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마르는 가계, 더 방치하지 말아야

정해용

peacepress@hanmail.net | 2010-03-15 11:34:54

시중의 돈은 금융권으로 모여들고 있다. 3월에 발표된 한은 통계를 보면 지난해 국내 기업들의 예금은행 저축성예금은 약 219조8천억원에 이른다. 전년대비 증가율은 21%나 돼 사상 최고수준이라 한다(본보 3월6일자 참조). 기업에서 벌어들인 돈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저축통장에 머무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기업의 수익은 임금이나 투자, 재투자, 확장 등을 통해 순환과 사회 환원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런 순환이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일 기업들이 돈을 버는 만큼 그것을 제때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면 시중에는 돈이 마르지 않고 원활한 순환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기업 자금이 이렇게 금고에만 쌓이게 되면 시중에 돈이 마르게 되는 것은 정한 이치다. 기업들의 저축 가운데 1년 이상 은행에 재워놓은 돈만도 149조원이다. 그 증가율 또한 22.9%나 된다.


이쯤되면 돈의 정체현상에 따른 반작용이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개인 경제의 부진이다. 개인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어두워지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같은 통계에서는 일반 가계의 호당 부채가 증가하고 있음도 함께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전국 가구의 평균 연소득은 4천131만원. 전년 대비 1.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에 병행하여 호당 부채는 4천337만원으로 가구마다 20만6천원 정도의 적자가 났다. 가계란 바로 직접 개인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경제단위다. 안 먹고 안 입을 수 없으니 빚을 내서라도 필요비용을 충당해야 한다. 가계부채는 그래서 늘어났다. 가계부채의 증가율은 전년대비 5.1%. 수입의 증가율보다 빚의 증가율이 4배로 높았던 거다.


기업은 돈을 벌어 은행에 쌓아놓고 일반 가계는 돈이 없어 빚을 내야하고, 인체에 비하면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현상에 비할만하다. 비만에 해당할까. 반드시 영양과잉일 때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몸이 마르고도 기력이 떨어지면 순환장애는 일어날 수 있다. 인체운동이 특정 부위에 편중되어 일어나는 현상일 수도 있다. 몸을 움직이지 않는 채 하루 종일 책상머리에 앉아 머리만 사용한다든지, 머리는 전혀 쓰지 않고 종일 다리만 움직이는 경우처럼 말이다. ‘과영양성’ 장애인지 ‘영양결핍성’ 장애인지는 전문가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인체가 건강해지기 이해서는 어떻게든 순환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원인을 잘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국가의 정책이 어느 한쪽에 편중되어 민생을 골고루 돌보지 않을 때도 혈액은 비정상적으로 한 곳에 몰릴 수가 있을 것이다. 기업들이 돈을 쓰지 못하고 가계는 빚더미가 늘어나고 있다면 십중팔구 ‘편중된 운동효과’에 원인이 있기 쉽다.


좀 쉬운 얘기로 돌아가 보자.


정부기관을 이용하는 민원업무가 모두 전산화되고 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연말 세금정산을 하는데도 인터넷을 이용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세무서로 찾아가 직접 신고하는 것보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일이 훨씬 편리하도록 되어 있다. 은행을 이용하는 데도 은행원보다는 기계를 이용하는 경우가 비용부터 적게 든다. 모든 민원 파트가 기계화될수록 해당 직원의 숫자는 줄어들게 된다. 봉급을 받아 가계를 꾸려가야 하는 사람들의 고용이 줄어들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많은 가계들이 수입원을 잃게 되는 것이다. 반면 행정기관이나 은행 등에서는 인터넷 시스템과 자동화기계 개발과 도입에 인건비 이상의 비용을 쓰게 되는데, 그 비용으로 수입을 올리는 것은 역시 대기업이다. 이렇게 대기업 위주의 자동화 기계화에 투자가 몰리게 되면 자연발생적인 고용수요는 줄어들고 큰돈은 자동화 설비를 주도하는 대기업으로 흘러들게 된다. 대기업들은 돈이 남아돌아 금고에 쌓아올리고 개인 가계는 돈이 없어 빚만 늘어가는 현상의 이면에는 이 같은 사회가 지향하는 맹목적 기계화, 자동화의 지향이 구조적 원인으로 깔려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4대강 개발을 추진하면서 이것이 장차 고용을 늘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강바닥을 파헤치고 이것을 실어 나르는 데 그만큼 많은 인력이 소요되는 것은 아니다. 기계가 파헤치고 기계들이 실어 나른다. 돈이 필요한 개인들이 들어가 돈을 벌수 있는 기회는 거의 늘어나지 않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강바닥을 파헤치는 정부 공사 또한 대기업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벌이든 기업이든, 이들도 국민의 일부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소수의 배만 불러가지고는 건강한 나라가 되기 힘들다. 돈이 말라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 사이에서 원성이 터져나오기 전에 정부는 서민 가계에도 골고루 돈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정책의 배려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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