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봄인가 유신인가
내부적 갈등 확산…과도한 이슬람化 우려
전성운
zeztto@sateconomy.co.kr | 2012-12-28 11:07:20
봄이 올 것 같았던 이집트에서 ‘새 헌법’으로 인해 갈등의 골만 더욱 깊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의 지지를 받는 새 헌법이 최종 승인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새 헌법이 국민투표에서 과반의 찬성으로 통과되더라도 국론 분열은 심각해질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 23일(현지시각)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의 지지기반이자 최대 이슬람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은 1, 2차 국민투표 결과 전체 64%가 새 헌법에 찬성표를 던져 가결됐다고 이날 밝혔다.
무슬림형제단의 발표가 사실로 확인되면 이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지난해 2월 퇴진 이후 민주주의의 새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을 주축으로 한 이슬람 세력과 야권의 주축인 세속주의자들의 대결 양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야권 정치인과 자유·사회주의 세력, 기독교 신자, 세속적 이슬람 신자 등으로 구성된 구국전선은 이번 국민투표에서 “부정행위가 판을 쳤다”며 그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들은 야권 인사의 참여 없이 이슬람주의자들이 헌법 초안을 작성했다며 지난달부터 국민투표 연기를 촉구했다. 또 무슬림형제단이 새 헌법을 통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살라피스트와 함께 이집트를 이슬람 신정 국가로 만들어 여성과 야당, 소수 종교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애초 국민 투표 보이콧에서 ‘반대표 찍기’ 운동으로 선회한 이들은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행사해달라고 호소했다. 지난달과 이달 초 카이로 대통령궁 앞에서는 새 헌법에 반대하는 시위에 수만명이 몰렸다.
반면 이슬람주의자들은 새 헌법으로 무바라크 전 대통령 정권의 측근 인사를 처벌할 근거를 마련해 진정한 개혁에 나설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무바라크 정권 보호에 이바지한 법률과 검찰, 일부 부유한 경제인들을 민주화 이행 과정에 걸림돌로 보고 국가의 안정을 위해 조속히 헌법을 제정해야 한다며 헌법 찬성 캠페인을 전개해 왔다.
국론분열, 극단주의로 치닫다
양측의 이상적 가치가 현저히 다르면서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이집트 시민단체 ‘4월6일 청년운동’ 활동가 아흐메드 마헤르는 “이집트에 균열과 분열이 생기고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극단주의도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한달간 이집트에서는 새 헌법을 둘러싸고 이슬람주의자와 세속주의자들의 충돌로 8명이 숨지고 1000여명이 다쳤다. 양측의 충돌이 격화하는 사이 무르시 대통령의 최고위 보좌관 17명 가운데 7명이 사임했다.
이집트 국민투표에서 약 30%의 저조한 투표율을 보인 것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무슬림형제단에 따르면 지난 15일과 22일 치러진 1, 2차 투표율은 각각 30%, 32%를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야권은 이 같은 투표율은 국민의 의견을 대표할 수 없으며 1, 2차 국민투표 모두 부정행위가 만연했다고 주장했다. 야권에 따르면 무슬림형제단원들이 일부 투표소에 들어가 유권자에게 찬성표를 던지라고 속삭이거나 판사가 찬성을 유도했다는 신고도 있었다.
일부 투표소는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문을 닫았으며 기독교도들이 투표소에 못 들어간 사례도 있었다고 인권단체들은 전했다. 이 때문에 이집트 인구의 10%가량을 차지하는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주의자들의 폭력을 두려워해 투표소에 가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카이로 서부 기자 지역에 사는 한 시민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천 번의 투표를 한다 해도 새 헌법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며 “무슬림형제단과 그 단체가 하는 모든 일에 불편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한편, 이집트는 헌법이 최종 가결되면 2개월 내에 하원을 새로 구성하는 총선을 치러야 한다. 총선이 시행되기 전까지 상원에 해당하는 슈라 위원회는 입법권을 보유하는데, 무르시 대통령은 전날 밤 슈라 위원회 의원 90명을 임명했다.
이번 임명은 무르시가 부통령, 정치인, 무슬림형제단 회원 등과 여러 차례 회동을 한 뒤에 발표됐다. 야권은 총선 국면까지 헌법 반대 운동을 지속한다는 방침이어서 정국 혼란은 지속할 전망이다. 헌법이 부결되면 무르시는 3개월 내로 제헌의회를 다시 구성한 뒤 6개월 이내 헌법 초안을 새로 작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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