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전과자’

이정선

bellykim@daum.net | 2018-05-10 18:50:46

[토요경제=이정선 기자] 담배 4갑, 고작 1만8000원어치를 훔친 고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얼마 전 있었다. 이 고등학생은 친구와 함께 담배를 훔쳤다가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혐의는 ‘특수절도’였다.

담배를 사려고 ‘위조지폐’를 만든 30대도 있었다. 이 30대는 담배 10갑, 4만5000원어치를 사면서 진짜 돈 1만 원짜리 1장과 5000원짜리 위조지폐 7장을 사용한 혐의라고 했다. “직장을 잃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뒤 생활비가 궁해져서 그랬다”고 진술하고 있었다. 혐의는 ‘통화위조, 사기 등’이었다.

10대 2명이 부산의 편의점에서 6차례에 걸쳐 담배 172갑을 훔쳤다가 붙들린 사건도 있었다. 80만 원 상당이었다. 2명이 ‘작당’해서 도둑질을 했으니 이들의 혐의 역시 ‘특수절도’였다.

실제로, 하루 1만 원의 용돈을 쓰는 서민이 담배 한 갑을 사서 피운다고 하면, 용돈의 자그마치 45%를 지출하는 게 된다. 하루 10만 원의 용돈을 지출하는 ‘가진 자’에게는 ‘그까짓 돈’에 불과하겠지만, 빠듯한 서민들에게는 벅찬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인지, 박근혜 정부가 가격을 ‘왕창’ 올리기 전에도 서민들에게는 담뱃값이 부담스럽다는 조사가 있었다. 어떤 대학교수가 흡연자 1034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71%가 ‘지금도 담뱃값이 비싸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그 비싼 담뱃값을 박근혜 정부는 한 갑에 4500원으로 한꺼번에 80%나 올리고 있었다.

담뱃값이 대폭 올랐던 당시, 정치판의 ‘립 서비스’가 무성했다.

여당은 “담뱃값 인상에 따른 보완책으로 노년층을 위한 ‘저가 담배’를 고려해볼 것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야당은 “담뱃세 인상이 사실상 저소득층에 대한 추가 과세가 되고 있다”며 “직접 말아서 피우는 봉초 담배에 한해 세금을 일부 감면하면 저소득층도 저렴하게 담배를 살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국민은 아직도 ‘싸구려 담배’를 구경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번 대선 때에는 ‘담뱃값 원위치’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은 담뱃값을 2000원 인하, 다시 2500원으로 돌리는 ‘담뱃세 인하법안’을 만든다고 했다. 담뱃값을 이렇게 내리되 2년마다 물가상승분을 반영하도록 하겠다는 법안이다. 담뱃값 원위치는 홍준표 대표의 대선 공약이라고도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서면서 “박근혜 정부의 담뱃세 인상 흡연율을 낮추는 효과는 거의 없고 결국 ‘서민 증세’를 위한 꼼수였다”며 담뱃세 인상 철회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흡연자들은 지금도 ‘비싼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리고 돈 없는 서민들은 ‘전과자’가 되고 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더라면 물론 일어나지 않았을 범죄였다. 그렇지만 담배를 끊기 어려운 서민들에게는 담뱃값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 범죄라고 할 수도 있었다.

만약에 담뱃값이 인상되지 않았더라면, 담배 도둑질도 없었을 것이다. 또는, 있었더라도 담뱃값 인상폭인 80%만큼 많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듯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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