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의 ‘파업열차’ 종착역이 보이지 않는다
[진단] 철도파업 역대 최장기간 기록 경신…정치권으로 확산, 여야 공방 ‘격화’
김세헌
betterman89@gmail.com | 2013-12-23 15:25:41
[토요경제=김세헌기자]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가 지난 9일 수서발 KTX 민영화 반대와 올해 임금협상 합의를 촉구하며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간 가운데, 19일 현재 11일째를 넘기며 역대 최장기간에 돌입했다. 현재 경찰은 압수수색과 노조간부 10명을 체포하려는 등 끝이 안 보이는 대치국면을 보이고 있다.
이번 철도파업을 두고 노조의 요구에 대한 반응이 있어야 파업의 철회도 가능한데 코레일과 정부 모두 강하게 밀어붙여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대체적이다. 아울러 노조의 요구처럼 노사정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국회나 정부 차원의 ‘대화의 장’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철도민영화 저지’ 내세운 철도파업, 전말은?
철도노조는 철도 분할 민영화에 대해 세계 각국에서 폐해가 이미 확인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민영화를 시행한 뒤 요금인상·안전 위협, 지역 적자노선의 축소와 폐지, 재정부담 증가 현상이 나타났으며 이로 인해 공공성까지 파괴됐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경우 기존 KTX 노선과 수서발 KTX 노선은 80% 이상을 공유하기 때문에 정부가 말하는 발전을 위한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철도노조는 또한 수서발 KTX 출자회사가 설립될 경우 연 4664억원 가량의 수입감소가 발생하고, 철도 네트워크와 한국 철도산업의 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판단해 이에 반대하고 있다.
철도노조는 올해 임금 협상에 대해 지난해 경제성장률 3.6%와 10년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 3.1%를 감안해 6.7% 인상을 주장했으나 코레일은 임금동결을 제안했다. 아울러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에 따라 기존 58세였던 정년을 올해부터 60세로 연장할 것을 요구했지만 코레일측이 수용불가를 통보하며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철도파업에 대한 정부의 전방위 압박이 가해지는 현 상황을 두고 일각에서는 철도노조의 퇴로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노조가 사회적 대화의 문을 지속해서 두드리지만, 코레일과 정부는 점점 더 강경한 대응을 내세우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 9일 파업을 시작한 철도노조는 3일째인 11일 수서 고속철도 주식회사(수서KTX) 설립 철회와 함께 철도산업발전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 고소·고발과 직위해제 중단 등 5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하지만 코레일은 파업 조합원에 직위해제와 업무방해 혐의로 노조 간부를 고발하는 등의 조처를 하며 맞섰다.
정부도 이날 6개 관계부처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노조는 불법파업을 중단하고 생업에 복귀하라”며 “코레일이 방만 경영에 빠진 이유는 국민 불편을 담보로 잘못된 관행을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어 13일에는 파업 시작 5일 만에 처음으로 노사 간 긴급 실무교섭이 진행됐다. 노조는 5가지 요구안을 제시했지만, 코레일은 정부정책인 만큼 요구안 수위를 낮춰달라는 태도로 나서 결국 결렬됐다. 이날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미복귀 조합원에 대한 ‘특단의 조치’ 가능성도 시사했다.
파업 6일째인 14일 전국 규모 총력투쟁과 민주노총 연대투쟁을 벌인 철도노조는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코레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나서서 17일까지 대안을 마련해달라”며 “만족할만한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19일 대규모 2차 상경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파업 7일째인 다음 날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국민들은 불법파업 때문에 안녕하지 못하다”며 파업 철회를 거듭 요구했다. 그러면서 “법과 원칙에 따라 이번 파업에 대처하여 조기에 파업이 종료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도 이날 자료를 내고 지난 12일 코레일이 제출한 철도운송사업 면허신청서를 검토 진행 중이며 다음 주 말께 면허를 발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파업 8일째를 맞은 지난 16일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공안대책협의회를 열어 추가로 체포영장을 청구하고 구속 수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경찰은 불법 파업을 주도한 혐의(업무방해)로 김명환 전국철도노동조합 위원장 등 서울지역 노조 지도부 6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또 철도노조 소속 한길자주회 조합원 5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파업 9일째를 맞은 17일 코레일을 넘어 정부 차원의 압박이 시작되자 철도노조의 파업열차는 종착역을 잃은 양상이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노조는 적법 절차를 지킨 파업을 시작한 뒤로 꾸준히 사회적 논의 기구 구성이나 TV토론 등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현재 국회의 입장이 중요한데 소위 구성 자체가 쉽지 않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또 “일단 대화에 응하는 답변이 오지 않으면 예정대로 19일 2차 전국 규모 총력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했다.
