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세상읽기] 개혁은 시대정신 “버려야 산다”

정해용

peacepress@hanmail.net | 2011-09-23 13:45:50

솔로몬의 재판이 화두다. 지난 21일 국회 본회의,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 표결을 앞둔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의사진행발언. 손 대표는 ‘의회민주주의를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을 전제하면서 “솔로몬 왕 앞에 자기 친자식을 내줘서 친자식을 살리려고 했던 어머니의 마음이 되고자 한다”며 이 표결에서 민주당의 기존 입장을 크게 양보할 뜻을 내비쳤다. 본래 야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승인과 동시 처리를 요구해온 민주당은 대법원장 임명안 단독 처리를 거부했었다. 야당 불참 속 단독 표결도 불사할 결심으로 일전을 대비하고 있던 한나라당의 예상은 빗나갔다. 손 대표의 발언 후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은 아무런 충돌 없이 표결에 부쳐져 압도적 동의로 가결되었다. 근래 국회에서 보기 힘든 대승적 양보의 결과였다.

손학규 대표가 말한 ‘솔로몬의 재판’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다. 잠결에 제 아기를 눌러 죽인 어떤 여자가 다른 여자의 아기를 자기 아기라고 우겨 싸움이 시작되고 결국 고대에 가장 현명한 왕으로 불리던 솔로몬 왕 앞에 서게 되었다. 왕은 잠시 고민하다가 해결책을 제시한다. “다른 방도가 없으니 아기를 칼로 나눠 한쪽씩 갖게 하라.” 한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는데 다른 여자는 울부짖는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기를 저 여자에게 주십시오. 아기를 죽이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왕은 아기를 양보하는 여자가 진짜 엄마라고 판결한다.


손 대표가 생명이라도 건지도록 하고자 하는 ‘아기’는 무엇일까. 그의 의사진행 발언을 문맥 그대로 이해하자면 그가 염려하는 아기는 ‘의회민주주의’요 ‘정당정치’다.


정당정치가 죽어간다고? 죽어가고 있는지는 몰라도 위기에 처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 엄연한 실상은 최근 서울시장 보선을 앞두고 확연히 드러났다. 여당도 야당도 아닌, 심지어 정치인이 아니고 정치에 직접 관여한 적도 없는 사람들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나서면서 시민여론이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오세훈 전 시장이 무리한 주민투표 추진에 실패한 뒤 스스로 사퇴한 직후 IT전문가 안철수 씨의 출마설이 고개를 들었다. 의사이자 IT전문가며 사업가이자 교수이기도 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출마 검토를 시인하자 환영여론이 뜨거웠다. 여당 야당 언론기관들마다 이 소동의 내실을 파악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는 한결같이 안철수 교수가 출마하면 압도적으로 당선되리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될 수 있으며, 어느 정당이든 가입하면 당선은 되더라도 지지율은 오히려 내려갈 것으로 분석되었다. 여야 어느 쪽이든 기존 정당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안 교수가 며칠 고민 끝에 불출마 결심을 밝히면서 소동은 일단락되었지만, 그가 정가에 미친 충격은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안 교수가 출마하지 않는 대신 또 다른 정당 무소속의 시민운동가 박원순 변호사가 여전히 여론 조사에서 당선 유력권에 포함돼 있다.


이런 여론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여러 가지 각도에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상식적인 해석의 하나는 지금 민심이 ‘정당정치’ ‘의회민주주의’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고 기대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를 직업으로 해온 정당인들이 위기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손학규 대표가 그 날 “국민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외면 받는 정당정치를 살려내자”고 호소한 것도 이런 위기감의 표출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정치는 누가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치 않다. 안철수나 박원순이나, 범보수 대표를 자처한 이석연 변호사 등 정당 소속이 없는 개인들의 참여는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이 나라 정치 전반을 책임질 수 있는 새로운 형태로 자리잡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적어도 이제까지는 조직 없는 정치가 한 나라를 책임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혁신된 정당’들에 의한 정치는 가능하지 않을까. 당장 어떤 답을 우리가 취하기는 어렵겠지만 지금까지 정파의 이익에 급급한 종래의 정당들은 이제 뚜렷한 한계에 부닥쳤다는 것을 자인해야 할 것이다.


가만히 보면 정치만 그런 게 아니다. 종교 사회 문화 예술 의료 과학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지금까지 전문가들이 누려온 기득권적 이익과 영향력은 심각하게 도전을 받고 있다. 현대 한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은 이제 ‘교파의 이익을 위한 종교’ ‘재단의 이익을 위한 대학’ ‘예술가의 이익을 위한 예술’ ‘기업의 이윤을 위한 경제’ ‘의료인의 이익을 위한 병원’ ‘과학자들끼리만 알아듣는 과학’ 등등에 날카로운 비판과 도전을 던지고 있다. 전문인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디서나 개혁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그것은 전문인들 스스로의 기득권을 집어던지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의 결단은 그들 스스로의 몫이다.


정해용 상임논설위원(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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