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칼럼] 박제가의 ‘전쟁론’과 북한

이정선

bellykim@daum.net | 2018-04-27 14:17:52

<사진=연합뉴스>


“수레(車)는 병기(兵器)가 아니지만, 수레를 쓰면 짐수레로 이용할 수 있다. 벽돌은 병기가 아니지만, 벽돌을 쓰면 성곽을 갖출 수 있다. 백공(百工)·기예(技藝)·목축(牧畜) 등은 병기가 아니다. 그러나 삼군(三軍)의 전마(戰馬)와 전쟁에 쓰는 기기가 준비되지 않으면 이롭지 못하다…. 치고, 찌르는 기구와 방패를 만드는 것은 병기의 말(末)이다. 재능 있는 선비가 이용기구를 만드는 것이 병기의 본(本)이다.”

조선 때 학자 박제가(朴齊家)는 ‘병론(兵論)’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각종 기구 등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으면 유사시에 군수물자와 병기로도 이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농사를 짓는 수레나 가축이 유사시에는 군사용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박제가는 이런 것들은 별도의 돈을 들이지 않고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것을 ‘병기의 본’이라고 했다. 무기 따위나 만드는 것은 ‘병기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박제가는 그래서 “지금 취할 계책은 수레를 움직이고, 벽돌을 만들고, 목축을 잘하고, 백공·기예를 장려하는 것”이라고 촉구했다. 산업을 장려해 생산을 늘리고 기술을 축적하면 국방 문제도 따라서 해결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한마디로 경제를 튼튼하게 키우는 것이 국방이라는 주장이었다.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탁월한 견해가 아닐 수 없었다. 이른바 ‘소모전(消耗戰)’인 현대전을 치르려면 막대한 물자와 전쟁비용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마저 전쟁비용을 분담하자고 압박하고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우리에게 떠넘기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은 ‘병기의 본’을 제쳐놓고 ‘병기의 말’을 갖추는데 국력을 온통 기울여왔다. 알다시피, ‘핵개발’이다.

북한은 핵보유국이 되었다며 큰소리도 쳤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1월 1일 ‘육성’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있다는 것은 위협이 아니라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겁을 주기도 했다.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병기의 말’에 너무 집착하면서 ‘병기의 본’을 잃고 말았다. ‘인민’은 물론이고 ‘병기의 말’을 다뤄야 할 병사들까지 제대로 먹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서 국제적으로 더욱 고립되고, 경제는 한층 악화되고 있다.

그랬던 북한이 전략을 ‘병기의 본’으로 바꾸는 듯싶어지고 있다. 핵 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발사를 중지하고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의 핵실험장도 폐기한다고 전격 발표하고 있다. 우리 국방부는 휴전선 일대의 확성기 방송을 2년 3개월 만에 중단하고 있다. 남북 정상이 만나 회담까지 하고 있다.

북한이 ‘병기의 말’을 버리면 ‘병기의 본’을 이룩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를 포함한 세계가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 경제 개발을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병기의 본과 말’을 한꺼번에 장악하겠다고 우길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면 ‘본말전도(本末顚倒)’가 될 수도 있다.

옛말에, 9년 동안 먹을 양식을 비축하지 못하는 것을 ‘부족(不足)’이라고 했다. 6년 양식을 비축하지 못하면 ‘급(急)’이라고 했다. 1년 양식조차 비축하지 못하면 아예 국가의 존립기반이 없다고 했다. 북한은 지금 ‘병기의 본’을 서두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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