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정치 막내린다
YSㆍDJ 측근, ‘적진’에 뛰어든 이유?
유상석
listen_well@sateconomy.co.kr | 2012-12-14 16:23:24
한국 현대 정치의 양대 산맥을 이뤘던 상도동계(YS계)와 동교동계(DJ계)가 계파를 떠나 ‘제갈 길’을 택하면서 사분오열 갈라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영남을 상징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호남을 대표하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을 각각 따르던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지난 1987년 양 김(金)의 후보 단일화가 무산된 후 서로 치열한 경쟁관계 속에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며 한국 정치사의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연말 대선을 앞두고 일부는 박근혜 후보에게로, 또 일부는 문재인 후보에게로 ‘헤쳐모여’를 하면서 이들의 계파정치도 막을 내리는 모습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서로 상대방에 대한 비판과 서운함을 토로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이 새로운 정치 환경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 주목된다.
◇ 상도동 핵심 김덕룡-김수한 다른 선택
상도동계의 김덕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김 의장은 지난 1970년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비서실장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내리 5선을 지낸 관록의 정치인이다. ‘DR’이라는 약칭으로 유명한데 영문이니셜이 비중 있는 정치인에게만 붙는다는 점에서 그의 정치적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그의 문 후보 지지선언 소속이 전해지자 13대 총선에서 YS의 통일민주당 공천을 받아 정계에 입문한 이인제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은 “너무 뜻밖이다. 갑작스런 결정이라 매우 당황스럽다”고 반응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김 의장의 지지선언이 어느 정도 예고된 수순이었다고 보고 있다. 상도동계에서는 드물게 호남(전북 익산) 출신인 김 의장은 1960년대 대일 굴욕외교 반대 투쟁을 벌이는 등 운동권으로 활약하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4차례 투옥돼 고초를 겪은 바 있다.
2007년 대선 경선에서는 당시 이명박 후보를 공개지지하고 박희태 국회의장, 이상득 의원, 이재오 의원, 최시중 방통위원장 등과 함께 ‘6인회의’를 구성하면서 박근혜 후보와 대립구도를 형성했다. 당적은 같지만 사실상 박 후보와 한 배를 타기에는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것이다.
김 의장은 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박 후보도 훌륭한 자질을 갖췄다. 하지만 그의 태생적 한계, 자라온 환경과 따르는 사람들의 성향으로 볼 때 그가 대통령이 되면 미래보다는 과거로, 권의주의와 분열, 갈등의 시대로 갈 수 밖에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또 상도동계가 YS의 일선후퇴 후 ‘이회창 체제’로 한나라당이 재편되면서 이미 몰락한 점도 그가 새누리당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로 분석된다.
김 의장은 4ㆍ11 총선을 앞두고 박세일 전 국민생각 대표와 함께 새누리당내 반박(反朴) 및 비박(非朴) 세력, 민주당 구민주계 등을 규합해 새로운 중도ㆍ보수정당을 창당하는 방안을 모색키도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한편 김 의장의 문 후보 지지선언에는 문정수 전 부산시장, 최기선 전 인천시장, 심완구 전 울산시장, 이신범ㆍ박희구 전 의원 등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르던 정치인들이 모여 뜻을 함께 했다.
반면 김수한 전 국회의장 등 상도동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모인 민주동지회 소속 회원 100여명은 지난 박근혜 후보 지지를 공식선언했다. YS는 이들에게 “좌파 정권이 다시 태어난다면 이 나라는 거덜 난다. 안보를 튼튼히 하고 나라발전을 위해서 박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YS의 보좌관으로 정치를 시작한 상도동계 출신의 김무성 전 의원은 현재 새누리당 선대위의 총괄본부장으로 박 후보 캠프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 동교동계 분열양상 더 뚜렷
상도동계보다 내부 결속력이 강한 것으로 보였던 동교동계는 분열양상이 오히려 더 뚜렷하다. 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 김경재 전 민주당 최고위원 등에 이어 ‘리틀 DJ’라고 불렸던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가 지난 6일 박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하면서 속속 적진으로 이탈하고 있다.
이들이 DJ의 고향인 민주당을 떠나 박 후보 품으로 들어간 것도 상도동계의 사분오열 배경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친노 당권파의 ‘동교동계 홀대’로 당내에서 마땅한 역할을 찾을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한광옥 전 대표가 지난 4ㆍ11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정통민주당을 창당하고 한화갑 전 대표는 18대와 19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호남에서 출마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화갑 전 대표는 박 후보 지지선언에서 “야당 대통령 후보는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죽은 송장 취급하다가 (박 후보 지지의 뜻을 밝히자) 느닷없이 나타나 비난하고 있다”며 섭섭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또 “제가 동교동 사람이라지만 평화민주당을 창당한 이후로 동교동이 연락을 안한다. 금년 김대중 대통령 3주기 끝난 후 다같이 점심 먹었는데 저한테는 연락도 안 왔다”며 동교동계에 대한 서운함도 나타냈다.
