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신뢰잃은 '무소불위 사법부'
'부러진 화살' 흥행 파장… 시민 80% 사법부 불신
이준혁
immasat@naver.com | 2012-02-06 13:12:58
[토요경제 = 이준혁 기자] 최근 사법부가 잇단 악재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시작은 영화 ‘도가니’였다. 작가 공지영(49)씨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도가니’는 광주 인화학교에서 발생한 장애아동 성추행사건을 영화화했다. 지난해 9월 개봉 이후 대중의 관심을 촉발시키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사건의 전면 재조사가 이뤄졌고 성폭력범죄 처벌특례법 개정안인 ‘도가니 법’까지 통과하는 등 파급 효과는 엄청났다. 그리고 올해 1월 2007년 '석궁 테러 사건'을 토대로 제작된 법정 실화극 ‘부러진 화살’이 상영되고 ‘제2의 도가니’로 불릴 만큼 우리 사회를 다시 강타하고 있다. '부러진 화살'이 개봉 2주만에 관람객 200만명을 돌파했으며 사법부에 대한 신뢰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시민 80% "'부러진 화살' 흥행, 사법부 불신때문"
최근 영화 '부러진 화살'의 흥행 이유를 두고 시민 10명 중 8명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 탓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일 시민단체 법률소비자연맹이 최근 성인남녀 1106명을 대상으로 '시민 법의식'에 대한 대면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0.65%는 '부러진 화살' 흥행에 대해 '사법불신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와 함께 '사법불신을 선동하려는 세력 때문', '사회 부조리 고발에 대한 관심도 상승', '언론의 이슈화', '사회참여에 대한 의식 고조' 등 다양한 의견도 나왔다.
'법원이 불공정 재판을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전체 77.22%의 응답자가 동의했다. 또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수사 결과에 대해 '불신한다'는 의견이 84.45%에 달했다.
일명 '벤츠 여검사' 사건과 관련, 공직자의 범죄에 대해서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응답이 76.94%로 가장 높았다.
검사의 비리는 경찰이 수사토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80.2%로 높게 나타났으며 판사나 검사 등의 범죄를 수사하기 위한 '특별수사청' 설치안에 대해 81.28%가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법관이나 검찰총장을 지역 주민들이 직접 뽑는 공선제 도입에 대해서는 61.39%가 찬성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조사를 맡은 김대인 법률소비자연맹 총재는 "영화 부러진 화살 현상은 그동안 누적된 사법불신에 대한 폭발"이라며 "국민들이 저항권을 발동해서라도 반드시 사법개혁을 이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소불위 사법부의 반응
지난해 이미 '도가니 열풍'으로 홍역을 치른 사법부는 대중의 관심이 ‘부러진 화살’로 향할수록 심기가 더욱 불편하다. 최근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확산되는 가운데 양승태 대법원장은 30일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사법부의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자성을 촉구했다.
양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에 방문해 법관과 직원을 상대로 강연회를 열고 "사법부가 재판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최근 '부러진 화살' 등 영화를 통한 사법부 불신 현상에 대해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사법부는 존립 근거가 무너진다"며 "국민이 재판의 실상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 영화를 보고서 (그것이) 재판의 전형이라고 생각해 법원을 비판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 대법원장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출발점은 법정에서 국민과 충분한 소통을 하려는 자세"라며 "사법에 대한 신뢰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구성원 모두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재판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원 판결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 영화 '부러진 화살'이 흥행가두를 달리고,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석방 판사에 검찰과 보수단체 회원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진통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방법원(법원장 이진성)은 다음달 6일 오후 2시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대회의실에서 ‘소통 2012 국민 속으로’ 행사를 개최한다.
이날 행사 중 ‘법원에 묻는다’ 순서에서는 초청 패널인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상헌 NHN 대표이사, 이정향 영화감독, 최철규 HSG 휴먼솔루션그룹 대표가, 법관 패널로는 양현주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8기)와 김소영 부장판사(19기)가 토론을 벌이게 된다.
◇사법부 성찰 촉구
입장이 극명히 나뉘는 이해집단간의 분쟁을 결정해야하는 재판의 특성상 판결에 불복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이어져왔지만 국민이 대규모로 사법부를 비판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부러진 화살'은 화살의 행방과 셔츠의 혈흔이 없던 점 등을 제시하며 스크린 안에서 증거조작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곧 실체적 진실에 대한 사회적으로 공방으로 이어졌고, 당시 재판을 맡았던 법관이 직접 나서 해명을 하거나 판사들이 집단 행동에 나서면서 파장이 커졌다.
논란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이 사건 항소심 주심이었던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는 지난달 25일 위법을 무릅쓰고 "김 전 교수의 손을 들어주려고 했다"는 선고 전 합의 내용을 공개했다.
그러나 일부 국민은 이마저도 재판부가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와 함께 구속 기소돼 수감중이던 곽 교육감이 벌금형을 선고받고 직에 복귀하자 검찰과 일부 보수단체들이 '부당한 판결'이라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검찰은 '화성인 판결'을 운운하며 재판부를 비판했고, 단체 회원들은 재판을 담당한 판사의 집을 향해 계란을 집어 던지는 식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최근 일련의 사태가 진화될 조짐이 보이지 않자 일부 판사들은 법원 내부 게시판인 '코트넷'을 통해 우려를 표했고 대법원도 이례적으로 성명을 통해 유감을 나타냈다.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박지웅 사무차장은 "최근 사람들이 법원 자체가 갖고 있는 정당성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며 "지금까지 국민들의 의사와 정서에 부합하지 않은 판결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의 정당성이란 결국 국민들의 동의로 만들어지는 것인 만큼 국민들의 의사가 법에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사법부 고위 인사를 국민의 투표로 뽑거나 국회 차원의 사법 감시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내부적으로도 재판 절차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않은지 등을 감시하고 징계할 수 있도록 제도적 규정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며 "사법부의 전반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판사들도 "사법부가 생각하는 것과 일반 국민이 생각하는 것에 차이가 존재한다면 소통을 통해 간극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신영무)는 지난 1일 최근 확산되고 있는 사법부 불신 현상과 관련, 일부 국민들의 극단적 집단행동에 우려를 표명하는 한편 사법부의 성찰을 촉구했다.
변협은 이날 성명을 통해 "국민은 정당하게 재판받을 권리 뿐만 아니라 재판 과정의 투명성까지 요구하고 있다"며 "사법부는 권위의식과 성역을 허물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겸허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일단 기소가 되면 죄인으로 취급당하고, 엄격한 증명이 없더라도 판사의 독단으로 유죄를 선고한다는 인식이 있다"며 "이제 국민들은 상식과 동떨어진 법관의 주관적인 판단을 법의 양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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