 높이면 중소형사는 따라가기 마련”이라며 “특히 삼성그룹 보험 계열사의 영향력은 막강하다”고 전했다. 한 업계 관계자도 “삼성이 마음먹고 금리를 올리면 다른 보험사는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따라 올리거나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해서 중소형사 몇 곳 쓰러뜨리는 건 일도 아니다”고 비판했다.
◇ 저축성 보험 판매, ‘돈놀이’ 목적?
현재의 보험시장의 왜곡은 저축성보험의 판매 급증에서 비롯한 측면이 크다. 저축성보험은 은행 정기적금과 비슷하게 보통 몇 년씩 만기를 정해두고 매월 보험료를 내면 나중에 복리를 적용해 보험금을 받도록 설계된다. 다른 게 있다면 위험보장 기능이 있는 정도지만 간신히 구색을 갖추는 수준이다.
그러나 은행 정기적금은 고정금리지만, 저축성보험은 매월 금리(공시이율)가 새로 정해진다. 보험설계사들이 저축성보험을 팔면서 나중에 돌려받을 보험금을 예시할 때 “현재 공시이율이 계속 적용된다고 가정하면”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지금까지 저축성보험 시장은 장기상품 판매가 많은 생명보험사들이 차지했다. 생보사의 저축성보험 판매액은 2004 회계연도 20조5천억원에서 2006년 25조원, 2007년 28조3천억원 등으로 꾸준히 늘었다. 2010년에는 33조6천억원을 기록, 처음으로 30조원을 넘었다.
그러나 2008년부터 보장성보험과 자동차보험에서 한계에 부딪힌 손해보험사들이 저축성보험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손보사의 저축성보험 판매액은 그 해 4조3천억원에서 2010년 8조8천억원으로 증가했다.
보험업계가 저축성보험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손쉽게 ‘돈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료 수입을 운용한 수익률에 사업비와 영업 이윤 등을 고려해 공시이율을 정하면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을 따먹는 은행처럼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다.
때문에 보험사들이 ‘은행 예금보다 이자가 후하다’고 꼬드겨 저금리 시대 목돈마련 수단으로 홍보하는 상품으로, 한 보험사 관계자는 “보장성 상품을 잘못 개발했다가 손실을 뒤집어쓰느니 만들기 쉽고 보험사나 설계사로서 수입도 짭짤한 저축성 상품에 눈길을 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험료 상승, 계약 해지 등 부작용 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보험사의 금리경쟁이 심해질수록 소비자의 혜택은 커지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보험연구원 이경희 연구위원은 “보험사의 건전성에 구멍이 뚫리면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며 “저축성보험에서 금리 경쟁으로 줄어든 이익은 다른 부분에서 메워야 해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험권은 경쟁이 과열되면 ‘계약자 빼오기’가 횡행한다. “더 좋은 상품이 나왔다”고 현혹해 기존 상품을 해지하고 다른 상품에 가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도 해지하는 만큼 환급금은 적어진다.
금감원은 “손보사들이 저축성보험 경쟁에 가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질병이나 사건·사고 위험을 보장하는 손해보험의 기능이 부실해지기 때문이다. 현재 손보사의 상품 판매 비중은 저축성 등 장기보험이 65%, 자동차보험이 23%, 순수 보장성보험이 12%에 불과하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일본 동경화재는 보장성보험 판매 비중이 80%에 달한다”며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예외적인 국가”라고 말했다. 손보사에서 이 비중은 거꾸로 되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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