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를 위한 1%에 의한 '1%의 세상'
미국의 가장 큰 ‘적’은 이라크가 아닌 ‘보험 산업’
전성운
zeztto@sateconomy.co.kr | 2011-12-12 11:19:45
이 사회가 1%의 세상이 되는 동안 99%의 사람들은 눈앞에 닥친 문제에 정신을 잃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는 구조 조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제를 살리라는 말에 쇼핑을 하느라 너무 바쁘다. 그러다 한숨 돌리고 보면 전쟁, 테러 같은 좌절과 고통을 안겨 주는 이야기들만 들려 온다. 특권층은 이런 얘기들로 우리가 현실의 불평등을 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대기업과 CEO들은 “간절히 원하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해고되고 가난하고 불행한 것은 모두 ‘네 탓’이다”라고 수치심을 심어주었다. 우리는 항변할 기력조차 잃고 말았던 것이다.
<오! 당신들의 나라>의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약자를 짓밟고, 부를 독식하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무너뜨린 1% 초부유층을 정 조준해 독설을 쏟아낸다.
직원들은 대량 해고해 놓고 전별금으로 수억 달러를 챙기는 대기업 CEO. 가난한 환자를 내치고 경찰까지 동원해 치료비를 받아내는 병원. 엄청난 보험료를 받고도 보상은 절대 해 주지 않는 보험사.
가정이 파괴되는 것은 동성애자 탓, 실업자가 느는 것은 불법 이민자 탓, 당신이 가난하고 아프고 불행한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은 ‘당신 탓’이라고 말하는 그들 1%의 행태에 저자는 날카로운 풍자와 야유를 유쾌하고 짜릿하게 쏟아낸다.
도덕과 정의가 실종되된 비틀린 시대에는 정공법보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식 풍자와 조롱과 야유가 더 와 닿는다. 에런라이크는 99%의 평범한 이들을 웃기고 울리며 끝내 가슴 서늘하게 만드는 독설을 내뱉는다.
◇ CEO도 아웃소싱으로
2007년 1월, 주가 하락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미국기업 ‘홈디포’의 CEO 로버트 나델리는 퇴직금으로 2억1000만 달러를 받았다. 실패한 CEO가 받기에는 너무 많은 금액으로 보일 수도 있다.
저자는 “어쩌면 나델리는 열 명쯤 되는 전처들에게 부양비를 대거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며 “어쩌면 그 돈은 이사회가 주는 ‘팁’이었을 수도 있다”고 비꼰다. 우리처럼 쩨쩨하게 2~3달러가 아니라 ‘통 큰’ 분들답게 300퍼센트를 선사한 것일 수 있다는 말을 던진 것이다.
독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거대 기업들은 ‘반(反)자본주의’라는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를 몰래 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실적을 기초로 임금을 준다는 자본주의의 핵심 규칙을 어기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이는 ‘홈디포’만이 아니다. 제약 회사 파이저는 실패한 경영자에게 2억 달러에 달하는 전별 선물을 주었고, 증권사 메릴린치는 모기지 관련 부채 840만 달러를 손실 처리한 뒤 CEO 스탠 오닐에게 총 1억6150만 달러의 은퇴 혜택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자는 “효율적인 자본주의 사회라면 이런 고비용에 대한 해결법을 곧 도출해 낼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아웃소싱’이다. 그는 “수많은 산업을 그렇게 했듯 CEO 역시 인도나 중국으로 아웃소싱하는게 어떤가!”라고 말한다.
◇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미국의 중산층과 빈민층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인 것은 의료보험 산업이다. 2007년 미국인이 의료보험료로 지출한 돈은 7760억 달러에 달하지만, 보험 미가입자가 4500만 명이 넘는다.
매년 2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의료비로 인해 파산하고, 1만8000명이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다. 이는 9.11 당시 사망한 사람들보다 여섯 배나 많다. 그러니 미국의 가장 큰 ‘적’은 후세인도, 소련도, 이라크도 아닌 ‘보험 산업’이지 않겠는가.
의료 산업의 또 다른 주체인 병원과 의사 역시 보험회사 못지않게 탐욕을 추구하는 현실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민간 의료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강직한’ 모습을 보이며 아이들에게 의료보장을 늘리는 법안을 거부했다.
CEO들이 저임금으로 노동자의 숨통을 죄는 동안 금융 산업은 가난한 사람들을 유혹했다. 줄어든 임금을 대출이 대신했다. 그러나 애초부터 갚기 어려운 사기성 계약들이었다. 위기에 몰린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해결책을 택했다. 수만 달러에 달하는 등록금을 감당 못한 대학생들도 학자금 대출의 노예로 전락했다.
하지만 빚을 갚는 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대학 졸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라고는 대걸레와 쟁반, 요강과 현금 등록기를 다루는 저임금 노동뿐이니까. 오늘날 미국에서 성장하는 직업군 가운데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이 필요한 직업이라곤 20퍼센트인 다섯 개에 불과하다.
저자의 시선은 빈부 격차 고발에 그치지 않는다. ‘내부의 적’으로 변질된 의료 제도, 사회적 불만을 억누르는 기제로 쓰이는 성과 가족제도 등에 대한 각종 보수 담론, 노동에 지친 가난한 이들을 어르는 종교 주술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날카로운 비판을 들이댄다.
이것들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지점을 향한다. 한때 자본가들의 미덕이기도 했던, 그러나 이제는 너무 희미해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절절한 염원과 이를 위한 분연한 행동의 촉구다. 바버라 에런라이크 저·전미영 역, 1만3800원,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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