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기 위해 이유를 만든다”

MB, 철도 민영화 돌입?

전성운

zeztto@sateconomy.co.kr | 2013-01-11 12:01:45

▲ 정부가 철도 관제 업무 환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철도 민영화’ 행보에 나서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철도교통 관제 업무를 코레일에서 철도시설관리공단으로 넘기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철도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는 것이 정부 설명이지만 민간 사업자에게 철도시장을 개방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철도 운행의 ‘뇌’에 해당하는 관제권 분리 시 심각한 안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는 설명이다.


국토해양부 등에 따르면 철도교통 관제업무의 이양 방안 등을 담은 철도산업발전기본법 하위법령 개정안이 9일 입법예고됐다. 철도 관제업무란 열차의 배정 등 운행과 관련한 각종 지시·통제를 포괄하는 기능이다.

정부 관계자는 “대선이 끝나자 작년 12월 31일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이 '철도산업발전기본법 하위 법령 제정' 방안에 사인을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 방안에 ‘시행령 개정 사안’으로 “철도 관제권을 한국철도공사(코레일)로부터 환수해 한국철도시설공단에 위탁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 민영화 수순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정부는 철도교통의 안전을 향상시키기 위해 법령을 개정하려는 것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열차 수송 사업자인 코레일이 관제업무를 함께 맡다보니 안전보다는 비용 절감과 수익성 향상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어 이를 개선코자 한다는 설명이다.

국토부 구본환 철도정책관은 “현재 철도 운영 주체인 철도공사(코레일)가 관제권까지 행사하는 바람에 수익성과 수송능력을 올리는 데 치중해 안전사고 감독·관리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2011년 2월 광명역 KTX 탈선 사고, 지난해 4월 의왕역 화물열차 탈선 사고 등을 계기로 같은 달(지난해 4월) 국무총리실 주재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철도 관제권 분리 방안을 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선진국가에서 철도 운영자가 아닌 시설 관리자가 관제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도 근거로 들고 있다.

구 정책관은 “항공기와 선박 운항에서도 운송과 관제 기능이 완전히 분리돼 있는데 철도만 함께 행사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대형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관제업무 분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 민영화 수순 밟는 중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과 전문가들은 이를 민영화를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고 보고 있다. 지난 2005년 이후 코레일이 전담해 온 관제업무를 공단으로 이관하면 향후 민간 사업자의 철도 운영사업 참여가 쉬워질 것이라는 점에서 현 정부가 추진하는 KTX 민간 경쟁체제 도입의 발판을 마련하는 중이라는 해석이다.

앞서 작년 12월 13일자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국토부는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이길 경우 KTX 민영화를 위한 민간사업자 공모에 곧바로 착수하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코레일 외의 제2철도공사를 설립할 계획이었다. 그러자 이 보도가 나온 다음날 박근혜 당시 후보 측 인사들은 “이런 식의 민영화는 안 된다”고 즉각 반응했다.

그럼에도 국토해양부가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철도 민영화의 ‘첫 단추’로 불리는 철도 관제권 환수를 밀어붙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수일내로 시행령 개정 관련 공문이 내려가고,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월 이전에 국무회의를 열고 관제권 환수 방안을 의결한 후 3월부터 관제권 환수 절차에 돌입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책 결정과 관련된 새 정부 후임자들이 국토부 등에 들어오기 전, 전임자들이 관제권 환수 시행령 개정을 밀어붙여 새 정부가 들어와도 되돌리기 어렵게 만들려는 것 같다는 관측이 국토부 내에 파다하다.

철도 관제권 환수에 앞서 선로 배분권은 1월 1일자로 철도공사에서 시설공단으로 이미 넘어갔다. 민간 회사가 철도 운송 사업에 진입하는 것을 용이하게 해주는 조치다. 그에 더해, 배차 등을 결정할 수 있는 철도 관제권까지 시설공단에 넘어간다면 국토해양부는 명실상부 민간 철도 사업자의 진입 환경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철도 관계자들은 철도 민영화를 크게 4단계로 구분한다. 우선 이미 시행된 철도 선로 배분권 환수를 시작으로 철도 관제권 환수, 정부가 철도공사에 출자해 건설된 철도 역사, 차량 기지 등 철도 운영 재산을 국토부가 다시 가져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업자 선정이다.

이미 지난해 대우건설, 동부그룹 등이 ‘민영 KTX’ 사업자 입찰에 참여하려 했다. 대우건설은 당시 여론이 악화되자 사업 참여를 포기했다. 나머지 6~7개 건설업체들도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게 철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관제권 환수가 이뤄지면 민간 기업의 ‘KTX 사업자’ 입찰 참여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가 있다. 철도 관제권 환수, 민간 사업자 공모 등은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별도 입법 절차 없이 가능하지만, 현행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은 철도의 유지 보수를 철도공사가 맡도록 하고 있다.

만약 법 개정 없이 철도 민영화가 이뤄지면, 민간 사업자가 철도 유지 보수를 철도공사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즉 유지 보수권을 환수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을 개정할 수밖에 없다. 국회가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 관제기능 이원화, 오히려 더 ‘위험’
문제는 더 있다. 전문가들은 철도 관제와 운영 주체가 나뉘면 오히려 사고 위험이 커진다는 설명이다. 철도업계의 한 관계자는 “차량이나 선로에 이상이 생길 시 중앙과 현장 간 정보 교환이 가장 중요하다”며 “관제실에서 긴밀하게 정보를 교환하고 통신해야 하는데 이를 공단으로 이양하면 중앙과 현장의 관제 기능이 이원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열차의 관제, 신호체계, 통신 등의 기능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에 관제 업무를 떼어내는 것이 반드시 안전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정부가 관제권 분리의 선진 사례로 제기한 영국 철도에서 민영사업자들의 난립으로 인한 신호와 통신 체계 부실로 대형 열차사고가 잇따랐다는 점도 반론으로 제기된다.

영국에서는 1997년 런던 서부 사우스홀에서 7명이, 1999년 런던 패딩턴역에서 31명이, 2001년 2월 북부 셀비 근처에서 10명이 각각 열차 충돌로 숨진 바 있다. 이들 사고의 원인으로는 대부분 통신 오류와 사업자간 정보교환 부족 등이 꼽힌다.

특히 관제업무 분리를 시작으로 민간 경쟁체제 도입이 본격화하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염려도 나온다. 가디언 등 영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최근 10년 동안 철도 요금이 90% 인상된 데 이어 지난 1일자로 또다시 평균 3.9% 올라 반대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철도 관계자는 “철도 시설 유지권과 관련해 국회가 법을 개정하면, 한국은 완벽하게 영국식 민영화의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도 “우리나라 철도와 같은 협소한 시장은 분할할수록 오히려 비효율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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