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 거꾸로 세워놓으면 집 팔린다고?”
부동산 침체 시대, ‘미신’ 천태만상
유상석
listen_well@sateconomy.co.kr | 2013-01-11 13:29:38
[토요경제=유상석 기자] 갑작스런 지방 발령을 받은 나진명(50) 씨는 살던 부동산 중개업소 두 곳에 급매물로 내놨지만 좀처럼 팔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 발만 구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직장 동료가 전하는 ‘미신’을 듣고 반신반의하며 실행에 옮겼다.
빈 소주병을 주방에 거꾸로 세워두면 잘 팔린다는 것. 나 씨는 “3개월 동안 부동산에서 연락 한 번 없던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최근 일주일 내 세 번이나 집을 보겠다는 문의가 왔다”며 “정말 집이 안 팔릴 경우 따라 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고 신기해했다.
◇ 소주병에 가위… 집 팔기 위한 미신 백태
부동산 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워낙 집이 안팔리는 탓일까. 집을 잘 팔기 위한 ‘믿거나 말거나’ 식 미신이 일부에서 널리 퍼져 있다.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장사가 잘되는 음식점의 가위를 대문에 걸어두는 방식. 이 외에도 빗자루를 세워두거나 우표를 문에 붙이기, 집안으로 들어오는 현관 바닥이나 장판 아래에 동전을 숨겨두는 방법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주방에 빈 소주병을 거꾸로 세워두는 방식은 ‘집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술기운에 얼떨결에 사게 하기 위해서’라는 웃지 못할 풀이도 전해진다.
◇ ‘8’ㆍ‘7’과 ‘316’에 집착… 美 ‘숫자미신’
집을 빨리 팔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이런 ‘미신요법’은 오랜 부동산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미국에서도 성행하는 모양새다. 미국에선 특정 숫자에 가격을 맞추는 ‘숫자미신’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부동산 에이전트로 일하는 J 씨는 현재 18채의 주택 매물 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그 중 절반 이상이 집 가격에 ‘8’이 들어가 있다. 반면에 ‘4’가 포함돼 있는 집은 단 1채 뿐이다.
J 씨는 “많은 소비자들 중 특히 중국인 등 아시아계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숫자가 포함된 주택 가격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부동산 포털사이트 ‘트룰리아’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로또처럼 부동산 업계에서도 미신이 깃든 ‘숫자 게임’이 한창이라고 소개했다. 주택 가격이나 주소에 포함된 숫자가 매매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트롤리아가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미국 전역에 나온 주택의 매물 가격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아시아계가 인구의 절반 이상인 도시에선 가격에 ‘8’자가 들어간 가격이 20%에 달했다.
특히 중국인이 다수인 도시의 경우 100만 달러(약 10억7400만 원) 이상의 주택 가격에 ‘8’이 포함된 경우는 37%에 달했다. 중국어로 숫자 ‘8’은 부유함을 뜻하는 ‘부(富)’와 발음이 비슷하고, ‘4(사)’의 경우 죽음을 의미하는 ‘사(死)’와 발음이 같은 탓이다. 중국인들의 숫자 ‘8’과 ‘4’에 대한 민감성은 도가 지나칠 정도다.
일부 바이어들은 만약 집 주소 끝 숫자가 ‘8’인 경우 집값을 2~3% 정도 더 주더라도 매입하는 일이 다반사이며 주소가 ‘4’로 끝나는 경우엔 오히려 집값을 2% 정도 깎아주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비단 아시아계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네바다 주에서는 숫자 ‘7’이 세 개 들어간 주택 가격이 미국의 다른 지역보다 세 배나 많았다. 그래서 네바다 주 브로커들은 집 매물 가격을 예를 들면 $319,999로 하기 보단 $317,777로 내놓기 일쑤다.
미국에서 ‘성서 벨트’라 불리우는 서부지역에선 매물가에 ‘316’이 포함된 경우가 다른 지역보다 27% 높았다. 주민의 대다수가 기독교 신자인 만큼 숫자 ‘316’이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가 주택의 경우에는 ‘5’가 포함된 매물이 많았다.
100만 달러 이상의 주택에 ‘5’가 들어간 경우는 55%로 100만 달러 이하의 26%보다 두 배 이상 많았으며 숫자 5의 경우 1~9까지의 숫자 중 중간 값인 만큼 가격 결정에 머뭇거리는 매도자가 가장 많이 선택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래서 매물을 ‘$500,000’에 내놓기 보단 ‘$505,550’가 더 낫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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