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대립에서 民生으로"

위기의 민주당, 다시 일어서려면

유상석

listen_well@sateconomy.co.kr | 2012-12-28 11:27:23

MB 정부의 실정(失政)에 대한 높은 비판 여론과 정권교체 요구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은 지난 4ㆍ11 총선과 대선에서 잇따라 쓴 잔을 들어야 했다. 대선패배 이후 민주당은 패배감과 무력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최근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논의하는 등 당 재건을 위한 해결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다.


당 안팎에선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단기 선거 캠페인의 실책이 아니라 당의 리더십, 노선과 정체성, 정책 역량 등을 둘러싼 고질적 병폐가 총체적으로 드러났다는 절박한 인식에서다. 이번 대선에서 확인된 5060세대의 불편한 민심을 되돌려놓지 못하면 앞으로 재보선이나 지방선거는 고사하고 차기 대선에서도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대립만 있었지, 전략이 없었다”


제18대 대선 이후 첫 월요일이었던 지난 24일 열린 민주통합당 의원총회에서는 당 쇄신 방안을 놓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는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대선 패배에 대한) 의원들의 통렬한 반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렬한 반성’의 구체적 내용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에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반면 회의에 참석했던 한 당직자는 “반성해야 할 사람은 반성이 없고, 반성을 주장할 사람들이 자기반성부터 하더라”며, 이 원내대변인의 말과는 상반된 발언을 했다.


무엇보다 이번 해 치러진 굵직한 선거는 친노(친노무현) 인사들 체제 하에서 치러졌으나, 계속되는 패배를 겪었다는 점에서 ‘친노 책임론’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친노’들 중 자진해서 ‘책임’을 언급한 인사는 없다.


오히려 이해찬 전 대표는 의총장에서 ‘친노 책임론’과 같은 불편한 이야기들이 거론되자 먼저 자리를 떴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도 당시 자신의 라디오 출연불발에 대한 불만만을 털어놓았다.


아울러 선거에 대한 책임을 조목조목 따지거나 당 재건에 대해 가감 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인사도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어렵사리 비대위를 꾸리더라도 위기극복이 순탄하게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패배의 원인을 놓고 책임 공방을 펼치고 있는 민주당 인사들과는 달리, 시민사회단체는 민주당의 패배와 관련, 체계적인 분석을 내놓아 이목을 끌었다.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것으로 잘 알려진 광주 지역 시민단체들은 지난 26일 18대 대선에서 광주의 선택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아름다운 단일화 실패’와 이 과정에서 정치쇄신의 과제가 의제로 부각돼 민생에 관심이 많은 유권자와 거리감을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2013희망 광주시민행동’과 ‘새 정치 정권교체를 위한 광주전남연대’는 이날 오후 광주 동구 YMCA백제실에서 ‘18대 대통령선거 광주 평가와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는 류봉식 광주진보연대, 윤영덕 조선대 정치외교학부 초빙객원교수,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송갑석 민주당 시민캠프 공동대표, 안평환 광주YMCA 사무총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지 교수는 ‘18대 대선 결과에 대한 평가 및 과제’를 주제로 한 발제를 통해 “이번 대선의 특성은 보수연합 대 반새누리 연합의 대립이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한 평가가 주목받지 못했고, 박근혜 당선인이 경제민주화 이슈를 주도하면서 이슈경쟁에서 뒤처졌다”며 “무엇보다 이정희 후보의 토론회 참여가 진보층 뿐만 아니라 보수층의 결집을 불러왔다”고 꼽았다.


전망과 과제에 대해 지 교수는 “이번 선거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이고 지역, 연령, 세대, 학력 이념 등의 사회적 갈등구조가 고착화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며 “영호남 지역의 독점적 정당체제를 극복하고 경쟁적 정당체제 마련과 함께 선거법 개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윤 교수는 ‘18대 대선 결과와 광주 시민사회의 대선 활동’에 대한 발표를 통해 “이번 선거에서 광주 유권자들의 선택은 정권교체와 새 정치를 바라는 열망을 가감 없이 표출한 것이고 그동안 보여 왔던 정치적 일관성을 유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윤 교수는 “안철수 교수의 대선 출마 선언으로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는 ‘긴급 행동’, ‘성명서 정치’를 했을 뿐 종합적인 전략과 전술은 부재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대선에서 지역 내 보수적 시민단체와 진보적 시민단체, 양대 노총의 지역본부가 함께한 것은 의미있는 성과”라며 “특히 2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투표 할인마켓 1500여점 참여를 이끌어 낸 것은 높게 평가할 만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광주지역민이 보여준 정권교체 열망을 지역공동체 구성의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도록 방향을 찾아야 한다”며 “정당이 주도하는 정치운동에서 벗어나 새 정치의 롤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시민정치’를 활성화 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장병완 의원(민주통합당 광주시당 위원장ㆍ광주 남구갑)은 “민주당은 ‘질 수 없는 싸움에서 졌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해체에 버금가는 완전한 변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장 의원은 “의원들이 제 역할을 찾지 못했고, 새누리당이 후보 확정 이후 데이터 분석에 따라 민심을 파고들었지만 민주당은 당내 경선과 단일화에 힘을 소진했다”고 자평했다. 또 “정권교체를 바라는 열망이 60%를 넘는다는 것과 단일화만 되면 이길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안일하게 대처했던 것 같다”며 “공천 시스템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인 쇄신 없인 민주당에 희망 없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 없이는 불임정당이 될지도 모른다” ‘위기의 민주당’에 쏟아지는 당 안팎의 우려의 목소리다. 당장 대두되는 것은 두 차례 선거를 책임졌던 당 주류인 친노 그룹을 겨냥한 인적 쇄신 요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친노 그룹이 재기에 성공했지만, 그들의 정치적 한계도 뚜렷이 드러났다는 진단이이 나오고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친노 그룹이 이념적 접근과 배제의 정치로 일관하면서 중도층을 잃게 했다”며 “주류 친노가 패배의 책임을 지고 뒤로 물러나는 게 혁신의 선행 과제”라고 못박았다. 친노 그룹이 당의 전면에 계속 나설 경우 내부 권력 싸움이 격화돼 당 개혁이 또다시 표류할 수 있다는 걱정이 적지 않다.


