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사법파동…대내·외 개혁 몸부림

토요경제

webmaster@sateconomy.com | 2010-03-19 11:28:22

사법제도 개선안을 둘러싸고 집권여당인 한나라당과 대법원이 정면 충돌한데다 일선 법관들의 불만도 고조, 사법파동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19일 대법원에 따르면 사법부가 공식 인정하는 사법파동은 모두 2차례다. 1993년 소장 판사들의 사법부 개혁 요구, 2003년 대법관 임명제청 방식을 둘러싼 연판장 사건은 사법파동으로 보고 있지 않다.

1차 사법파동은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법원이 시국 사범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일이 잦아지자 검찰이 무죄 판결이 많은 특정 재판부를 뇌물수수 혐의로 조사,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벌어졌다.

특히 '문제의'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린 사건 중 5건은 반공법 위반 사건이었다. 구속영장 청구사실이 알려진 후 전국 법관 150여명이 사표를 제출하는 사법파동으로 비화됐다.

민복기 전 대법원장은 당시 상황을 "시국관계 범죄에 미온적이라는 행정부의 불만이 누적되어 있을 즈음"이라고 회고했다.

2차 파동은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5공화국 당시 활동한 사법부 수뇌부를 재임용하려 시도한 데서발단이 됐다. 당시 판사 330여명은 대법원장 퇴진을 요구하며 극렬히 반발했다.

1·2차 사법파동은 사실상 3권 분립의 한 주체인 행정부와 또다른 주체인 사법부 간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입법부와 대결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다만 과거 파동은 대법원이 아닌 일선 법관들이 주도했다는 점이 다르다.

역사 속에는 존재하지만 사법부가 '사법파동'이라는 용어를 쓰기를 꺼려하는 3차 파동은 1993년 소장 판사들이 사법부 개혁을 요구하면서 일어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단독판사 28명이 '사법부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발표했고, 대한변협 등 변호사단체와 사법연수생까지 합류하면서 사태가 확대되다가 김덕주 대법원장의 퇴진으로 일단락됐다.

4차 파동은 2003년 기수와 성별, 법관 중심의 관행에 따라 이뤄지던 대법관 제청방식의 변경을 요구하며 판사들이 연판장을 돌린 사건이다. 이 사건은 최근 논란이 된 우리법연구회가 주도했다.

한편 국회·정부 등과의 관계에서 사법부를 대표하면서 대법관도 겸직하는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은 18일 성명을 통해 강한 어조로 한나라당의 사법제도개선안을 정면 비판했다.

대법원장의 재가를 거친 것으로 전해진 박 처장의 이번 성명은 그 자체로도 매우 이례적으로, 사법부 독립을 굳건히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풀이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17일현행 14명인 대법관 수를 24명으로 늘리고, 대법원장의 법관 인사권을 외부인사가 다수 참여하는 법관인사위원회에 넘기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개선안을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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