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칼럼] '위기 탈출' 담배
이정선
jslee@sateconomy.co.kr | 2018-05-31 05:23:32
독일 작곡가 브람스가 ‘아줌마 부대’에게 포위당했을 때였다. 아줌마들은 브람스에게 짓궂은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브람스는 쩔쩔매다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방안에 연기가 구름처럼 퍼졌다. 그러자 한 아줌마가 콜록콜록하면서 따졌다. “여자 앞에서 실례 아닙니까?”
브람스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글쎄요, 나는 천사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구름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졸지에 ‘천사’가 된 아줌마들은 브람스의 말재간에 녹아버렸다. 담배는 궁지에 몰린 브람스를 구출해주고 있었다.
담배는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했다.
유명한 예술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태어났을 때 웬일인지 숨을 쉬지 않았다. 죽어서 태어난 것이다. ‘사산’이었다.
감히 산모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피카소의 삼촌이 엉겹결에 담배연기 가득한 입김을 피카소의 폐 속으로 불어넣었다. 그 순간 피카소는 울음을 터뜨렸다. ‘소생’한 것이다. 담배가 없었더라면 위대한 미술가는 세상 구경도 못해본 채 버려졌을 뻔했다.
담배는 ‘국가의 위기’를 구하기도 했다.
병자호란 때인 1636∼37년 소의 역병(牛疫)이 돌았다. 소는 마치 ‘광우병(?)’ 걸린 것처럼 나가자빠졌다. 나라 안의 소가 거의 전멸상태에 이르렀다.
산업의 전부가 농업이었던 당시였다. 소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그러면 야단이었다. 대책회의 끝에 몽골에서 소를 ‘긴급 수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수입대금’이 문제였다. 가뜩이나 가난한 조정에서 호란까지 겪는 바람에 돈이 부족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담배였다. 우리나라의 담배와 몽골의 소를 맞바꾸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바터무역’이었다.
나라에서 성익이라는 관리를 급파했다. 성익은 담배를 싸들고 몽골로 달려갔다. 협상 끝에 소 181마리를 구해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소는 이때 들여온 소가 불어나서 퍼진 ‘후손’이라고 했다. 몽골 사람들은 우리 덕분에 골초가 되어야 했다.
담배는 ‘국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조선통신사는 일본 사람들과 ‘필담’을 나눌 때 ‘긴 담뱃대’를 물었다. 일본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 “신분 높은 사람은 담뱃대가 길고, 천한 사람은 담뱃대가 짧다”고 가르쳐줬다. “너희 왜놈보다 우리가 위”라는 사실을 과시한 것이다.
담배는 약으로도 사용되었다.
서양사람 하멜은 ‘하멜 표류기’에 “조선에서는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담배를 피우고 심지어는 4∼5살 먹은 아이들도 피운다”고 썼다. 그렇지만 하멜은 착각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담배를 ‘회충약’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성호사설’은 가래가 목에 걸렸을 때, 비위가 거슬려 침이 흐를 때, 소화가 되지 않아 눕기 불편할 때, 먹은 게 가슴에 걸려 신물을 토할 때 이롭다고 했다. 서양에서도 담배를 가루로 만들어 두통약으로 사용했다. 교황에게 천식 특효약으로 진상되기도 했다.
31일은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금연의 날’이다. 골초들이 또 ‘공공의 적’이 되는 날이다. 그 골초들을 위해서 담배의 좋았던 과거사를 돌이켜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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