이는 당의 노선을 혁신할 새로운 리더십 창출에 대한 갈증과 맞닿아 있다. 인적 혁신이 없으면 구태의연한 전략과 정치 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 초선 의원은 “당이 다시 원로 정치인을 내세워 현재의 위기를 적당히 관리하려고만 한다면 앞날이 암담하다”고 말했다.


영국 노동당이나 미국 민주당 등이 보수 정당에 정권을 내준 뒤 절치부심의 세월을 보낸 뒤 새로운 리더십을 통해 재집권에 성공한 사례도 당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다. 영국 노동당은 1979년 이후 보수당에 참패를 거듭하다가 40대의 토니 블레어를 새로운 당수로 내세워 전통적 좌파 노선에서 벗어난 신노동당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1997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패퇴를 거듭하다가 18년 만에 이뤄진 재집권이었다. 미국에서도 공화당에 밀리던 민주당은 40대의 빌 클린턴 후보와 버락 오바마 후보를 내세워 집권에 성공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밑바닥부터 송두리째 변화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으로 리더십 경쟁을 허용해 내부에서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며 “‘질서 있는 수습’을 택하면 결국 당내 기득권을 인정하게 돼 혁신의 움직임이 막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적 쇄신 요구는 한국의 정치지형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2002년 총 유권자의 29.3%에 불과했던 5060세대는 2017년이면 45.1%까지 상승해 2040세대 표심에 주력했던 기존의 전략으로는 집권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5060세대가 이념적 구호보다 피부에 와 닿는 생활밀착형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 역량을 키우는 것이 핵심 과제다.


특히 민주당이 자체 역량을 키우지 않고 야권 단일화나 야권 연대 등 연합정치에 의존하는 행태가 더 이상 통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쏟아진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4ㆍ11 총선 때는 통합진보당과의 야권 연대로 인해 종북 논란에 발목이 잡혔고, 대선에서는 안철수 전 후보만 쳐다보다가 허송세월을 했다”고 한탄했다.


통합진보당과의 야권 연대로 부각된 ‘종북’ 논란을 해소하는 것도 시급하다.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보인 독기 어린 모습과 “남쪽 정부” 발언 등이 중장년층의 위기감을 증폭시켰지만, 민주당 측이 이 후보와 차별화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 역풍을 맞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부 야권 인사들이 보이는 “내가 하면 선이고, 남이 하면 악”이라는 이분법적 풍토와 오만한 태도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다. 대선 운동 기간 트위터 상에서 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일부 야권 인사들을 겨냥, ‘오히려 트위터를 그만두는 것이 문재인 후보를 돕는 것’이라는 지적마저 흘러나올 정도였다. 이들의 선동성 글이 그만큼 중도층에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각종 병폐가 야권이 1980년대식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상대편을 특별한 근거도 없이 '반민주 세력'이라고 몰아붙여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시절은 지났다”며 “사회경제적 정책 대안을 놓고 당당하게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화위복 계기 돼 4월 재보선 성공할까


민주당이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비대위의 가까운 성공사례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비대위 체제’다. 지난해 한나라당이 4ㆍ11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패하고, 디도스 공격 파문이 일자 박근혜 의원이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돼 전면에 나섰다. 친이ㆍ친박ㆍ쇄신파로 나뉘어 다투던 의원들은 박 의원을 중심으로 모였다. 계파 간 갈등이 완전히 종식되진 않았지만 당이 풍비박산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뭉치면서 총ㆍ대선에서 연이어 승리했다.


이번에 민주당에서 선출될 신임 원내대표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잔여임기인 내년 5월 중순까지 당을 책임진다. 대선패배 뒤 민주당을 재건하는 중책을 맡은 신임 원내대표는 △당내 계파 갈등 수습 및 쇄신 △박근혜 정부 인사청문회 및 인수위 평가 △전당대회 준비 △내년 4월 재ㆍ보궐 선거를 이끈다. 전당대회를 준비하기 때문에 당 대표나 원내대표로 출마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공석이 된 원내대표 자리가 헌신적이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자리가 됐다. 박 의원이 비대위원장으로 나설 때와 별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4개월이라는 짧은 임기와 당 재건에 실패할 경우 정치적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위험부담 때문에 ‘뜻은 있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인사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적으로 잃을게 없는 중진들이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 열린우리당 시절인 지난 2006년 5ㆍ31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뒤에도 민주당은 정동영 전 당의장이 물러난 자리에 김근태 최고위원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앉기까지 혼돈의 연속이었다. 반성이나 위기의식으로 뭉치기보단 계파문제 등으로 인한 파열음이 높았다. 결국, 계파의 이익을 위해 당의 안정이라는 대의를 잃는 ‘소탐대실’의 상황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셈이다.


한편, 당의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자 지난 26일에는 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나섰다. 이들은 이날 오후 3시부터 국회 정문 앞에서 ‘국민들께 백배사죄 드립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대선 패배에 대한 사죄와 참회의 1000배를 올렸다. 같은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서는 “모든 게 우리 당과 의원들의 잘못이다. 우리가 국민들 앞에 엎드려 통렬히 석고대죄한다”면서 계파 청산과 비대위를 통한 혁신을 다짐했다. 이 같은 초선 의원들의 활동이 민주당 혁신의 계기가 될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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