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정말 억울허요"…키코피해 中企인들의 눈물②

토요경제

webmaster@sateconomy.com | 2010-03-09 14:36:31

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회관. 키코(KIKO) 피해를 입은 소규모 중소기업인 4명이 한목소리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다음은 피해 기업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정리한 사례 모음.

#사례1. "나는 서명도 안했는데…"

경상북도 칠곡에서 31년 동안 조그만 섬유공장을 경영해온 A씨. 2007년 3월초 회사가 자금사정으로 곤란하던 차에 전혀 거래도 없고 알지도 못하던 B은행 지점장과 차장이 "무담보로 10억 원까지 대출해 주겠다"는 제안을 하며 찾아왔다. A씨는 B은행에서 5억 원을 대출받았다.

그 후 B은행에서는 수시로 "외환파생상품인 키코라는 좋은 상품이 있다"며 상품 설명회 한 번 없이 회사 외환담당직원 등에게 거래제안서를 이메일로 제안해왔다. A씨는 '고마운' 은행의 제안이었기 때문에 거절은 못하고 검토해보겠다고만 하던 차였다.

B은행은 A씨가 자리를 비운 사이 실무자에게 "지금 계약하면 시기가 참 좋을 것 같다"며 즉시 계약할 것을 권유했고 거래제안서에 서명해 팩스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이 실무자는 "내일 사장님의 결재가 나지 않으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에 응했다.

다음날 아침 A씨는 이 사실을 보고받고 계약내용을 확인한 결과 부당한 계약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당장 취소할 것을 지시했다. 은행은 그러나 직원의 서명만 받은 채 A씨의 명의로 "그 상품을 이미 다른 은행에 매각해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 후에도 B은행의 지점장과 차장은 매일 A씨에게 "이미 다른 은행에 매도까지 됐고 절대로 피해가 없을 것"이라며 사후서명을 요구했고 "당신 죽고 나 죽는다"며 일주일을 버티며 거절해온 A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고마운' 은행의 요구를 들어줬다. 결국 A씨는 17억 원 상당의 손해를 봤다.

"은행이 계획적으로 기업인에게 무담보로 돈을 대출해주면서 호의를 산 후 이를 악용해 사기 행위나 다름없는 위법한 방법으로 키코를 판매한 겁니다. 계약명의자인 본인은 동의한 바도, 서명한 바도 없는데 상품계약을 위조해 다른 은행에 이미 매각했다는 것은 명백한 위법행위 아닙니까."

#사례2. "1년만 하겠다니까 3년 하라고 해서…"

"보험 상품처럼 팔았어요. 그래서 상해가 있을 때 작은 보험금으로 큰돈을 지급받아 해결하고 이익을 보는 것처럼, 마치 환율이 떨어져도 조금 보장을 받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신용등급 A의 우량 중소기업이었던 한 섬유 수출업체의 재무담당자 C씨. 이 회사에도 역시 거래가 전혀 없던 B은행이 접근해와 키코 가입을 권유했지만 '공순이' 생활만 25년 해온 C씨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그러나 은행이 제시한 환율 하락 전망치와 함께 "이에 대비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권유는 C씨를 솔깃하게 했고 C씨는 기존 거래은행과 이 은행에 실적을 반반씩 나눠 키코에 가입했다.

키코가 터지자 B은행은 수출 NEGO조차 해주지 않았고 다행히 거래은행의 도움을 받아 무역업무를 해결하기도 했다. 본안소송과 가처분신청을 취하했던 것도 "다른 기업들이 본안소송에서 이기면 이 회사도 같이 혜택을 볼 텐데 앞에 나서서 하지 말라"는 B은행의 '조언' 때문이었다고.

기업은 환헤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1년만 계약하자"고 했고 B은행은 "3년 계약을 해도 최대이익 150원이 넘으면 불과 3개월이면 자동 해지되는데 무엇을 걱정하냐"며 3년 가입을 강권했다. 결국 1년 계약이었다면 8억 원 손실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이 80억 원 이상으로 부풀었다.

은행의 전화녹취에도 기업은 속수무책이었다. 3년 계약 권유 내용은 기업 사무실이나 은행에서 이뤄져 증거자료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더군다나 마치 달러로 장사해서 돈을 벌기 위한 악덕기업으로 몰리는 것은 더욱 억울했다.

"유치원생이 박사를 상대로 싸우는 이 싸움에서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직원들의 각 가정까지 책임져야 하는 작은 중소기업을 흔들어놓고 모든 책임을 환차익이나 보려고 가입한 몰지각한 기업으로 몰아가는 은행측과 사회적인 분위기가 너무 억울할 뿐입니다."

#사례3. "환율상승 대책마련 하라니까 '물타기' 하라고?"

2008년 3월. 환율이 1000원을 돌파하며 1000원 초반까지 오르자 한 기술업체 사장 D씨는 자신에게 키코 상품을 판매한 은행 지점장을 만나 대책을 요구했다. 이 지점장에게서 나온 답변은 "이제 환율 1000원대는 구경도 못 할테니 빨리 '물타기'를 해서 평균단가를 높여라"는 말이었다.

키코 피해업체들에 대한 '악덕기업'이라는 세간의 시선에 대해서는 D씨도 억울하긴 마찬가지다. "투기요? 투기를 하려면 감수할 위험과 기대이익이 어느 정도 맞아야 하죠. 기대값은 고작 몇 천만 원대로 한정돼 있고 손실은 무한대인데 누가 그런 상품에 투기를 합니까?"

"은행에서 펀드 가입해 보셨으면 알 겁니다. 상품 장점들을 열심히 설명해주고 난 뒤에 계약서에 설명을 잘 들었다는 체크를 하라고 하죠. 가입자들은 이해도 잘 안 되고 잘 모르니까 별 생각없이 체크하고.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재무전문가도 아닌 우리가 뭘 자세히 알고 했겠습니까."

D씨는 2년 동안 해지가 불가능하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다. 뒤늦게 해지를 하려고 보니 10~20억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은행과 법원에서 그리도 강조하는 '약속준수의 원칙'이 정말 뼈저리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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