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칼럼] 진화된 갑질… ‘번호 인간’
이정선
bellykim@daum.net | 2018-04-23 08:33:32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간 조선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짐승’이었다.
조선 사람들은 ‘전리품’으로 분배되었다. 가축처럼 매매되었다. 그 가격이 ‘은(銀) 18냥, 또는 우(牛) 1두’였다. 소 한 마리 값이 거래된 것이다.
사람이 아니었으니 친구에게 선물로 줘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때려죽여도 그만이었다. 범죄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청나라는 나중에 ‘몸값’을 받고 조선 사람들을 풀어줬다. 몸값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노예생활을 해야 했다. 그 자녀들까지 노예로 살아야 했다.
노예에게는 이름도 필요 없었다. ‘노예 명부(名簿)’에 “박 일(朴一), 박 이(朴二), 박 삼(朴三)…” 하는 식으로 올렸다. ‘한×, 두×, 세×’ 등으로 헤아린 것이다. 조선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숫자만 필요했을 뿐이다.
일제 때 강제 징용에 끌려간 조선 사람들 역시 사람이 아니었다. ‘군수품’이거나, 또는 ‘소모품’이었다.
그랬으니 사람 취급을 해줄 리가 없었다. ‘먹이(?)’부터가 비참했다. ‘일반적인 급식’이라는 게 쌀알이 드문드문 박힌 콩밥이었다. 주먹만 하게 뭉친 콩밥이었다. 또는 무와 홍당무가 섞인 밥이었다. ‘말먹이’와 닮은꼴이었다.
그런 ‘먹이’로 하루 12∼14시간의 강제노동을 견딜 재간은 없었다. 영양실조에 걸리고 질병으로 쓰러져야 했다. 그러면 꾀병을 앓는다며 매질을 해댔다.
그래도 ‘군수품’이었으니, ‘보관’만큼은 중요했다. ‘분실’하지 않으려고 합숙소를 산간이나 해안, 절벽 같은 곳에 만들었다. 창에는 창살을 설치하고 출입문은 밖으로 잠갔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방울까지 달고, 개를 풀어서 지켰다. 하루에 점호를 3번씩이나 받도록 했다. ‘도망 방지용’이었다.
사람이 아닌 군수품에게 ‘이름 석 자’를 제대로 불러줄 이유 따위는 없었다. 일제는 자기들의 지명(地名)을 적당히 따서 조선 사람들의 성(姓)으로 삼았다. 여기에 ‘일랑(一郞)’에서 ‘십랑(十郞)’ 등의 이름을 멋대로 달았다.
예를 들어, ‘후쿠오카(福岡)’라는 곳으로 끌려간 조선 사람들의 이름은 난데없이 ‘후쿠오카 이치로(福岡一郞), 후쿠오카 주로(福岡十郞)’가 되고 있었다. ‘후쿠오카 한×, 후쿠오카 두×, 후쿠오카 세×… 후쿠오카 열×’ 등의 일련번호였다. 조선 사람들은 이름마저 빼앗기고 있었다.
그런데,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번호’ 붙은 사람이 생기고 있었다. “1번 환자, 2번 환자… 10번 환자”였다. 다름 아닌, 몇 해 전의 ‘메르스 환자’에게 붙인 번호다. 퇴원한 환자도 ‘○번 환자 퇴원’이라고 했었다. 환자의 인적사항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번호 인간’은 더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재환 CJ파워캐스트 대표가 직원들에게 ‘번호’를 붙이고 있었다. 호출하면 즉시 달려오라고 ‘번호’를 매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번호’가 뜨면 이 대표의 방에 쫓아 들어가서 시키는 일을 모두 해줘야 된다고 했다. ‘전직’ 수행비서의 얘기다.
어떤 수행비서는 하루 일과를 ‘바가지 비우고 씻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화장실 가기 힘들어서 바가지를 요강처럼 사용했고, 그것을 비워줘야 했다는 것이다.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다”는 주장이었다. 대단한 ‘신종 갑질’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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