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정부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은 위상
'세월호 참사' 대응 실책 등 책임 중추 지적에도 자리 '굳건'
박진호
ck17@sateconomy.co.kr | 2014-05-23 14:24:52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2일 신임 국무총리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내정했고, 남재준 국정원장과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그러나 김기춘 비서실장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이번 인사 발표에 새누리당은 “시의적절한 인사”라고 평가한 반면, 야당은 김 실장이 유임된 인사 조치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민병두 의원은 “인사 시점 자체가 지방선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의혹이 든다”고 말하며, 이번 인사조치가 선거 국면을 의식한 조치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내놨으며, 통합진보당 김재연 대변인은 김기춘 체제가 유지되는 것에서는 희망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의당 선거대책위원회 김종민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사법처리 대상인 남재준 원장과 직무유기로 처벌받아야 하는 김장수 실장에게 자진 사표 형식으로 면죄부를 주었다”며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유신 시절부터 代 이어 朴 父女 섬기고, 정부 실권 움켜쥔 '왕실장'
기본적으로 야당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자리를 지킨 것을 두고 이번 인사와 앞으로 진행될 개각에 대해 의미가 없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실제로 책임총리의 권한행사가 힘든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제외했을 때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따라서 향후 안 신임 총리가 어떤 행보를 이어가고, 신임 내각이 어떤 노선을 펼친다 해도 김 비서실장이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기본적인 정부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법무부 과장으로 유신헌법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김 비서실장은 지난 해 8월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될 당시부터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유신회귀’의 논란을 낳았던 김 실장은 이후 정부와 사회 갈등이 벌어질 때마다 각종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여당에서도 지난해 말 개각과 관련한 논의가 오갈 당시 성토의 대상으로 거론된 바 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검찰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 대한 신병확보에 나서자, 종교탄압이라고 맞선 구원파 신자들은 경찰이 강제 진입에 나서려 했던 금수원을 막고 ‘김기춘 실장, 갈데까지 가보자!!!’, ‘우리가 남이가!’ 등의 현수막을 걸며 대항했다. 검찰이나 경찰, 혹은 정부나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 김 실장이 모든 사태의 중심이라고 겨냥을 한 것이다.
구원파 뿐 아니라, 지난해부터 정부가 대화와 타협 보다 ‘원칙’과 ‘소신’이라는 대통령의 주장 아래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밀어붙일 때에도 박 대통령보다 김 실장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심지어 김 실장이 대통령 아래의 ‘소통령’을 넘어, 사실상 ‘상왕’ 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난도 등장했다. 따라서 일련의 정부가 보인 실책에 대한 책임을 추궁한다면 김 실장이 차지하는 부분이 가장 막대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한 최종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국민 앞에 자인했다. 그렇다면 실무에 대한 책임을 애써 외면 한다 하더라도 대통령을 가장 측근에서 보좌했던 김 실장은 보좌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다.
인터넷 댓글 사건과 정치 개입 사건은 물론 간첩 사건 조작까지 연이어 일으켰던 국가정보원은 이명박 정권 말부터 우리 사회 문제의 화두로 떠올랐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법정에 서는 상황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계속된 실책과 ‘민주주의’라는 국가체제를 정면으로 거스른 국정원의 행보에 대해서도 정부는 남재준 원장에 대한 책임을 애써 외면해왔다. 검찰의 조사를 받던 국정원 간부가 자살을 시도한 후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막장 드리마’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는 상황에 대한 납득을 강요하던 상황에서도 남 원장을 지키던 정부는 결국 이번 사태로 남 원장을 물러나게 했다.
국회에 출석하여 “국가안보실은 국가비상사태에 대비하는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국가위기 관리업무 수행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강조한 지 1년 만에 대형 참사가 터지자 ‘재난’과 관련한 ‘컨트롤타워’는 국가안보실이 아니라고 어처구니없는 말 바꾸기로 국민 공분을 샀던 김장수 실장도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짧은 아랍에미리트 방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박 대통령은 이러한 여론과 민심을 달래기 위해 인사문제에서 좀 더 전향적이고 대승적인 양보를 선택해야 했고, 결국 애지중지하던 남재준 원장과 김장수 실장을 물러나게 했다.
그러나 끝내 ‘김기춘 카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는 못했다. 이로 인해 야심차게 꺼내든 총리 인선과 준비 중인 개각 역시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대를 이어 집안에 충성하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한 박 대통령의 미련이 결국 이번 정부의 국정운영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가 주목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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