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 남매간 소송전 왜?
검찰 수사로 드러난 차명재산 놓고 다툼
양혁진
yhj2503@gmail.com | 2012-12-14 16:06:26
태광그룹의 오너인 이호진 전회장이 안팎으로 혹독한 시련의 시간을 겪고 있다. 횡령ㆍ배임 혐의로 재판이 진행중인데다 간암수술을 받고 나서 건강도 몹시 좋지 못하다. 여기에 최근엔 남매끼리의 상속을 둘러싼 소송도 불가피하게 됐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태광그룹 창업주 고 이임용 회장의 둘째 딸 이재훈씨는 남동생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을 상대로 한 주식인도 청구소송을 최근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이번 청구 소송은 선대회장이 남긴 차명재산을 두고 남매간 벌이는 소송이어서 최근 법정공방이 진행 중인 삼성가 2세들의 상속 소송과 닮아있다.
이씨가 이 전 회장에게 78억6000여만원과 태광산업, 대한화섬, 흥국생명 보통주 각각 10주, 태광관광개발, 고려저축은행, 서한물산 각각 1주 등을 지급해 달라는 게 소송의 골자다. 이중 77억6000여만원은 이 전 회장이 이씨 명의로 빌린 돈이고, 1억원은 주식 청구에 따른 배당금인 것으로 전해졌다.
태광그룹 오너일가의 상속다툼 논란은 2010년 검찰의 비자금 수사에서 비롯됐다. 그룹 경영권에서 배제됐던 이호진 전 회장의 누나 재훈씨가 창업주인 이임용 선대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차명재산의 존재를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뒤늦게 알았다며 동생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 큰 줄기다.
이씨는 소장을 통해 "2010년 태광그룹의 비자금 수사가 이뤄지면서 이 전 회장이 상속재산인 차명주식 등을 실명화, 현금화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사실과 비자금의 규모는 1조원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전 회장은 상속 처리된 재산 외에 막대한 규모의 재산을 상당부분 단독 소유로 귀속시켜 내 상속권을 침해했다"며 "추가 상소재산의 내역이 밝혀지면 청구취지와 청구원인을 확장해 정리할 예정"이라며 청구 금액의 확장 여지를 남겨뒀다.
이번 소송은 이 전 회장이 대주주인 흥국생명이 고액 배당을 실시하면서 이씨 소송의 도화선이 됐다는 관측도 있다. 이 전 회장은 지난 2010년 횡령·배임 혐의로 사정당국의 압박을 받자 지난해 1월 구속을 피하기 위해 흥국생명에서 이씨가 부동산을 담보로 100억 원을 대출 받도록 했고 이 돈을 빌려 횡령한 회삿돈 일부를 메웠다. 이후 이 전 회장은 빌린 돈 100억 중 31억3000만 원만 갚고 나머지 부분은 갚지 않아 이씨가 채무를 떠안고 있다.
이런 가운데 흥국생명은 지난 6월 20일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지난 2006년 이후 처음으로 주당 1750원의 배당을 확정했고, 이 전 회장은 지분 59.21%를 보유해 총 141억 원을, 이 전 회장 가족 등은 약 60억 원의 배당을 받았다. 이 전 회장은 이 배당금으로 사실상 자신의 대출금이나 다름없는 이씨의 채무를 갚는데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 상속 소송은 이제 시작일 뿐?
태광그룹은 1950년 창업주 고 이 회장이 설립한 태광산업을 모태로 석유화학, 섬유,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2011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밝힌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현황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성장, 재계 순위 40~5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기업의 외형은 크게 확대됐으나 경영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불신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사실상 태광그룹을 장악하고 있는 이 전 회장이 2006년 아들 현준군에게 편법으로 지분을 몰아주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회사 내외부의 문제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 전 회장의 아들 현준군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태광그룹 계열사 티알엠, 티시스, 한국도서보급, 동림관광개발, 티브로드홀딩스 등 5개 계열사의 지분을 상당부분 보유하고 있다. 비상장 계열사 티알엠 등 3개 계열사의 지분은 48~49%에 육박한다. 딸 현나양에게도 이미 상속이 진행되고 있다.
이 전 회장의 이 같은 행보가 다른 가족들에게 위기감으로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비상장 주력계열사의 지분을 이 전 회장의 자녀들이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누나 재훈씨를 비롯해 외삼촌과 창업주의 혼외 가족들이 하나둘 뭉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씨는 일단 상징적인 의미로 1~10주에 불과한 주식에 대해 지급 소송을 냈지만, 향후 선대 회장이 물려준 차명재산이 드러나는 대로 소송규모를 늘릴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이 전 회장이 혼자 가져간 상속 재산의 내용이 밝혀지는 대로 청구 취지와 원인을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상속권 침해 규모를 파악할 수 없어 일단 일부 재산만 청구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상속소송은 시작일 뿐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은둔의 경영자, 재기할 수 있을까
그룹의 총수치고는 이호진 전 회장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이 전 회장은 ‘얼굴 없는 경영자’로 불렸다. 이 회장은 1993년 태광그룹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해 2004년 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거의 언론과 접촉한 적이 없으며 그룹 행사나 외부 행사에서도 일절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은둔형 이 전회장이 공식적으로 언론에 노출된 건 지난해 배임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구속되면서부터다. 이 전 회장은 1400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지난해 1월 구속, 지난 2월 1심에서 혐의 대부분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4년6월에 벌금 2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 전 회장은 건강상 이유 등으로 구속집행정지 처분을 받아 석방된 상태다.
검찰은 지난달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구속집행정지로 석방되면서 수감 기간이 60여 일에 불과해 거의 처벌받지 않았다”며 이 전 회장에게 1심과 같은 징역 7년에 벌금 70억원을 구형했다. 이 전 상무에겐 징역 5년에 벌금 70억원을 구형했다. 항소심 선고공판은 오는 20일 열린다.
이 전 회장은 간암 3기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술을 통해 간의 40%를 제거했지만 간암 3기 환자는 재발률이 높아 간 이식을 받아야 한다. 이 전 회장이 건강악화와 소송의 험난한 파도를 넘어 재기할 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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