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권력, 총애하던 측근에 의해 갇혀 죽다

40. 관중의 유언

정해용

peacepress@hanmail.net | 2013-12-23 09:15:05

務爲不久 蓋虛不長 무위불구 개허불장


꾸민 일은 오래 가지 못하고, 감춘 거짓은 길게 가지 못한다. (<管子> 小稱)


관중이 제 환공에게 역아 수조 개방 등 측근의 허구를 깨우쳐주며 한 말

관중의 정책으로 인하여 제나라는 누구도 엿볼 수 없는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제 환공과 관중의 세상이었다. 그러나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누가 영원할 수 있으랴. 어느 누구보다 화려한 패자의 삶을 살았던 환공이었으나, 그의 죽음은 비참했다.

<관자>에 따르면, 환공은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구석방에 갇혀 먹지도 입지도 못한 채 쓸쓸히 숨을 거뒀다. 10월, 늦가을이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주검은 열하루가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42년간이나 천하를 주무르던 권력자의 최후가 어찌 이리도 사나웠을까. 관중이 늙어 죽음을 기다리던 순간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관중 덕분에 아무 걱정 없이 최고의 영화를 누리던 환공은 마침내 관중이 병석에 눕자 직접 집으로 찾아가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관중이 몸을 일으켜 의관을 바르게 하고 앉아 말했다.


“마지막으로 원하옵건데 군주께서는 역아와 수조 당무 개방 네 사람을 멀리 하십시오.”


관중이 말한 네 사람은 환공이 나이 들어 가까이 하면서 총애했던 사람들이다. 역아는 환공의 충실한 요리사였다. 어느날 환공이 역아의 요리를 칭찬하면서 ‘내가 역아 덕분에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없다. 사람 고기 빼고는 다 먹어보았다’라고 하였다. 다음날 역아가 새로운 요리를 내놓았는데 살이 부드럽고 맛은 색다른 것이었다. 환공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삶아 요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수조는 환공의 신하였는데, 여자를 좋아하는 환공이 궁내의 여자들을 관리할 사람이 없어 문란해지는 것을 고민하자 스스로 거세하여 고자가 된 뒤에 궁녀들을 관리하는 내시가 되었다. 개방은 위나라 영공의 아들로서 자진하여 관중을 섬기면서 15년이 넘도록 고향에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다. 당무(堂巫)에 대해서는 설명한 기록이 없으나 이름으로 보아 환공을 위해 푸닥거리를 하거나 춤을 추어 즐겁게 하는 기쁨조의 역할을 한 사람인 듯하다.


완벽한 성공은 오히려 심심하다고 해야 할까. 환공에게는 이들이 담당하는 요리와 춤과 여자와 술시중이 일상의 즐거움이었으므로, 이들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관중이 말했다.


“자기 자식을 삶아서 요리를 만드는 사람은 인간의 도리를 기대할 수 없으니 버리십시오. 남자로서 제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은 공을 진정으로 아낄 사람이 아니니 버리십시오. 공을 섬긴다는 이유로 제 부모를 15년이나 한 번도 찾아가지 않는 사람은 비정한 사람이니 역시 버리십시오. 꾸민 일은 오래 가지 못하고 거짓은 감추어도 길게 가지 못합니다(務爲不久 蓋虛不長). 그들은 평생 착한 일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죽음 또한 좋지 못할 것입니다.”


관중이 죽은 뒤 환공이 네 사람을 내보냈다. 그러나 곧 일상이 지루해지자 다시 네 사람을 불러들였는데, 이때부터 네 사람이 환공을 싸고돌면서 주변으로부터 고립시키고 마침내 골방에 가두어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토록 말한 것을 따르지 않아 이렇게 죽게 되었으니 내 무슨 면목으로 저승에서 중보를 만난단 말인가.” 환공은 후회를 하면서 스스로 얼굴에 천을 덮고 누워 굶어죽었다.


환공에게는 10명 넘는 아들이 있었으나, 본래 여색을 좋아하여 여섯 명의 첩에게서 낳은 자식들이 후계를 다투고 있었으므로 아비의 권력을 제대로 보호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환공의 장례를 치른 후 역아와 수조가 공모하여 여러 대부들을 죽이고 나서 공자 무궤를 군주로 옹립하자 태자 소(昭)는 송나라로 도망하였다. 그러나 무궤의 정권도 오래가지 못했다. 10명의 아들 가운데 다섯 아들이 서로 죽이고 죽으면서 공의 자리를 이어갔다. 태자 소가 송나라 군대의 도움을 받아 군주가 된 것은 그로부터 10개월이나 지난 여름이었다. 환공의 시신은 그제야 제대로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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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환공의 치세는 무려 42년이다. 그만큼 장수한 제후도 드물거니와 집권 후 몇 년 사이에 천하의 패권을 쥔 제후고 보니 그가 겪은 사건들은 무수하다. 환공은 재위 중 모두 아홉 차례나 제후들의 회맹(會盟)을 주도했다. 이 가운데 여섯 번이 군사적 회맹이다.


그러나 나무가 크면 그늘도 크다고 했던가. 여색을 좋아한 나머지 많은 자식을 낳고, 처첩과 자식들의 경쟁 때문에 후계구도를 미리 확립하지 못함으로써 환공은 자신의 죽음과 그 이후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태자가 정권을 이을 때까지 다섯 명의 아들들이 죽고 죽이는동안 많은 대부들이 살해되고 민심이 갈려 오랫동안 쌓아놓은 제나라의 기반에도 균열이 생겼다. 이는 환공의 큰 실패였을 뿐 아니라, 천하를 휘어잡고도 후일의 안정된 백년대계를 준비하지 못한 관중에게도 큰 패착이 아닐 수 없다.


관료나 대부들에게 권력을 나눠주지 않고 간사한 측근 내시들에게 둘러싸인 권력자가 비참하게 죽는 일은 후대에도 많은 예를 볼 수 있다.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으면서도 죽어서는 구더기가 나올 때까지 측근들의 장막에 감춰졌던 제왕으로는 후일 진시황과 한고조 유방도 있다. 권력 주변의 교통정리가 쉬운 일이 아님을 이로써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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