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경제를 향한 인류학적 상상력
‘석기시대 경제학’…탁월한 통찰이 빛나는 경제인류학의 고전
김형규
fight@sateconomy.com | 2014-10-20 10:41:27
[토요경제=김형규 기자]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은 만들지 못한 겁니까?”
한 뉴기니인이 백인에게 물은 질문이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각 민족 사이에 생활양식의 격차와 불균형이 왜 생겨났는지 탐구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질문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 <석기시대 경제학>의 저자 마셜 살린스가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는 아마도 “왜 그런 화물들을 만들 수 있어야만 합니까?”라고 반문을 했을지도 모른다.
카메라가 가지 못할 곳은 없다. 한국에서 1만km 이상 떨어진 아마존강 상류의 밀림까지도 거침없이 찾아 들어간다. 덕분에 우린 안방이나 거실에 앉아서도 TV를 통해 오지에 사는 수렵채집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린 낙후된 그들의 삶에 동정과 우월을 느끼며 흥미진진하게 지켜본다.
우리는 그들의 삶이 고달플 거라 생각한다. 그들의 삶은 구석기시대에 머물러 있을 거라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미 ‘문명화’된 그들은 ‘아마존 민속촌’에서 ‘최후의 전사 부족’을 연기하며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수렵채집민의 삶은 정말로 그토록 음울한 것이었을까? 어느 인류학자의 묘사처럼 짐승들을 쫓아다니고 딸기밭을 찾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데 일생을 소비하는, 짐승이나 마찬가지인 삶을 살았던 것일까?
<석기시대 경제학>의 저자 마셜 살린스는 적어도, 멀지 않은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수렵채집민은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풍요로웠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인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다.
오늘날 우리가 보게 되는 수렵채집민의 음울한 삶은 문명사회, 그리고 시장경제와 접하고 난 뒤의 삶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문명인을 자처하는 자들이 이른바 ‘미개사회’를 마음대로 짓밟고 황폐화했다며 비난한 바 있다. 백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즉 수렵채집민들이 아직 석기시대에 살고 있었을 때 그들의 삶은 풍요로웠다.
생각해보라. 구석기 수준의 도구밖에 없는 수렵채집민이 부르주아적 욕망으로 무장하게 된다면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게 될지. 그러나 생각을 달리해보자. 수렵채집민이 건강한 생존이라는 한정된 목표에만 관심이 있다면,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활과 화살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호혜성’은 반드시 긍정?
<석기시대 경제학>에 의하면 수렵채집민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는 무엇 사이의 관계인 호혜성이다. 호혜성은 친족과 집단의 결속과 연대를 강화한다.
하지만 호혜성은 반드시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때로는 가구의 이해와 가구를 초월한 공동체적 이해가 충돌하곤 한다. “겨울에는 친척, 가을에는 아들”이라는 마오리 사회의 속담은 농번기인 겨울에는 먼 친척이었던 사람이 추수기인 가을이 되면 갑자기 아들처럼 행동한다는 뜻으로, 개인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행동이 사회집단의 표면적 도덕성과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안적 세계관과 비전 제시
<석기시대 경제학>의 저자 마셜 살린스는 수렵채집 경제가 ‘생계경제’를 대표한다고 보는 경제학의 전통적인 사고방식, 즉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에서 벗어나 수렵채집 사회야말로 원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였음을 증명하고 본래의 모습을 복원하려 한다.
이 책은 경제인류학의 고전적 쟁점과 풍부하고 흥미로운 민족지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 인류학, 고고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경제사, 사학 전공자들의 교재나 연구서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에 대한 인류학적 비판을 현재의 맥락으로 호출하면, 당대 금융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신화를 폭로하고 좀 더 인간 중심적인 경제 철학과 대안적인 세계관을 모색하는 데 의미심장한 지적 토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현재 한국 사회를 넘어 전 세계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빈곤, 불평등, 폭력과 전쟁, 환경문제의 극복을 고민하는 광범위한 독자에게 풍부한 실증적 자료와 중대한 지적 비전을 제공해줄 수 있다.
저자 : 사셜 살린스
옮긴이 : 박충환
출판사 : 한울 아카데미
가격 : 4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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