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와 면세

이정선

bellykim@daum.net | 2018-04-24 06:28:19

조선 명종 임금 때 김덕곤(金德鵾)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실록에 “품성이 강직하여 꺾일 줄 몰랐다”고 적었을 정도로 대쪽 같은 관리였다. 그 때문인지 높은 자리에 오르지는 못한 관리였다.

그 김덕곤이 평안도 평사(評事) 때였다. 압록강 수색을 나갔다가 명나라에 다녀오는 사신 일행과 마주쳐서 조사했더니, 통역인 역관(譯官)의 짐에서 ‘반입금지’ 물품이 쏟아져 나왔다.

역관은 그런데도 겁내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궁중에서 쓸 물건이라며 ‘무사통과’시켜주지 않으면 김덕곤이 다칠 수도 있다고 되레 큰소리였다.

그러나 김덕곤에게는 통할 리 없었다. “무사통과 시켜줄 바에는 아예 짐 검사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면서 모조리 압수해서 태워버렸다. 역관은 잡아 가뒀다. 궁중에서는 약이 바짝 올랐지만 규정대로 처리한 것이라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 임금에게 건의가 올라갔다. 김덕곤을 요직인 이조정랑 자리에 앉히자는 건의였다. 김덕곤의 강직함을 좋게 평가한 홍인경(洪仁慶·1525∼1568)이 추천한 것이다.

‘결재서류’에 방점을 찍으려던 임금이 발끈했다.
“이 ‘미친 병(病)’ 걸린 자를 누가 추천했는가?”

김덕곤은 졸지에 ‘미친×’이 되어야 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미친×은 김덕곤이 아니라 임금과 궁중의 사치를 막지 못한 임금 주변 사람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대통령 일가’가 고급 가구 등 사치품을 구입하면서 특별소비세를 내지 않았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해외에서 고급품을 들여올 경우에는 관세를 물리지 않았다고도 했다. 90년대 초반, 세제 개혁 작업 중에 밝혀지고 있었다.

세금을 빼먹은 대통령 일가는 ‘과거 정권’이었다. 어쩌면 세무 당국이 알고도 모르는 척 묵인했을 것이다. 또는 그게 ‘관행’일수도 있을 만했다.

군사 정권의 ‘끗발’은 마치 법 위에 군림하고 있었던 듯했다. 특소세나 관세 따위는 아랫것들이나 내는 세금이었다. 대통령 일가에게 자질구레한 세금은 ‘당연히 면제(?)’였다.

이 막강한 ‘끗발’을 대한항공의 ‘총수 일가’가 물려받은 듯싶어지고 있다. 해외에서 쇼핑한 물품을 대한항공 지점을 통해 ‘무관세’로 들여왔다는 것이다. 관세를 내지 않았다면, ‘밀반입’이고 ‘탈세’였다.

보도에 따르면, 해외에서 쇼핑한 가구·인테리어용품·아동복·속옷·소시지에 이르는 많은 물품을 주로 감시가 소홀한 새벽시간의 항공편을 이용해서 들여왔다는 직원들 얘기였다.

그런 ‘밀반입’이 얼마나 잦았으면 ‘전담팀’까지 운영할 정도였다고 한다. 총수 일가의 수하물을 별도로 관리하는 직원들을 내부에서 ‘지원업무전담’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인천공항에 들어오는 특정 비행기는 총수 일가의 거대한 ‘직구용 수송선’이나 다름없다”는 증언도 있었다.

세관 당국이 ‘명품 밀반입’ 조사에 착수하고, 압수수색에도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다. 세관 당국의 조사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대한항공 총수 일가는 과거의 대통령 일가와 ‘닮은꼴’이 될 것이다. 끗발이 닮은꼴이고, 세금 빠뜨린 게 또 닮은꼴이 아닐 수 없다.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