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샷 인사’로 업무효율 잡았다
조준희 기업은행장의 인사개혁
전성운
zeztto@sateconomy.co.kr | 2012-02-06 13:35:43
“여신 담당 직원들이 1년 치 여신 업무 기록을 정리하다보면 1월과 7월이 가장 얇다는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1월과 7월은 정기 인사가 있는 달인데 일이 손에 안 잡혀 제대로 업무를 처리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조준희 기업은행장은 1월과 7월의 얇은 여신기록을 다른 달과 똑같은 수준으로 만들었다. ‘원샷 인사’가 해법이었다. 기업은행 임직원들은 지난 11일 하루 만에 1910명이 보따리를 싸고 풀었다. 1만3000여 명의 20%에 가까운 규모다. 매년 1월 정기인사가 한 번에 마무리된 것은 기업은행 50년 역사상 처음이었다.
조 행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몽골은 서구문명을 반석위에 올려놓은 로마제국보다 훨씬 더 넓은 땅을 정복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지배했다. 하지만 제국에 이르는데 걸린 시간은 로마의 400년보다 훨씬 짧은 25년에 불과했다”며 실용주의를 화두로 제시했다.
조 행장은 몽골처럼 원샷 인사를 통해 업무공백으로 인한 시간을 최소화하고, 인재 등용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원샷 효과가 조직에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미지수다. 향후 조준희 식 ‘실용주의’ 인사 효과가 나타나면서 업무 프로세스 개혁은 물론 상품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 비슷한 배경·경력 몰리지 않게 제도화
보통 1월에 진행되는 기업은행 인사는 설 연휴가 끼면서 1월 중순부터 2월 초까지 2주에 걸쳐 진행된다. 임원부터, 본부장, 지점장, 행원 순으로 진행되는 인사 기간 내내 직원들은 ‘좌불안석’이다.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것은 당연지사.
기업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기간을 줄여서 인사를 마무리하려는 시도는 많이 했지만 한날한시에 인사이동을 했다간 빠진 자리에 사람이 안 차고, 중복 배치되는 착오도 불가피했다”며 “특히 외부 출신 인사들이 오면서 인사 개혁이 쉽게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인사담당 부행장 출신의 조 행장과 인사부장 출신의 이사, 팀원부터 인사업무를 해 왔던 부장 등 ‘인사통’ 세 명이 기어코 ‘사고’를 쳤다. 조 행장은 1980년 행원에서 출발해 국내 은행 역사상 처음으로 행장 자리까지 오른 인물. 33년간 인사기간만 되면 조직이 술렁거리는 것을 숱하게 봐 왔다. 조 행장을 중심으로 인사 담당 라인은 석 달 전부터 하루 만에 인사를 단행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며 만전을 기했다.
◇ ‘능력 있는 직원’ 제대로 평가 받는다
특히 이번 기업은행 인사에서는 비슷한 배경과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몰리지 않도록 제도화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업무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본부장들에게 함께 일할 직원을 선택하는 권한을 줬지만 오히려 같은 고향, 학교, 과거 함께 일했던 부서원들이 모이는 게 다반사였다. 이로 인해 능력이 있더라도 ‘줄’이 없으면 원하는 자리로 가지 못한 병폐도 있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한 부서에 고향과 학벌, 같은 경력을 가진 부서원들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검증에 또 검증을 거쳤다”며 “매트릭스 같은 검증 시스템을 만들어 능력 있는 사람들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내부에서도 인사 기간이 단축되면서 반기는 모양새다. 한 직원은 “그동안 인사철이 명절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업무 공백이 많았지만 짧은 기간에 인사를 마쳐 업무가 단절되지 않게 됐다”며 “바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보름에 걸쳐 진행되는 인사를 단숨에 하면서 업무 공백을 줄인 점은 긍정적”이라며 “특히 능력에 따라 자리를 배치하면서 조직의 업무 효율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인사철만 되면 학벌이나 지연 등을 토대로 줄서기가 허다했다”며 “줄서기에서 소외됐던 능력 있는 직원들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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