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세상읽기] 한국서 빛바랜 언어 ‘녹색’
정해용
peacepress@hanmail.net | 2011-09-29 16:55:13
그러나 세계적 유행에 따라 ‘녹색’이란 수식어를 즐기는 사람들이 과연 그 말에 담긴 함의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왜냐하면, 말로는 녹색을 외치되 정작 그 내용은 제대로 녹색의 사상을 담고 있지 않은 정책들이 너무나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 정부 들어 녹색이라는 수식어는 차고 넘치지만, 정부가 스스로 추진하거나 민간에 허가하는 각종 개발사업 등은 녹색이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거꾸로 되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녹색이란 말에 담긴 최대의 의미는 바로 생태주의라 이해해야 할 것이다. 18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도시화, 산업화, 공업화의 물결은 지난 2백 년 동안 전 세계가 추구하는 ‘현대성’의 정체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는 매머드(거대화)의 우상이 버티고 있고, 효율성과 기술주의, 개발주의라는 프레임이 견고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자유시장주의라는 탈을 쓴 자본주의 원리가 자유 평등 개방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의 필연적 산물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으나, 사실 그 것은 인간에게 냉혹하다. 많은 현대인들이 ‘따뜻한 자본주의’보다는 ‘냉혹한 자본주의’라는 말에 더 빨리 공감하게 되는 것도 우연한 결과는 아니다. 철저한 자본주의 원칙, 시장경쟁 원리가 지켜지는 사회일수록 인간의 소외는 더 심각하다. 이런 사회의 주인은 이미 인간이 아닌 돈이다. 물신주의 사회가 되고 만 까닭이다.
이처럼 인간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러한 ‘현대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인간의 반성을 촉구면서 일어난 것이 바로 생태주의다. 이 운동의 핵심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독재적 파괴와 지배, 개발이 중단되거나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많은 서구 선진국들이 20세기말에 정점을 이루었던 기계화, 공업화, 도시화, 거대화의 질주를 멈추고 뒤돌아서기 시작했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문명이나 과학기술이 인간 스스로를 좀 더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인간을 옥죄며 노예로 만든다는 반성을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더라도, 자연 파괴로 인한 기상변화와 자연재해의 위협이 당장 현실적 위협으로 닥쳐온 바에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전략 수정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게 된 탓이 더 크다.
우리나라 정부도 ‘녹색성장’이라는 구호를 즐겨 내건다는 것은 요컨대 생태주의의 이념을 이해하고 따르겠노라는 공감의 표현이자 선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래 한국 정부의 정책이나 태도에서 비로소 생태주의의 권고가 제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것이 안타까움이다. 4대강 개발을 비롯한 대규모 토목공사는 생태에 순응하거나 적응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정비’가 아니라 인간의 손으로 자연을 만들거나 길들이겠다는 독선적 사고가 출발점이다. 거대화로부터 뒤돌아서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거대한 것을 짓도록 민간의 계획을 허가한 것도 역시 생태주의에 대한 역행이다. 잠실에 123층의 롯데 슈퍼타워의 착공 후 용산 국제업무지구에도 100층 건물의 건설이 예정돼 있다.
지난 70년대 유럽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외친 데에는 현대가 지향해온 거대화가 인류에게 끼치는 고통과 위협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맹목적인 거대화는 현대판 바벨탑 쌓기에 다름 아니다. 최근 선진 세계의 트렌드가 되고 있는 생태주의에서 거대화에 대한 반성이 도시화 기계화에 대한 반성과 함께 주요 목표로 제기되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70년대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독재는 했을망정 민족의 미래와 관련 있는 국토를 보호하는 데에는 조금치도 양보가 없었다. 공업화를 추진하면서도 민둥산 없는 푸른 국토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먹고 사는 일이 아무리 다급했어도 국립공원 제도와 도시 주변 그린벨트 정책 등을 강력하게 지켜냈다. 그것만으로도 공이 크다. 정부나 정치인에게 있어, 생태를 보호하며 근원적으로는 고소비를 전제로 한 사회 시스템을 바꿔가려는 노력이야말로 ‘녹색’이라는 수식어를 즐겨 사용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고 긴박한 과제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해용 상임 논설위원(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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