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 친 이효리, 부활 수단은 ‘갬블’
토요경제
webmaster | 2008-03-24 10:07:20
이효리의 실패는 2006년 2집 앨범 ‘다크 엔젤’부터다. 그러나 ‘다크 엔젤’은 방향성 오류라기보다 악재에 가까웠다. 진정한 방향성 상실은 지난해 드라마 ‘사랑한다면 이들처럼’과 연계된 디지털 싱글 ‘톡!톡!톡!’부터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은 애초 제대로 된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의도조차도 아니었다. 실패는 이미 기획 단계부터 예견되어 있었고, 그나마 과도한 PPL 등의 이유로 방송중지 중징계를 받는 악재도 겹쳤다. 한 배를 탄 디지털 싱글 ‘톡!톡!톡!’과 드라마 이미지에 맞춰 넣은 미디엄템포 곡들도 같이 쓰러졌다.
이 시점까지도 되돌릴 길은 있었다. 타격은 있었지만, 결정적인 건 아니었다. 기존 섹시 이미지가 노쇠하고, 정반대 이미지로의 전환이 불가능하다는 걸 재확인한 정도였다. 아직 이효리라는 이름 자체는 ‘섹시 콘셉트 솔로 여가수’의 대명사였다. 방향성만 제대로 잡으면 컴백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효리는 그런 마지막 기회조차도 놓치고 있다.
노래도 안 뜨고 드라마도 안 되니, 버라이어티로 가버렸다. 이미지 조정 시에는 가능한 노출을 줄이는 게 원칙이다. 신비주의 콘셉트가 동원돼야 할 시점이다. 매주 방영되는 버라이어티쇼는 어쩔 수 없이 이미지 소진이 심하고, 결국 지루해진다.
더 심각한 건 버라이어티쇼에서 이효리가 맡은 역할이다. 수년 전 이효리를 스타로 띄웠던, 까불대고 발랄하며 도발적인 역할을 재탕하고 있다. 재탕에만 그치면 큰 문제가 없는데, 진정한 문제는 이제 그 역할이 이효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효리는 이제 서른이다. 액면 그대로야 스물아홉에서 한 살 더 먹은 것에 불과하지만 이미지상으로는 다르다. 30이라는 숫자가 주는 사회통념, 역할통념에 종속된다. 지금 이효리의 모습은 아직 20대 때 태도를 버리지 못한 주책맞은 30대 여성의 그것이다. 버라이어티에 이어 CF까지도 이런 이미지가 전염돼 있다.
소주 광고에서는 아프로 헤어를 하고 몸을 흔들어대며 20대 초반의 발랄함을 무리하게 보여줬다. 안쓰럽다는 느낌까지 든다. 한 편의점 체인의 화이트데이 광고에서는 아예 ‘나이를 부정’하는 듯 학생복 차림에 가까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문제는 더 있다. 출연 중인 버라이어티쇼 SBS ‘체인지’에서 보여준 분장 에피소드는 여기에 ‘전성기를 넘기고 왕년의 인기를 그리워하는 옛 스타’ 이미지까지 덧씌웠다. 사실상 최악의 이미지 마케팅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런 식의 극단적인 네거티브 이미지는 모두가 기피한다.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았으니 이미지 관성의 힘으로 잠깐 더 팔고 끝내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지금 같은 패턴으로 가면 ‘굴욕 캐릭터’로 굳어지게 된다.
이효리 이미지의 전환 필요는 이제 기정사실이다. 나이 면에서도, 위상 면에서도 모두 그렇다. 기획사 측도 그걸 알고 있다. 다만 실패 경험이 많아 주저하는 것뿐이다. 결국 기존 이미지 재탕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왕년의 스타’식의 자학적 콘셉트까지도 껴안게 된 것이다. 안 되는 것을 피하고 피하다보면 그리로 밖에 갈 곳이 안 남는다.
그렇다면 이효리는 대체 어디로 가야하나. 사실 어려운 문제다. 피크를 치고 난 뒤에 살아남는 비결은 원래 어렵다. 하나하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효리는 분명 이미지 전환을 시도했다 실패한 것이 맞다. 그러나 그 전환 방식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효리 이미지의 중심은 ‘가수 이효리’다. 버라이어티쇼의 까불대는 이미지, CF에서의 귀여운 건강미 등이 혼합된 것이 이효리이지만, 전체 이미지의 이동은 언제나 가수 활동에 따랐다.
