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칼럼] 귀신 잡는 돈

이정선

bellykim@daum.net | 2018-04-25 17:27:12

당나라 때 장연상(張延賞)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장연상은 하남 부윤으로 근무하면서 엄청난 비리를 적발했다. 즉시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고관대작은 물론이고, 황제의 친인척이라고 해도 용서할 수 없다. 관련된 자를 모조리 잡아들여라.”

엄벌에 처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자 메모가 하나가 날아왔다. 3만 냥을 바칠 테니 눈감아달라는 메모였다.

장연상은 노발대발했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펄펄 뛰었다. 부하 관리들이 죄도 없으면서 오그릴 정도로 살벌했다.

그런 장연상에게 메모가 하나 더 날아왔다. 10만 냥을 바칠 테니 눈감아달라고 했다.

메모의 위력은 컸다. 사건이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잠잠해졌다. 기세가 등등했던 장연상은 침묵을 지켰다.

나중에 부하 관리가 물었다. 장연상의 대답은 이랬다.

“10만 냥이면 귀신과도 통한다고 했다. 그 돈을 받지 않으면 오히려 화가 되는 수도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용서받지 못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돌이키지 못할 일은 없는 법이다.”

3만 냥으로는 어림도 없었지만, 10만 냥이 되자 얘기가 달라졌던 것이다. ‘큰돈’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래서 ‘전가통신(錢可通神)’이라고 했다. 돈은 귀신이라도 부릴 수 있다는 얘기다.

돈은 많아야 좋다. 많아야 위력이 커진다. 어지간한 돈은 아무래도 힘이 떨어진다. ‘재벌’ 소리쯤 들을 만해야 돈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방랑시인 김삿갓은 돈의 위력을 이렇게 읊기도 했다.

“천하를 돌아다녀도 어디서나 환영받네(周遊天下皆歡迎)/ 나라와 집안을 번영하게 하니 세력이 가볍지 않구나(興國興家勢不輕)/ 갔다가 다시 오고, 왔다가는 또 가는 것(去復還來來復去)/ 산 사람 죽이기도 하고, 죽은 사람 살리기도 하는구나(生能死捨死能生).”

그 ‘막강한 돈’에 대한 설문 조사가 있었다. 법률소비자연맹이 25일 ‘법의 날’을 맞아 대학생 365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법의식’이다.

조사에 따르면, 이들 대학생 가운데 절반 넘는 51.4%가 “10억 원을 주면 1년 정도 교도소 생활을 하는데 동의한다”고 응답하고 있었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죄가 없고, 그게 없으면 죄를 뒤집어쓴다’는 의미의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유권무죄 무권유죄’에는 무려 85.6%가 동의하고 있었다. ‘법보다 권력이나 돈의 위력이 더 세다’는 설문에도 78.5%가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전가통신’이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제대로 먹혀드는 사자성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만, 옛날 선비들은 돈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다. 글 좀 읽은 선비들은 돈을 돈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놈의 물건(阿堵物)”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수무집전 불문미가(手無執錢 不問米價)’하기도 했다. 대쪽 같은 선비들은 돈을 손으로 만지지도 않고, 누구와 쌀값을 따지지도 않았다. ‘돈이라는 물건’과는 담을 쌓고 학문에 몰두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최고학부에서 학문을 익히는 대학생들은 절반 넘게 “감옥에 가도 좋으니까 돈”이다. ‘10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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