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성폭력과 권력 맛
여용준
dd0930@sateconomy.co.kr | 2018-04-02 11:25:29
[토요경제=여용준 기자] 성폭력에 대한 원인으로 흔히 ‘성욕’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성추행 사건에 대한 경찰의 조서를 보면 가끔 ‘욕정을 참지 못하고’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 말이 대단히 단순한 말인건 누구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성범죄의 알고리즘은 단순히 ‘성욕’만이 전부가 아니다. 거기에는 ‘성욕’보다 끈적하고 달콤한 ‘권력욕’이 작용하고 있다.
최근 일련의 ‘미투(Me too)운동’을 살펴보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성별’에 따른 분류 외에 한 가지 분류가 더 존재한다. 바로 권력 관계에 따른 분류다.
주로 선배이거나 단장, 감독 등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그 지위를 이용해 후배, 단원, 단역배우 등을 추행한다. 이 관계에서 가해자들이 얻는 것은 단순히 성욕을 채우는 일이 아닌 권력의 과시에 있다.
권력을 과시한다는 것은 지위가 낮은 자의 행동을 통제하고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식민통치나 독재 치하에서 저질러진 모든 만행의 원인이기도 하다. 암흑의 시대에서나 저질러졌던 만행이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현대자동차 여성 임원이 접대 술자리에 여직원들을 동원한 것도 이와 같은 의미다.
보도에 따르면 현대차의 여성 고위 임원이 접대 성격의 술자리에 대리급 여성 직원의 참여를 강요했다. 이 임원은 여성 직원에게 술을 따르게 하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은 물론 남성 임원과 춤도 추도록 강요했다.
이는 임원이 사원을 자유 의지를 가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부속품이나 기기 정도로 취급한 사건이다. 자신의 임의에 의해 조종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사원을 취급한 셈이다.
대단히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다. 유교적 사상을 잘못 이해해 그것이 권력에 대한 권리인양 오해하는 가부장적 세대의 전형적인 패착이다.
권력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은 많은 식민지배나 독재정권의 몰락을 통해 증명돼 왔다. 관리자(권력가)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결코 그 위치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어른이라서, 직장상사라서 무조건 대접받고 존중받는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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