◇ 코레일, 파업 노조간부 징계 등 ‘강경대응’ 일관
코레일은 철도노조 불법파업 집행간부 등 145명에 대한 징계 절차에 들어가 상태다. 현재 경찰서에 고소된 노조 집행간부 191명 중 징계퇴직된 해고자 46명을 제외한 145명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이와 관련해 코레일 관계자는 “불법파업이 장기화됨에 따라 주동자에 대한 절차를 우선적으로 착수하기 위해 감사출석요구서 발부가 진행되고 있다”며 “파업과 관련해 직위해제된 모든 인원에 대해서도 경중을 따져 인사조치 또는 징계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 했다.
코레일은 이번 고소·고발 건과는 별개로 이들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뿐만 아니라 손해배상 등 구상권까지 청구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노조 간부를 포함, 파업에 가담한 모든 조합원의 파업가담 정도와 기간 등을 고려해 중징계(정직·해임·파면 등) 처분한다는 방침이다.
장진복 코레일 대변인은 “사법당국의 처리와는 별개로 징계절차를 신속히 밟을 계획”이라며 “이미 징계 절차가 진행중인 145명에 대해서는 중징계 방침이 결정됐으며, 파업에 가담한 다른 조합원들에 대해서도 경중을 따져 중징계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8일에는 불법 파업을 주도한 혐의(업무방해)로 이우백 철도노조 조직실장 등 서울지역 노조 실무간부급 7명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서울서부지법 이동욱 영장전담판사는 이날 “불법 파업을 주도한 혐의에 대한 소명이 있고 소환에 정당한 이유 없이 응하지 않아 체포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영장발부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법원은 이에 앞선 지난 16일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 등 노조 지도부 6명에게 영장을 발부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날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든 철도 파업과 관련해 “정부는 법과 원칙에 의한 국가경영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19일에는 경찰이 전국에 있는 철도노조 사무실 4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전격 단행했다. 또 철도파업 관련 지휘부 화상회의를 열고 “불법에 상응한 사법조치”를 강조하고 나서는 등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경찰은 이날 오전 7시40분께 대전역 인근 철도노조 대전지방본부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부산지방본부, 영주지방본부, 호남지방본부 등 4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압수수색과 함께 체포영장이 발부된 철도노조 지도부들에 대해서도 전담 검거팀을 편성해 쫓고 있어 경찰의 전방위 압박이 본격화 된 것으로 보인다.
철도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여가 간 치열한 공방도 가열시키고 있다. 새누리당은 파업 중단을 촉구하고 있는 반면 야당은 파업의 원인제공자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지목하며 대책마련을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19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철도노조가 민영화라는 억지 구호 뒤에 숨어 철밥통 사수와 개혁 반대 수구 세력으로 남으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과도한 이익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불법파업은 결코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주당 주승용 의원은 철도민영화 논란으로 인한 철도노조 총파업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추궁했다. 그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공약이 다 파기됐는데 철도민영화를 안 하겠다는 말을 믿을 국민이 누가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같은당 변재일 의원은 이날 철도사업 민영화를 금지하는 내용의 철도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정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지방공기업법상 지방공기업만이 철도사업 면허를 받는 법인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 철도노조 “파업종결 위해선 대화 뿐” 소통의지 피력
철도노조는 19일 현재 철도민영화 저지를 위해 계속 파업을 이어가겠다고 결의한 상태다.
철도노조는 이날 오후 6시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광장에서 전국 조합원 1만2000여 명과 사회단체와 시민 8000여명(주최측 추산)이 운집한 가운데 ‘철도민영화저지 총파업투쟁 승리 총력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지난 14일 서울역 광장에서 제1차 전국 규모 상경투쟁을 벌인 데 이어 두 번째 결의대회다.
철도공사가 이날 오전 9시까지 파업 중인 노조원들에게 복귀할 것을 촉구했지만 전국 노조원들은 응하지 않고 상경해 서울광장을 가득 메웠다.
결의대회에 참가한 2만 여명의 손에는 밝게 빛나는 촛불이 들려 있었다. 영하권의 쌀쌀한 날씨도 이들의 투쟁 열기를 식히지 못했다. 참가자들은 무대에 선 노조 간부들의 결의발언에 촛불을 드높이며 서울광장이 떠나갈 듯한 목소리로 '파업 투쟁, 승리 투쟁, 결사 투쟁'을 외쳤다.
평소보다 삼엄한 경찰의 경계태세에 서울 정동에 위치한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나오지 못한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인터넷을 통한 생중계로 참가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불편을 참아가며 철도노동자들에게 지지와 성의를 보내고 있는 이들은 우리의 국민들”이라며 “우리의 투쟁은 우리를 지키는 것이 아닌 국민의 밥그릇을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민생경제를 살리는 투쟁을 가로막는 자들은 국토부요, 정부요, 철도공사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이 진정한 축하의 자리가 되려면 철도노동자에게 한 약속인국민합의 없이 민영화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지켜야 한다”며 “철도 파업의 종결을 원한다면 공권력을 즉시 중단하고 대화를 위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4시간에 걸쳐 진행된 결의대회와 집회를 밝힌 촛불은 밤 10시가 다돼서야 꺼졌다. 우려됐던 노조원과 경찰의 충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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