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칼럼]갈등을 푸는 리더십이 아쉽다.

권희용

nw2030@naver.com | 2015-01-23 14:38:09

▲ 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전 국정신문 편집장
우리나라만큼 이념갈등을 겪는 나라도 드물다. 길게 잡을 것도 없이 이념문제로 멀쩡한 나라마저 반쪽으로 만들어 제각기 앙앙불락하고 있는 상황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어언 70년을 살고 있으니 참 기가 막힌 일이다.

사회적 갈등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요즘 부각되는 종교적 갈등에서부터 정치적 갈등, 경제적 갈등, 계층 간의 갈등 등등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어쩌면 인간은 갈등 속에서 태어나고 갈등을 겪다가 땅속에 묻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갈등구조를 들여다보면 별것도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보잘것없는 이익을 놓고 티격태격하다가 생긴 갈등에서부터 나라와 민족을 놓고 벌이다가 아예 갈라서서 싸우는 갈등, 생각이 달라 틈이 생기기 시작한 갈등 따위가 많다.


자본주의는 갈등을 잉태하고 비롯된 경제구조라고 한다. 자유 시장주의에서 연유된 이 제도는 생존경쟁이라는 틀 속으로 인간을 몰아넣고부터 출발한다.


이른바 무한경쟁에서부터 인간 삶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니 갈등이 없을 까닭이 없다. 시작과 끝이 갈등이라는 질곡에서부터 비롯된다.


그것을 풀어내는 기능이 정치라고 정의한다. 온갖 사회적 갈등을 푸는 열쇠는 정치 외에는 아직 없다는 것이다. 리더십의 역량도 바로 정치라는 열쇠로 갈등을 풀어내는 능력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선진사회와 후진사회 모두 갈등위에 서있기는 같다. 다만 갈등을 풀어내는 방법과 질서가 다를 뿐이다.


경제정책을 두고 갈등이 심각하다. 최근에는 연말정산을 두고 그 연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고 따지고 있다.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회에 있다고 한다. 여당에 있다고도 하고, 야당도 묵인한 결과라고 각자 서있는 자리에서 아옹다옹하고 있다.


13월의 보너스라고 해서 월급생활자에는 몫 돈이 되었던 연말정산이 세금폭탄으로 닥아 오면서 시작된 논쟁이다. 따지고 보면 무리한 복지정책이 낳은 반갑지 않은 사생아와도 같다.


정부는 개정될 연말정산으로 생기는 돈은 고스란히 서민을 위해 쓰겠다는 생각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당장 돈이 줄어들자 불평불만이 비등해지면서 허겁지겁 해명에 나섰지만 국민의 따가운 눈총이 만만치 않다. 국민과 정부정책을 두고 벌어진 갈등인 셈이다


이미 계층 간의 갈등은 깊은 골짜기를 만들어 놓은 지 오래다. 이 골짜기를 메우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그것도 계층 간의 경제적 갈등은 끝 모를 정도로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최근 재벌 집 딸이 벌인 소위 '땅콩회항' 사건에서 보인 국민적 분노는 경제적 계층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는 단적이 예라고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갈등을 가장 앞장서 풀어야 하는 정치적 역량이 우리에겐 아주 부족하다는 것이다. 부족한 것이 넘어 오히려 정치가 갈등을 조장하고 부추기는 주체라는 것이다.


며칠 전 어느 대학에서 심포지엄이 있었다. '선진사회의 과정'이라는 주제로 사회갈등에 대한 해석과 그 푸는 힘에 대한 논의였다. 그런데 열쇠가 돼야할 우리 정치가 오히려 이념의 차를 키우고 되레 증폭을 시킨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이재열 교수는 이 자리에서 "우리사회가 잠재적 갈등소지에 비해 갈등해소역량이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하면서 "혈연 지연 학연 등 연고주의적 결집은 쉽지만 보편적 가치나 공공의 이해관계를 위한 모임참여는 매우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이에 앞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정치권의 이념격차가 일반국민사이의 격차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비롯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갈등을 풀기보다 키우는 국회부터 개혁해야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었다. 갈등을 푸는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아쉬운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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