‘옛 동지’에 대한 섭섭함은 민주당에 남은 동교동계 인사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동교동계 좌장격인 권노갑 상임고문을 비롯해 설훈 의원, 김옥두ㆍ배기선ㆍ이협ㆍ윤철상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은 한화갑 전 대표의 새누리당 행에 대해 강력 대응키로 의견을 모았다.
DJ 비서 출신인 김옥두 전 의원은 한화갑 전 대표에게 ‘동지이자 친구 화갑이, 도대체 어디갔나’라는 제목의 공개서한을 통해 “현충원에 있는 DJ가 통곡하고 광주 5ㆍ18 묘역의 민주 영령들이 통탄할 것”이라고 착잡한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 文지지 양 계 인사, 한자리에 모이기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인사들이 대선을 앞두고 이합집산의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양 계파의 일부 인사들이 지난 12일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상도동계 핵심인 김덕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의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 지지선언 이후 동교동계 인사들의 초청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민주당 권노갑 상임고문과 정대철 고문, 김상현 전 의원, 설 훈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과 김 상임의장을 비롯, 문정수 전 부산시장, 최기선 전 인천시장, 심완구 전 울산시장 등 문 후보 지지를 선언한 상도동계 인사들은 이날 오전 강남의 한 호텔에서 조찬을 함께 했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는 지난 1985년 DJ와 YS를 공동의장으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을 결성, 함께 활동했으나 87년 대선 국면에서 `양김'(兩金)의 분열로 갈라섰다.
2009년 DJ 서거 후 민추협 멤버들의 대규모 회동이 이뤄진데 이어 그해 연말 YS주재로 만찬 회동이 열리는 등 화해와 통합 무드가 조성됐으나 그 이후 교류는 다시 뜸해졌다.
김 상임의장은 “87년 YS와 DJ의 단일화 실패로 민주화가 늦어지고 지역분할 구도도 심화됐다. 우리가 잘못 모신 것”이라며 “이제라도 힘을 모아 대한민국이 하나가 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운을 뗐다.
권 고문은 “다시 뭉치게 돼 기쁘다”며 “과거 서슬 퍼런 정권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항거한 정신으로 다시 하나가 됐다”고 화답했다.
이들은 조찬 자리에서 87년 6ㆍ10 민주화 항쟁 당시 등 민추협 활동을 회고하며 “87년 민주화 운동을 했던 심정으로 돌아가 정치혁신과 국민정부 창출을 돕자”고 의기투합했다.
◇ YS차남 김현철도 사실상 文 지지
상도동계 일부 인사들이 문재인 후보를, 동교동계 일부 인사들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등 엇갈리는 행보를 드러내는 가운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이 지난 12일 “이번 선거는 민주세력이 이겨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김현철 전 부소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아버지의 민주화에 대한 지금까지의 열정이 역사에 욕되지 않기 위해 이번 선거는 민주세력이 이겨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이기리라 믿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전 부소장은 박 후보에 대해 “평생을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 군사독재와 투쟁해 오신 저의 아버지 초산테러와 의원직 박탈 그리고 가택연금과 단식투쟁… 가족인 저희들도 당시 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살아왔다”며 “혹독한 유신시절 박정희와 박근혜는 아버지와 딸이 아니라 파트너로서 이 나라를 얼음제국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용서… 말이 쉽다”면서 “민주세력을 종북세력으로 호도하는 세력이야말로 과거세력”이라고 거듭 비난했다.
한편 그는 지난 10일 상도동계인 김덕룡 전 의원이 문 후보를 지지한 데 대해 “과거 악랄했던 유신시절 아버님을 대신해서 여러 차례 투옥되는 등 아버님의 당시 비서실장으로서 상도동의 좌장이자 브레인 역할을 도맡아왔던 핵심인사”라며 “결국 상도동의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고 민주화의 뿌리를 찾기 위해 문 후보에 힘을 합쳤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어 “저 역시 민주화의 맥을 잇고 새로운 정치를 위한 길을 찾기 위해 무척 고심하고 있다”며 “대선 이후 정치권의 예견된 빅뱅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지금부터 많은 고민과 연구를 해나가겠다”고 이 같은 결정을 예고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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