‘핑클’에서 소녀풍 노래들을 부를 땐 소녀 이미지에 종속돼 있었고, 솔로 데뷔로 섹시 콘셉트를 선보이면서 섹시 이미지가 주축이 됐다. 이후 이미지 전환, 확장이 없는 것은 그녀의 가수 활동이 정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드라마로 이미지 전환을 노린다는 발상은 최악이었다. 마돈나는 영화에서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에도 성공했지만, 그건 마돈나의 음악 영역이 워낙 넓어서다. 음악 자체가 발라드부터 댄스까지 다양하게 섭렵되어 있다 보니 이미지 자체도 폭이 넓다.
이효리는 댄스곡에 머물러 있다.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도 그에 한정된다. 드라마에서 구슬픈 역할을 맡아봤자 전환 효과가 안 나온다. 전환하려면 음악으로 전환했어야 했다.
여기서 또 난제가 있다. 이효리의 ‘다른 콘셉트’ 음악은 사실상 실패했다. 지난해 낸 미디엄템포 곡들은 거의 무시당했다. 이미지는 둘째 치고, 애초 노래 실력 문제다. 이효리의 보이스컬러는 댄스곡을 부를 땐 날카롭고 선명한 맛을 내지만, 미디엄템포 곡을 맛깔스럽게 소화할 수 정도로 숙련되어 있진 않다. 애초 넘나들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이다.
춤을 기본으로 하는 이효리 음악 퍼포먼스의 특성으로 미뤄 봐도 확실히 이효리에게 어울리는 음악 장르는 댄스 계통이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극단적으로 제한된다. 이효리는 ‘댄스 음악’의 한도 내에서 변신해야 한다. 그러나 20대적 풍모를 보여주기엔 힘들다. 더 원숙하고 성숙한 면모로 나가야 된다. 그렇다고 옷차림만 성숙하게 바꾸고, 태도만 달리 보여준다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음악 자체를 손봐야 한다.
아티스트적 이미지로의 전환이 유일한 길이다. 댄스 음악 내에서 이를 실행하려면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으로의 전환이 가장 효과적이다. 사실상 마돈나도 이 길을 선택해 40대 이후 커리어를 살렸다. 음반판매는 예전만큼 폭발적이지 않지만, 천박한 섹시 아이콘에서 인정받는 뮤지션으로 탈바꿈했다. 장기화로 가는 길을 걷게 됐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근작 앨범에서 일렉트로니카로 갔다. 복잡한 사생활 덕에 인기가 폭락해야 정상이지만, 수준 높은 음악적 궤도가 만들어지자 꾸준히 ‘주목해야 할 뮤지션’ 위치는 고수하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는 경우가 약간 다르긴 하다. 이미 엄정화가 이 패턴을 걸었다 실패한 바 있다. 그만큼 일렉트로니카는 한국에서 ‘먹힐 듯하지만 잘 안 먹히는’ 음악 형태다. 그러나 엄정화와 이효리는 다르다. 엄정화는 실력파다. 숙련된 가수이자 좋은 연기자다. 그러나 이효리는 트렌드 세터였다. 능력과 실력과는 상관없이 붐을 만들어낸 경우다. 물론 불과 수년 사이 트렌드 세터로서의 기능은 상당히 저하됐지만, 아직 안 되던 장르 하나를 새롭게 소개할 수 있는 화제성 정도는 지니고 있다.
여기에 올인하는 수밖에 없다. 아티스트로의 전환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길이다. 그러나 현재의 20대 패턴 반복 버라이어티 아이들은 분명히 안 되는 길이다. 연기자로의 전환은 이미 두 번씩이나 안 되는 길임을 입증했다.
모험을 걸어봐야 한다. 아직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는 자신의 화제성을 걸고 도박해야 한다. 어차피 쇼비지니스는 많건 적건 도박성을 지닌 게임이고, 설령 잃게 되더라도 그나마 ‘품위 있게’ 잃는 편이 언제나 낫다./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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