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 독점생산 의약품 공급거부행위 적발

환자 볼모 배짱 장사 녹십자 “너한텐 헤파빅 못줘” 횡포

황혜연

hyeyeon8318@naver.com | 2013-08-26 13:58:56

[토요경제=황혜연 기자] 대형제약사 녹십자(대표 조순태)가 특정 도매상의 의약품 공급 요청을 부당하게 거절하는 횡포를 부리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지난 20일 공정위는 녹십자가 독점 생산·판매하는 의약품 ‘정주용 헤파빅(10㎖)’에 대해 도매상의 공급요청을 거절한 사안이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거래 거절에 해당한다고 보고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정주용 헤파빅은 B형 간염 항체가 생성되지 않은 간이식 환자가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투약하는 정맥주사용 혈액제제 의약품으로 국내에는 대체 의약품이 존재하지 않는다.


병상 100개가 넘는 대형병원들은 간 이식자에게 필수적인 정주용 헤파빅에 대해 규정상 도매상을 통해 공급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공정위 조사결과, 의약품 도매상인 태영약품은 2010년 2월26일 서울대병원의 ‘정주용 헤파빅’ 구매입찰에서 낙찰자로 결정돼 1년간 총 80억원 규모(3만3600병)의 납품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녹십자는 물량이 한정돼 추가공급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제품 공급을 거절했다. 결국 태영약품은 다른 도매상으로부터 의약품을 조달해서 공급해야 했다.


특히 녹십자가 태영약품에 물량을 공급해준 다른 도매상에 대해서도 제품공급 할인율을 기존 6%(23만3120원)에서 2.7%(24만1304원)으로 일방적 인상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태영약품은 낙찰가(24만2296원)보다 비싼 가격(24만8000원)에 제품을 구입해 손해(총 1억5000여만원)를 보며 납품해야 했고, 서울대병원에 납품지연에 따른 배상금까지 물게 됐다.


◇도매상 피해규모 크지 않아 과징금은 미부과
이에 공정위는 녹십자가 전년도 초과생산량(6만3622병)이 존재하고, 수시로 소량씩 생산해 공급하는 방식 등을 감안할 때 실제로는 공급여력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 의도적으로 공급을 회피한 것으로 판단했다.


또 태영약품에게 정주용 헤파빅을 공급한 다른 도매상에 대해서도 의약품 할인율을 보험기준가 대비 6%에서 2.7%로 낮춰, 사실상 공급가격 인상이라는 보복 조처를 취했다.


다만, 공정위는 ▲녹십자가 부당이득을 얻었다거나 거래상대방이 입은 피해가 크다고 보기 어려운 점 ▲재발방지 명령만으로도 공정거래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점 ▲과거 유사 사건에 과징금 부과 시 패소한 사례 등을 고려해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성구 공정위 서울사무소장은 “독점적 지위에 있는 제약업체가 병원의 의약품 경쟁입찰 제도를 무력화시키려는 사례”라며 “병원별로 다년간 특정 도매상이 고착화되면 경쟁제한 및 소비자이익 침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녹십자측은 “재고 비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약을 공급할 수 없었다”며 “공정위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거래거절에 대해 관련 매출액의 최대 2%(1억6000만원)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데도, 도매상의 피해규모가 크지 않다는 등의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과징금을 아예 부과하지 않아 ‘솜방망이 제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